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관심을 끌었던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부결로 결론이 났다.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에 더한 자치권을 주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독립투표에서 드러난 것은 세계 각국이 이 사태를 단지 가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찬반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안보적 관점에서 분리독립을 우려했고, 스페인과 중국 등은 자국 내부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 분리독립을 우려했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도 아닌 중국의 속내는 언론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스코틀랜드 주민투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며 독립 투표가 가결되는 것을 우려하느냐"는 질문에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는 영국의 내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논평하지 않겠다"고 짧게 답변했다.
▲ 18일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된 영국 스코틀랜드 의 에든버러시 로열 하이런드센터 개표소 테이블에 19일(현지시간) 독립에 '반대' 표시를 한 투표지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의 내심을 대변하는 복수의 중국 언론들의 반응은 달랐다. <환구시보>는 9일자 사설을 통해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540만명으로 영국의 8%에 불과하나 면적은 3분의 1을 차지한다면서 스코틀랜드가 분리되면 영국은 일류국가에서 이류국가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영국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신경보>도 스코틀랜드가 분리되면 영국은 단순한 관광지와 역사박물관에 불과한 삼류국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의 정치·경제·문화 중심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이 영국의 국가적 지위를 염려해야 할 이유는 없다. 중국이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에 촉각을 세우는 이유는 중국이 티베트 등의 분리독립에 반대를 표하고 있고 홍콩을 포괄하며 장래에는 대만까지 포괄할 ‘하나의 중국’ 노선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과 긴밀한 이웃인 한국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중국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통일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득실이 치열하게 주판알을 튀길 거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통일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큰 이득이 된다. 17일 '남북통일이 주변 4강(미·중·일·러)에 미치는 편익비용 분석'이라는 주제로 열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주최 국제세미나에서 쿄지 후카오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교수는 "통일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가속화될 경우 동아시아 분업구조에서 일본의 기여도가 저하되고, 수출이 정체될 것"이라며 "중국 GDP는 840억 달러, 고용은 905만명 확대되는데 반해 일본의 GDP 및 고용은 상대적으로 증가 폭이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세미나에서 진징이(金景一) 중국 베이징대학교 교수는 "중국은 남북분단으로 높은 안보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나 통일이 되면 중국 동북3성(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GDP가 1조 위안(1626억 달러) 이상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렉산더 제빈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한국연구센터 원장은 "남북통일에 따라 러시아에 막대한 안보적·경제적 이익이 예상된다"고 전망하는 등 주변국 중에서 일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나라는 없다.
그러나 군사외교적으로 본다면 문제는 한층 복잡미묘하다. 미국은 북한과 북핵을 핑계로 중국을 포위하는 안보동맹을 구축하는 중이다. 중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이 한반도 전체에 친미정부를 들어서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 있다.
미중 슈퍼파워 간의 갈등을 떠나 보더라도, 한국이 통일될 경우 중국 입장에선 자국 내 소수민족(조선족)과 같은 민족이 세운 가장 번영한 통일국가가 국경선을 맞대는 상황이 된다. 중국 내 소수민족 중 중국 외부에 독립국가가 있는 나라는 한국과 몽골 정도다. 동북3성의 계발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동북3성이 급속하게 통일한국의 경제권역에 포섭되는 것을 염려할 수도 있다.
결국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문제에 쏠린 세계의 지대한 관심은, 한국 역시 한반도 통일이란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선 주변국들과 충분한 신뢰관계를 쌓아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통일은 대박’을 외치는 이 정부는 다행히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래에는 단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도식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한국 사회의 주류가 이 문제를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동물 행동학자들이 진행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의 사례로 ‘화난 원숭이 실험’이란 것이 있다. 동물원의 우리 한가운데에 높은 장대를 세워 두고 그 위에 먹음직스러운 바나나 한 꾸러미를 놓는다. 그리고 나서 동물원 우리에 이틀 정도 굶은 배고픈 원숭이 4마리를 집어넣는다. 원숭이들은 바나나 꾸러미를 보고 미친 듯이 장대를 타고 올라가지만, 바나나에 손이 거의 닿을 무렵 실험자는 준비해 둔 물 호스를 열어 원숭이를 공격한다. 물을 매우 싫어하는 원숭이들은 그날 내내 아무도 장대에 다시 올라갈 엄두를 내지 않는다.
이튿날 4마리 중 2마리를 우리에서 빼고 이틀 정도 굶은 새로운 원숭이 2마리를 넣는다. ‘신입’들은 바나나 꾸러미를 보자마자 당연히 올라가려고 한다. 그러면 어제 쓴 경험을 한 ‘고참’ 원숭이들이 그들을 결사적으로 막고 끌어내린다.
셋째 날이 되면 첫날 들어왔던 나머지 2마리 원숭이마저 우리에서 빼고 이틀 굶은 ‘신입’ 2마리를 다시 집어넣는다. 이제 첫날 장대를 오르다 물벼락을 맞은 원숭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물벼락을 맞은 적이 없는 ‘고참’ 원숭이들은 이때에도 자기들이 겪은 대로 신참들을 뒤따라 올라가서 장대에서 끄집어 내린다. 세 번째 날부터는 실험자가 물 호스를 아예 빼놓은 상태였는데에도 그렇게 된다.
전작권 환수를 차일피일 연기하려고 하는 국방부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의문이 든다. 안보문제와 북한문제에 관한 한 친미노선만 강화하면 된다고 믿는 한국 사회의 주류들은 결국 이 ‘화난 원숭이’들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