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논의해온 정부가 다음 달 확정안을 내놓기로 하고 이에 앞서 4가지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발행 기준을 정하기 위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교과용 도서 구분 기준안 정책연구 토론회’를 열었다.

쉽지 않은 국정교과서 논란

여기서 역사 교과서 정책연구를 맡은 최병택 공주교대 교수는 △여러 종의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방안 △국정과 검정을 병행하는 방안 △공공기관에 의한 교과서 발행을 전제로 검정제를 유지하는 방안 △현행 검정제를 유지하되 검정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발표했다.
역사 이외의 나머지 교과서와 관련해 당초 정책연구진은 고교 통합사회와 통합과학도 국정 교과서로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날 발표에서는 제외했다. 야당 등이 “통합사회를 국정으로 하는 것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사전 작업”이라며 교육부를 압박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인정도서인 고교의 국어 영어 수학을 검정제로 전환하는 방안, 국정 교과서를 지금처럼 1종이 아니라 2, 3종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현 정부는 지난해 교학사를 비롯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의 오류 파동을 겪으면서 해결책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추진해왔다. 교육부는 6월에 역사 교과서 발행체계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인사 공백 등으로 인해 9월로 지연됐다. 교육부는 역사학계와 교육학계를 중심으로 진행한 몇 차례 공청회에서 국정화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나오자 이날도 확정안을 내놓지 않고 최종 결정을 10월로 미뤘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정치적 갈등이 드러났다. 토론회의 두 번째 대주제였던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검토' 토론이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객석에 앉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10여 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문구가 적힌 손 피켓을 들었고, 한국사국정화추진시민사회단체협의회 회원들이 피켓을 내리라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 25일 오후 교과용 도서 구분 기준안 정책연구진 주최로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 열린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 추진에 따른 교과용도서 구분 기준(안) 정책연구 토론회'에서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검토를 주제로 주제발표가 이뤄지는 동안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전교조 교사 등이 피켓을 들고 있자 한국사 국정화추진 시민사회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이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엔 정치문제다. 물론 교육과정의 자율화 문제도 있지만, 객관식 시험인 수능으로 학업성취가 평가되는 나라에서 자율화는 어차피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도 분열되어 있다. 일선 고교의 교사들은 국정화에 반대하지만,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들은 가뜩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 제자들의 일자리가 하나라도 늘어날 수 있는 문제라 반대에 망설인다. 다른 사회과 교수들은 반발한다. 우리 과목은 안 중요하냐는 것이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앞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씩이나 고민하게 된 것도 이때문일 수 있다.
왜 '환빠'도 국정교과서를 원하는가
정치문제로 넘어오게 되면, 진보진영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비판의 방향은 한 갈래다.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막아낸 그 논리다.
일리가 없는 바는 아니나, 다른 측면을 봐야 할 필요도 있다. 만일 역사교과서가 국정화가 된다면 한국사 서술에서 ‘민족국가’에 대한 강조가 사라지게 될까.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자칭 ‘재야사학자’들은 그들이 ‘강단사학자’라 부르는 역사학자들을 논쟁에서 설득하기 보다는, 정부 당국자를 설득하는 것을 더 수월하게 여길 것이다. 실제로 5공 시절 역사교과사에서 ‘재야사학’의 논의가 일부 수용된 전례도 있다.
▲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사 선언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한국사 국정화추진 시민사회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전교조 해체 등을 외치며 회견장으로 다가오자 전교조 교사 등 이를 막다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날 서울교대에서는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검토 주제발표를 포함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 추진에 따른 교과용도서 구분 기준(안) 정책연구 토론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말하자면 한국 보수세력의 역사서술에 있어 상고사에 <환단고기> 류의 서술 경향이나(이들을 부르는 용어로 '환빠'라는 말도 있다. <환단고기>를 믿는 이들을 가리키는 이 말은, ‘재야사학’의 논리를 수용하는 이들을 대표하는 말이다) 근대사의 ‘친일 독재 미화’ 경향이 같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진영도 그들을 ‘반민족적’이라 규탄하면서 이덕일과 같은 이들의 논의를 받아들일 게 아니라 좀 더 정밀한 생각을 해야 한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한국 현대사를 ‘친일파 기득권이 망친 역사’로 규정한다. 그러나 군부 독재자들도 ‘민족’을 강조해야만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근대사회에서 ‘국가’를 ‘국민’보다 높이기 위한 유일한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박정희가 ‘반인반신’이란 얘기는 대구나 구미 정도에서나 먹힐 얘기일 뿐 전국적으로 통용될 수는 없었다.
