편집자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16일 동안 진행됐다. 그러나 ‘성공적인 개최’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쑥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인터넷 유저편집 백과사전 ‘엔하위키’에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사건사고”라는 항목이 생겼을 정도이며 대회의 흥행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에 <미디어스>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둘러싼 여러 측면의 논란을 ‘적자대회 논란을 둘러싼 이모저모’, ‘한류 일색 개최식 논란을 둘러싼 이모저모’, ‘야구 대표팀 병역문제 및 경기력 논란을 둘러싼 이모저모’를 훑어보는 세 편의 기사를 통해 정리해본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대회 성적이란 측면에선 성과가 있는 대회였다. 조직위 입장에선 충분히 홍보가 되지 않아 흥행에 실패한 상황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대한민국은 총 234개(금메달 79개)의 메달을 따냈고, 총 342개(금메달 151개)의 메달을 따낸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며 총 200개(금메달 47개)를 딴 3위 일본을 크게 앞섰다.
다만 이러한 ‘성과’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이어진 경향성이란 점에서 사람들에게 긴장감과 희열을 주기에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과와 비교해 본다 해도 그렇다. 2010년 당시 1위 중국은 총 메달수 416개(금메달 199개), 2위 대한민국은 총 메달수 232개(금메달 76개), 3위 일본은 총 메달수 216개(금메달 48개)였다. 상대적으로 더 선전하긴 했지만 홈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바뀌었다는 걸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치였다.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제9회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만 해도 일본은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이후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만들어진 1위 중국, 2위 한국, 3위 일본이란 서열은 1994년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이 금메달 한 개 차로 한국에 앞선 2위가 되었던 것을 제외하면 불변이었다. 13회 대회부터 17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순위가 고착화되면서 최근 몇몇 대회에선 2위 한국와 3위 일본의 금메달수를 합해도 1위 중국에 미치지 못하고, 2위 한국과 3위 일본의 격차도 일본의 금메달수에 4위 국가의 금메달수를 합친 것 이상이 되는 다소 느슨한 상황이 전개되었으니 대회 성적이나 순위 다툼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었다.
▲ 지난 9월 2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 6-3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차지한 대표팀의 마무리 봉중근이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은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인 남자 4대 구기종목(야구, 축구, 농구, 배구) 중 3개 종목(야구, 축구, 농구)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니 말이다.
특히 농구의 경우 2000년대 들어 ABC에서도 고전하는 등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평이 많았으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의 기적 같은 역전승 이후 12년 만에 다시 만화 같은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수확했다. 축구의 경우는 더욱 놀라워서, 농구와는 달리 언제나 ‘우승 후보’로 거론됐는데도 불구하고 한참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다 자그마치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28년만에 ‘전승 무실점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거듭 차출을 요청했고 8강전부터만 뛰게 해줘도 와일드카드를 주겠다고 약속한 손흥민 선수가 불참해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사연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야구 대표팀의 경우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연속 우승을 차지했는데도 예전과 같은 찬사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운동선수 병역문제에 대한 해묵은 감정의 표현들이 수면에 올라왔다.
야구 국가대표팀 논란에 관한 논란들
사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겨냥한 야구 국가대표팀은 선수 선정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있었다. 일본이 사회인야구 선수를 출전시키기로 했고 대만 프로리그와 한국 프로리그 사이에 약간의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은 높을 확률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좀 과장해서 말해 ‘어떻게 팀을 꾸려도 우승할 수 있다’는 시선이 있었고, 이러한 시선이 선수 선정 과정에서 고스란히 논란으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야구 대표팀이 ‘국가대표팀’이란 이름에 걸 맞는 최정예 팀이 아니라 선수에 대한 병역 면제 혜택을 고루 나눠 갖기 위한 각 팀별 안배의 산물이라는 비판이었다. 이에 더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이 대표팀에 자팀의 미필 선수 한 명을 더 밀어 넣기 위해 객관적인 성적 지표나 직전 자신의 발언에 의거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명단을 확정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는 2014년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엔트으리’ 논란을 일으키며 초라한 성적을 받아들고 귀국한 상황과도 포개졌다.
