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란 이름의 단체가 등장했다. 시민들이 매단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란 리본을 제거하겠다고 등장한 이 단체 회원 10여명은, “(서북청년단은) 해방 직후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이라며 “이런 정신을 계승해서 서북청년단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해방 직후 수많은 좌익을 무고하게 테러한 우익단체이며, 1947년 제주도 4.3 사건에서 제주도민 학살에 앞장선 서북청년단을 계승하겠다는 단체의 등장에 한국 사회가 난리법석이 났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진짜 보수라면 진보보다 더욱 매섭게 일베, 서북청년단, 어버이연합 등의 망동을 비판해야 하건만…"이라면서 "'전위대'로 써먹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이 문제에 관해 보수 세력을 비판했다.
조국 교수는 "서북청년단은 이승만의 전위부대로 수많은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살해한 집단이고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도 조직원"이라고 설명하면서, "개명천지에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니…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세상이 40여년 거꾸로 돌아가 1972년 유신이 부활하나 했는데, 내가 안이했다"고 덧붙였다.
또 조국 교수는 "다른 극우단체와 달리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결성은 형법 제 114조 및 폭처법 제4조 '범죄단체조직죄'에 해당한다"며 "검경의 수사가 필요하다"며 "'서북청년단'은 '지존파' 보다 훨씬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고 강조했다.
진보성향의 영화평론가 겸 방송인 허지웅 역시 같은 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서북청년단의 이름이 다시 나온 상황에 개탄했다. 허지웅은 "광복 이후 결성됐던 서북청년단은 한국에서 재현된 독일 나치친위대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끔찍하며 창피한 역사다"라고 말문을 연 후, “(서북청년단은) 은하영웅전설의 우국기사단 같은 존재”라면서, "선진국과 비교하길 좋아하는 한국이 국제사회 구성단위로서 여전히 지속가능한 사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면 저 단체는 심각한 혐오 범죄로 분류되고 관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라는 이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모종의 금도를 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북청년단의 이름을 가져오는 것’과 ‘서북청년단의 행위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그들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매단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란 리본을 제거하겠다고 등장한 것은 물론 끔찍한 일이나, 그렇다고 그게 역사적 단체인 서북청년단의 테러 행위에 비교되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또 그들이 서북청년단에 대해 ‘공산주의에 맞서 대한민국을 수호한 구국의 용사들’이라 인지하고 있는 것도 충분히 문제적인 사회현상이지만, 그러한 인지만으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가 테러집단이 되거나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의 보수세력은 어느 단체가 “김일성은 항일독립투사이며, 6.25는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믿는 것만으로 그들을 국가전복세력으로 믿을 것이며, 국가보안법은 그들을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단 점에서 이 상황은 정치적으로 불공정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이 불공정함을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비판의 방식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자는 문화계 좌익인사를 척결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정부의 기획에 적극적으로 동조 개입하여 여러 진보지식인들을 비판한 변희재 현 <미디어워치> 대표에 대해 ‘사이버 서북청년단장’이라고 조소한 바 있었다. 이것이 조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사회에 서북청년단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역사적 평가가 존재하고 그것이 그와 같은 형태로 다시 등장하지는 않을 거라는 맥락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장 재건준비위’의 등장이 이 믿음에 도전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들의 등장 자체가 도전이라기보단 이에 무신경한 보수진영의 반응이야말로 도전이다. 조국 교수의 지적처럼, 이 문제에 관해 보수세력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현 시대 한국 사회 한 진영의 상식의 하한선과 금도의 한계를 보여줄 것이다.
▲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회의가 개최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에서 유가족 등의 참가자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격앙된 개탄을 하기 보다 바로 그 부분을 차분하게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그 시대 서북청년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하여 이 시대에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새누리당 정치인 개개인과 보수진영의 인사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답변을 검토하고 그들과 함께 토의하면서 한국 사회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 맥락적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종류의 이념과 역사인식과 정치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는 자유의 권리와 그 한계를 창출해내야만 한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정치의 실종’이다. 세월호 유가족 가족대책위라는 당사자가 직접 투쟁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들이 동의하지 못할 협상을 하거나 아예 협상을 하지 못하고 있고 기타 군소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세력은 당사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물리적으로 끌어내는 것 외의 타결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보수세력이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는 집권세력과 한 진영의 그러한 ‘내심’을 대변했거나, 직접적으로 ‘지원 및 청탁’을 받은 것일 수가 있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자면 더 이상 경찰과 같은 국가 조직으로 직접적으로 그들을 끌어내기가 부담스럽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세월호 참사 정국처럼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 아니라 일부 운동세력에게만 공유되는 이슈에서라면 경찰은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집중적인 물리력을 행사했을 테지만 말이다.
▲ '희망풍차 SR 나눔로드' 참가자들이 지난 8월 5일 오후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추모리본을 달고 있다. (연합뉴스)
서북청년단이나 족청 같은 우익 단체들은 해방 정국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고 먹고 살 일이 막막했던 청년들을 체제가 쉽게 동원한 방식이기도 했다. 어쩌면 역사적 테러단체들과 지금의 우익단체들의 맥락을 비교해볼 수 있는 지점은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 물론 ‘일베’든 서북청년단이든 너무 쉽게 매수되었을 거라 단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낳은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비평적 맥락을 놓치는 일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우익 시민단체들을 육성하고 있고 여기에 모종의 자금이 동원되고 있음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은 이와 별개로 필요한 일일 것이다.
다시 돌아가,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가 보여주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정치의 실종’ 내지 ‘부재’라면, 그것들을 비판하는 행위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쪽이라야지 강화하는 쪽이라서는 안 된다. 이편의 배제는 저편의 (국가권력과 자본의 힘을 동원한) 더 강한 배제를 불러올 뿐이란 것을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역사가 보여준 바 있다.
지금의 정치권과 정치토론이 무망해진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가 나오지 않았을 때에도 이미 한국 사회와 그 정치는 이와 같은 교착상황에 빠져 있었다. 마침 그들이 나타났을 때 우리가 어떠한 합의를 시도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결국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가 가장 큰 문제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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