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UN 총회 연설에 대한 국내 정치권의 반응이 갈린다. 새누리당은 "한반도 통일 및 동북아시아 평화 조성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호평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구체적 실천 노력없는 공허한 메아리"라고 혹평했다.

이 호평과 혹평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미디어스>에서도 누누이 지적했듯 박근혜 정부의 외교 기조는 큰 틀에서는 합리성을 가지지만 세부로 오면 세밀함이 부족하고 실천의지가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틀의 기조를 나쁘지 않게 잡은 정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국내정치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자들은 이 정부가 “외교를 신경쓰고 국내정치에 상대적으로 무심하다”고 평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이 정부가 “국내정치에 골몰하느라 외교의 어떤 부분을 희생한다”라고 평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박 대통령의 UN 총회 연설은 북한 인권 문제와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를 함께 언급했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의 여러 대립각 속에서 균형을 지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일본을 지나치게 자극하지는 않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한 호텔에서 미국 주요 연구기관 대표들을 접견,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박 대통령이 한국 시각으로 25일 오전 뉴욕 소재 주요 외교안보연구기관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한국의 중국 경도론은 오해”라고 밝힌 것도 굉장히 사려깊은 대응이다. 최근 미국 외교가에선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어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다. 국내 보수언론들이 간헐적으로 이를 받아쓰며 박근혜 정부 외교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와 학계를 상대로 펼치는 로비의 산물이란 시선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중국 경도론’을 직접 언급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미일 안보동맹의 틀 속에서 한중 우호노선을 추구하며 북한마저 압박하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은 ‘통일은 대박’이란 구호 속에서도 대북경색을 풀어갈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줄곧 문제로 지적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대변인이 "현 정부 들어 '남북한 신뢰 프로세스 구축,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드레스덴 구상, 통일대박' 등 화려한 구호는 많았으나 그 어느 것 하나 실현된 것은 없다"고 꼬집으며, "'통일된 한반도가 새로운 동북아를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5.24 조치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한 것이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물론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하여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많은 카드를 취고서도 끝끝내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거부하는 이유가 과연 정말로 원칙적 대응의 문제인지 아니면 국내정치에서 보수파의 진보파에 대한 헤게모니를 놓지 않고 싶기 때문인지 의문이다.
서울에서 철도를 타고 유럽까지 달려가겠다는 발상은 장쾌하다. 그러나 착상이 아무리 장쾌하더라도 우리는 눈앞에 있는 평양을 통하지 않으면 런던은커녕 베이징도 육로로 갈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화해협력에 대한 구체적 실천이 없는 통일 운운은 결국 북한 정권이 붕괴하고 흡수통일이 시행되길 기다리는 것으로 오인 받을 수밖에 없음을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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