막상 아시안게임이 시작되자 야구 대표팀은 다른 방식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매 경기를 콜드게임으로 끝내는 대표팀의 막강한 위용은 눈부셨지만, 이에 반대급부로 아마추어들의 잔치여야 할 아시안게임에 프로선수들이 병역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 나서 그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생겨났다. 9월 24일에 열린 조별리그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금메달 경쟁국인 대만을 10대 0 콜드게임으로 꺾으면서 그러한 비판도 절정에 달했다.
▲ 지난 9월 2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 6-3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이 경기가 끝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막상 9월 28일 열린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은 며칠 전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끌려 다니다가 막판에 경기를 뒤집어 6대 3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게 되니 또 야구 국가대표팀이 자신이 발휘해야 할 능력에 걸맞지 않은 ‘졸전’을 펼쳤다는 논란이 생겼다.
이렇게 적어보니 알 수 있듯 야구 국가대표팀에 관한 논란은 사실 일관성이 없다. 올림픽 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만이 병역면제가 되는 상황에서, 상대국과의 격차가 분명하다고 여겼을 경우 각팀 미필선수를 배려하는 대표팀 구성은 어떤 의미에선 합리적일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최강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포츠팬덤의 ‘로망’에는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표팀이 막강한 기량을 발휘했다면 그것은 노림수가 성공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대만에게 덜미를 잡혀 금메달을 놓쳤다면 프로야구계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2014년 인천’의 드라마는 그들에게 해피엔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의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이 다소 쑥쓰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했다는 것 자체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가령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에 출범한 프로축구 리그의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최강의 팀을 출전시켰다.
몇몇 축구팬들은 이 당시 한국 축구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금메달을 딴 것이 다른 나라들을 자극했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은 ‘우리가 한국보다 돈이 없어 뭐가 없어’라고 생각할 만한 중동의 산유국들이 앞다투어 프로축구 리그를 만들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당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영광은 아시아 축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내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해낸 것이다.
운동선수의 병역 문제를 들여다 보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의 야구 국가대표팀이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스포츠팬은 없을 것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융성한 프로야구 리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인야구 선수들을 내보냈다. 중국 등 여타 아시아국가들의 야구 수준은 아직 한국에 턱없이 미치지 못 하고 ‘열번 싸우면 예닐곱 번은 이길’ 대만 정도가 유일한 경쟁자다. 축구와 야구의 저변 문제도 있어서, 당장 몇 나라만 즐기는 야구가 왜 아시안게임에 포함되어야 하냐는 목소리가 높아질 정도다.
결국 야구 대표팀의 금메달이 다소 쑥스러운 구석이 있었고, 그러나 현행제도 속에서 한국 프로야구 리그의 선택이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다면, 이 문제는 운동선수의 병역 문제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돌이켜보면 운동선수의 병역 문제는 수십 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거듭 논란이 되어 왔다. 처음에는 스타선수의 사례가 큰 문제였다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전설적인 축구 스타가 되기 전 공군이 복무기간을 6개월 단축시켜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후에 문제가 되어 분데스리가팀에 입단한 이후인 1979년 1월 한국에 귀국해 6개월간을 추가 복무하고 만기 제대했다. 당시 언론들은 차범근이 조국을 위해 할 만큼 했으니 놓아 달라고까지 말했지만 혜택은 없었다. 최동원 역시 각종 국제대회에서 역투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초반 병역문제 등이 문제가 되어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 지난 7월 30일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레버쿠젠 코리아투어 FC서울 대 바이엘 04 레버쿠젠의 경기 시작에 앞서 시축을 한 차범근 해설위원이 레버쿠젠 손흥민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대에 프로스포츠가 융성하면서 이 문제는 좀 더 많은 사람의 것으로 확대되었다. 흔히 ‘상무팀’으로 불리는 국방부 직할 국군체육부대가 1982년 8개 종목을 통합하여 창설한 '육군체육지도대'를 모태로 1984년 창설된 배경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재 운동선수가 병역 문제에 있어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병역특례혜택 대상이 되어 4주 군사훈련 후 면제를 받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국군체육부대 소속 경기대에 자원하여 선발되는 것이다. 현재 병역특례해택 대상자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며 ‘상무팀’으로 불리는 국군체육부대에 가려면 최종 접수일까지 만 27세 이하(만 27세 11개월 29일까지)라는 지원 상한 연령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병역특례혜택 대상이 되지 못하고, 만 28세에 접어든다면 공익근무 판정을 받지 않는 이상 많은 경우 ‘군입대=은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위선양이 아니라 개인 손실의 형평성으로 접근한다면
많이들 기억하겠지만 2천년대 들어 병역특례해택 기준은 여론에 의해 요동쳐왔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만들어지자 그 주역들에 대한 병역면제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결국 ‘올림픽 메달리스트,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외에 ‘월드컵 16강 진출자’가 추가되었다.
