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앞에는 두 가지 나쁜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과도기를 조용히 보내는 것이다. 당 위기에 손도 못 댄 채 쉬쉬하다 다음 지도부로 넘기는 방법이다. 과거 비대위가 그랬다. 다른 하나는 뭔가 대책을 내놓기는 하지만 그게 오히려 당내 갈등을 촉발, 새로운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방식이다. 박 위원장의 탈당 철회로 ‘갈등 시나리오’는 막을 내리고 ‘조용한 시나리오’로 옮겨가게 됐지만 새정치연합의 운명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두 시나리오 사이에는 조용히 무너지느냐 시끄럽게 무너지느냐, 위기를 지연시키느냐 현재화하느냐 말고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위기 진단과 해법이 잘못되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결과는 같다.”
18일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박영선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는 법> 중
문희상 비대위의 출범을 보면서 계속해서 이대근 칼럼의 저 구절이 떠오른다. 박영선의 공과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원한 비대위가 결국 ‘갈등 시나리오’가 아닌 ‘조용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는가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제1야당의 당권을 잡은 것은 벌써 세 번째다.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시절 당의장을 역임한 적이 한 번,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비대위원장을 맡은 적이 한 번이다. 대선 직후 문희상 비대위의 출범에는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합을 맞춰본 이가 정권 초 야당의 비대위원장을 맡는 상황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강경파들에겐 성이 차지 않을 지라도, 정권 초 야권의 낭패감을 수습한다는 의미는 있었다.
▲ 노선대립과 계파갈등으로 위기에 처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된 문희상 의원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 추천단 회의를 마치고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문희상 비대위의 출범은 무엇을 의미할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희상은 친노로 분류되지만 강경파는 아니다. 누구도 시비를 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라고 평했다. 문희상 비대위가 ‘개혁’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기 십상이다는 평가다.
9월도 절반 이상이 지난 지금, 내년 2월의 전당대회까지는 반년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임기 2년을 보장할 내년 2월의 전당대회는 2016년 총선의 공천권을 좌우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구성원들이 이제야 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는 평을 듣는 요즘이지만, 결국 그들이 당권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는 시선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남들이 뭐라든 의석 130석을 보유한 거대 공룡 야당이다. 남들이 뭐라든, 130인의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는 자영업자 연합은 그 자체로 존립의 근거가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정부 여당의 최대 우군은 무능력한 야당이라 조소할지라도, ‘자영업자 연합’이 생존할 수 있는 주요 근거는 한국 보수의 척박한 태도다. 박근혜 정부가 ‘낙제점 정치’를 펼치기에 그들은 ‘여당 낙제점 이하 정치’를 펼치고도 양당제 체제 하에서 40% 정도의 의석을 기대할 수 있다.
‘5선 의원’이란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그 이상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야권 지지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경선룰에 대해 조언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만큼도, 문희상 비대위가 과도기의 역할을 하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당연히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소위 친노라고 분류되는 당내 기득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모종의 개혁을 실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출범부터 ‘관리형 비대위’라 평가받는 이 비대위가 할 일은 갈등을 적당히 봉합하고 다음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의원이 당권을 접수하도록 중재(?)하는 것 밖에 없어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아직까지도 새정치민주연합에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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