근대사회에서 ‘국가’의 권위를 내세울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시민들의 합의로 만들어낸 공동체’였을 것이나, 물론 군부독재세력이 이를 택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세운 것은 ‘민족’이었다. 20세기에 식민지배를 경험한 이 나라에서,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얘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민족, 국가의 정통성을 위한 면역체계?
‘민족’을 경유했을 때에야 ‘국가’는 드디어 ‘국민’의 생사여탈권까지 가진 초월적이고 신성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한국의 극우파는 물론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했지만 그들 역시 민족주의를 활용했다. 남북한이 서로를 ‘괴뢰’(꼭두각시)라고 비난해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상대방을 반민족적이라고 규탄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폭압적 국가권력을 신성시하기 위해 민족을 경유한 그들의 선택은 부작용을 낳았다. ‘민족국가 건설’을 강조한 그들의 논리는 ‘통일국가 건설’을 지상명제로 삼아야 한다는 달갑지 않은 결론을 도출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국가의 기원도 참담하게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 그런 논리로 북한체제가 남한체제보다 우월하다는 인식도 생겨났다. 한국의 소위 진보세력을 오랫동안 지배했던 그 논리다. 지금도 사실상 그 논리의 잔존이 진보진영을 지배한다.
▲ 새누리당 당권에 도전하는 서청원 의원이 지난 7월 3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말하자면 군부독재세력, 극우세력의 입장에서 ‘민족주의’는 국가를 지탱하기 위한 면역체계였다. 그렇다면 친일파 청산과 통일국가 건설을 말하는 진보진영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면역체계가 과도해서 생긴 알레르기 반응이었을 것이다(알레르기 반응이 면역체계 과다로 생긴 것이란 견해는 정설은 아니다).
뉴라이트 운동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불필요한 알레르기 반응을 제거하기 위한 면역체계 교체의 출사표였다. ‘민족’의 관점에서 역사를 볼 것을 지양하고 ‘근대화’를 관점으로 서술하려고 했다. 심지어는 탈민족주의자의 입장에서는 '근대의 발명품'이어야 할 민족이란 개념을 전근대의 것으로 매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를 일부 받아들인 이들이 있을지라도, 이들은 면역체계 교체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론 한국 사회의 대중정서에서 될 일이 아니었다.
문창극의 '애국', 맥락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국 극우는 상고사의 ‘환빠’와 근현대사 ‘친일 독재 미화’가 공존하는 분열증적 상황에 처해 있다. 박근혜 정부의 관료 중에서도 괜히 상고사에 대한 ‘재야사학’적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으며, 이들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나온 상황이다.
얼마 전 총리후보로 지명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 문창극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자신은 ‘친일파’가 아니라 ‘애국자’라 떳떳하게 강변할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조선이 대륙의 지배자였다고 믿으면서, 우리는 일본에 의해 근대화됐지만 결국엔 일본을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 ‘애국자’를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근대화’를 보자고 말하면서도 근대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선 침묵하곤 한다.
우리는 민족주의가 진보의 주요한 근거가 되어온 대한민국의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벗어나서 행동할 수는 없다. “민족주의는 본래부터 진보가 아니다”라는 일각의 주장에 완전히 찬성할 수는 없는 이유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면 ‘면역체계’와 ‘알레르기’ 간의 이 분열증을 벗어나서 사고할 필요도 있다. 상대방을 친일파 반민족 세력으로 사고하고 그들이 민족을 파괴할 거라고 믿는 것이 적절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6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퇴근하며 기자들에게 자신이 쓴 칼럼을 보여주고 있다.이날 문 후보자는 로비에서 선채로 20여 분간 자신을 둘러싼 친일사관 논란 등에 대해 해명했다. (연합뉴스)
진보 역사관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 가장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의 권리를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것이고, 이를 통한 민주주의 공화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원자화된 시민과 비대한 국가 사이에 국가를 통제하는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일이다.
‘87년 체제’ 역시 이를 목표로 했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고 역사를 1987년 이전, 혹은 1997년 이전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보수정부들에 의해 이 기획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노동이주 남성과 결혼이주 여성의 유입 없이는 지탱하기 어렵게 된 사회에서 진보는 ‘민족’을 말하고 보수는 ‘국가’를 말하며 싸워댄다.
언제까지 ‘뉴라이트’와 ‘탈민족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싸잡아 비난할 것인가. 언제까지 ‘다문화주의는 민족을 해체하려는 보수의 음모’라고 믿고, 다문화사회에 대한 고민을 보수세력에게만 밀쳐댈 것인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군대를 가는 세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는 걸까.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도, 변화된 환경에 발맞추는 진보적 역사관이 필요한 때라는 문제의식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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