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선출을 앞두고 각 계파들의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현재 후보등록을 마친 후보는 우윤근 정책위의장, 이목희, 이종걸, 주승용 의원 등이다. 소위 중도파들의 경우 교통정리가 안돼 결국 이종걸, 주승용 의원이 모두 후보등록을 한 후 단일화를 하기로 결론내렸다. 언론에 의해 ‘친노’로 불리고 있는 계파들의 경우 우윤근 의원을 지지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소위 구 김근태계로 불리는 ‘민평련’ 일부에서 이목희 의원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언론에서는 ‘친노’와 ‘비노’의 구도로 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으나 냉정히 말하자면 구 주류대 구 비주류의 대결에 더 가깝다는 인상이다. 특히 이종걸-주승용 의원과 우윤근-이목희 의원 간의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지난 대선을 전후한 민주당 내 주류는 친노그룹, 정세균계, 민평련, 소위 486 등이 연합한 결과였다. 이에 대항하는 당시 비주류는 김한길로 대표되는 중도 및 온건파, 정동영계, 구 민주계 등으로 구성됐었다. 대선 패배를 기점으로 이 구도는 원내대표를 배출한 정세균계를 제외한 나머지 주류 그룹이 사실상 비주류가 되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물러나고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옅었던 박영선 원내대표 이후에는 또 다시 구 주류가 신 주류가 될지, 구 비주류가 신 주류가 될 지를 두고 다퉈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계속 이러면 구 주류, 구구 주류, 신 구주류 등으로 용어를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왼쪽)와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젠가 정동영 상임고문이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발언한 것처럼 제1야당의 혁신이라는 것은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영원히 자리를 바꾸는 일에 불과한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당무위원회를 꾸리고 이를 통해 조직을 정비하는 작업에 나서면서 계파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역위원장을 선정하는 등 차기 당권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 체제 정비 작업이 진행될 예정인데, 이를 그냥 내버려 두면 자신들에 손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에 우려하는 각 계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 결국 차기 당권 경쟁을 정점으로 그간 비판받았던 계파정치의 틀로 정확하게 다시 돌아가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 계파간 갈등이 생산적인 노선 경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당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 자영업자들의 ‘살아남기’ 경쟁이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러 차례 이런 계파정치의 난점을 극복하고 혁신을 도모하겠다고 수 차례에 걸쳐 약속하고 발언하였으면서도 결정적 시기가 오면 결코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추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파국으로 몰아간 책임이 있는 박영선 비대위원장 체제가 이러한 계파정치의 상처에서 가장 자유로운 상태였을 정도다.

▲ 이목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연합뉴스)

박영선 비대위원장 체제의 문제는 박영선 당시 비대위원장이 계파들의 입장을 조율하는데 실패했다기 보다도 박영선 비대위원장 스스로가 하나의 계파 수장이 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산 것이 큰 실패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일부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 ‘조직사무부총장’의 임명 문제인데,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결정적인 실책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의 행보였다고 보더라도, 조직사무부총장 자리를 자신의 인사로 채운 이후 당 내 일부 계파 소속 인사들이 ‘당 장악 시도’를 언급하며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1야당이 내부문제에서 계파정치의 벽에 부딪쳤을 때 전통적으로 내놓는 카드 중 하나는 ‘상임고문단’으로 대표되는 원로급 인사들의 중재다. 그런데 이 원로들 역시 계파정치의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로정치’는 계파정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여겨져 왔다. 즉, 원로정치는 계파정치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언제나 상황을 봉합해 계파정치의 틀을 유지해온 요소로도 간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결론적으로 보자면 제1야당의 계파 문제는 어떻게 해서든 해소되지 않는다. 계파간의 합종연횡으로도 안 되고, 계파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책임을 져도 안 되고, 원로들을 데려와서 중재를 서달라고 해도 안 된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왼쪽)와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계파정치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했던 시기는 제1야당이 재기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던 직후다.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2008년 총선에서 80석의 초라한 성적을 올렸다. 이 때는 당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조차 없어 오히려 당권을 맡을 사람을 어디 가서 꾸어오기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실제로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손학규 상임고문이 당시 대표를 떠맡아 총선을 치렀다. 지금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상당수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당 내 권력을 만지작거리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즉, 제1야당의 계파문제는 여전히 거기에 먹을 것이 많다는 게 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 지지율이 바닥을 긴다고 하지만 여전히 새정치민주연합은 130석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다. 이들의 상당수가 지역구 관리만 똑바로 해도 차기 총선에서 어찌됐건 ‘해볼만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결국 공천과 선거 지원이라는, 유력 당권주자에 줄을 잘 서야 해결되는 문제들에 대해 서로 머리를 굴리느라 분주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의원. (연합뉴스)

계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1야당이 다시 한 번 망해야 한다고는 차마 말할 수는 없으니 어차피 치러야 할 눈꼴 사나운 싸움이라면 노선과 비전을 갖고 생산적인 대결을 해보라는 덕담을 건네는 수밖에는 없겠다. 제1야당을 대상으로 노선 경쟁을 해보라고 하면 더 야당다워야 한다는 둥, 더 중도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둥 하는 싸움을 벌이는데 그건 계파갈등을 재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도식에 치우친 논쟁보다는 지금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을 가르는 키워드가 무엇이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는 무엇이냐에 집중해서 서로의 생각을 겨뤄보았으면 한다. 아무리 총선에서 살아남고 정치를 잘 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봐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대통령을 손에 거머쥐지 않으면 정치하기 쉽지 않은 곳 아닌가? 어떤 정치세력이 대통령을 배출하려면 시대정신을 꿰뚫는 슬로건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시대정신을 꿰뚫는 어떤 구호라는 건 어느 때는 ‘수평적 정권교체’였고 또 어느 시기에는 ‘정치개혁’이었으며 어느 때는 ‘무상급식’이었고 또 어떤 시기에는 ‘경제민주화’였다. 원내대표 선거로 당권경쟁의 신호탄이 울리는 이 때에 이러한 원론적인 얘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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