이에 질세라 2006년 1회 WBC 4강의 위업이 달성되자 야구계에선 축구와의 형평성을 주장하였고 결국 규정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월드컵 16강 진출자, WBC 4강 진출자’로 바뀌었다. 이후 그야말로 형평성의 상실을 주장한 기타 체육인의 반발로 인해 축구인과 야구인을 배려한 두 조항은 동시에 삭제되었고 2009년 2회 WBC에선 한국이 준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참여자들에 대한 병역면제의 혜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3-4위 동메달 결정전 (무려)한일전 혈투를 통해 달성된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의 영광 역시 홍명보 감독, 박주영 선수, 기성용 선수 등 주축 멤버들의 높아진 위상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있는 등, 다소 ‘복불복’이라 여겨지는 병역특례혜택 기준이 해당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필요한 현실이다.
▲ 지난 6월 27일 오전(한국시간)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한국 대 벨기에 경기. 벨기에의 얀 페르통언에게 결승골을 내줘 0대1로 패한 축구대표팀의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이근호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병역특례혜택을 정당화하는 기준은 ‘국위선양’이다. 그러나 국위선양의 기준은 모호하여 대중 여론에 따라 요동칠뿐더러, 국가에 대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는 문제가 있다. 인기종목에서의 혜택은 수월히 이루어지는 반면, 비인기종목에선 국내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에 대해서도 “니가 국가에 대해 한 일이 뭐냐”라는 식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프로바둑기사 이창호 9단의 경우 공익 판정을 받자 4주 군사훈련을 받은 후 ‘공익근무’의 임무를 ‘한국기원에 출근해서 바둑을 두는 것’으로 부여받았다. 이창호 9단은 무수한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바둑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만큼 이와 같은 조치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e스포츠와 관련하여 공군이 ‘공군 Ace'라는 팀을 만들 때는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즐기는 상당수의 팬들도 반발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선 운동선수의 병역 문제에 관한 쟁점을 ‘국위선양’이 아니라 ‘개인 손실의 형평성’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인 제도개혁을 위한 좋은 자세일 수 있다. 많은 한국 남성들은 운동선수들이 병역면제를 받을 때 ‘나와 그의 형평성’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일반인과 운동선수 간의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한 손실은 같지 않다. 운동선수는 전성기가 짧고, 더구나 기대소득이 가장 높은 시기가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사이에 집중되어 있으며, 경력 단절의 영향도 훨씬 크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국위선양’이란 무거운 단어와 상대적으로 멀어 보이는 e스포츠 영역에서도 ‘공군 Ace'와 같은 팀이 필요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 추신수 선수가 2013년 12월 3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고 최동원 감독을 추모하기 위해 기념사업회가 마련한 '불멸의 영웅관'을 방문, 최동원 감독의 젊은시절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과 같은 종합 스포츠제전의 순위를 ‘국위선양’으로 여기는 태도를 그만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또한 병역문제에 있어 국가에 대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태도 역시 지금의 심각한 군 인권 문제를 발생시켜 온 토양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한다면, 운동선수 병역문제에 대한 제도개혁의 방향 정도는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끌어들이되 병역혜택 대상을 너무 확대하지 않기 위한 점수제를 통한 측정이 가능할 것이고, 팀 스포츠 선수의 경우 메달을 따거나 상무팀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팀과 계약한 일정 연봉 이상의 선수는 일정한 나이까지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둬도 좋을 것이다. 큰 틀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 등 다양한 형태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운동선수들의 진로 결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의도 해봄직하다.
이런 방향으로의 제도 개혁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모 선수가 병역특례혜택을 한 방에 받을 수 있는 국제대회에 한 번만 참가하고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거나, 오직 아시안게임만을 노리고 총 출동하여 병역면제를 노리는 대표팀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는 상황을 더욱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계를 비난하기 전에 운동선수들의 삶의 문제에 밀착한 제도개선이 요구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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