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의 시대다. 정부가 11일 담뱃값 2000원 인상안을 발표한 이후 증세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일부 언론에 의하면 12일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담배에 대한 개별소비세 신설방안을 설명하면서 담뱃값 인상에 대해 “증세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발언의 취지는 금연정책의 일환으로 담뱃값을 올린 것은 사실이나 담뱃값을 올리는 과정에서 담배 가격을 구성하고 있는 세금 역시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간 오로지 금연정책의 일부로서만 담배가격 인상을 고려했다는 설명에서는 약간 더 나아간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정부가 기획재정부 소속 관료들의 이런 입장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우회 증세’의 의도를 명백히 하고 담뱃값 인상을 추진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SBS는 12일 취재파일 <담뱃값, 3500원도 5500원도 아닌 왜 하필 4500원일까>라는 제목의 ‘취재파일’을 통해 정부가 2000원 인상안을 제출한 이유를 탐구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6월에 내놓은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현행 2500원의 담뱃값을 4500원으로 인상할 때 세수가 최고점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연구 결과에 맞추어 애초에 세수의 최대 확보를 위해 정부가 담뱃값 2000원 인상을 제시했다는 게 이 보도의 사실상 결론이다.

▲ 정부가 담뱃값을 2천원 인상하는 것을 포함한 종합금연대책을 발표한 11일 대전에 있는 한국담배인삼공사 신탄진공장 직원들이 담배를 제조·포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권은 지난해 수서발KTX 법인 설립 문제로 ‘철도민영화’ 문제가 제기될 때에도 “철도민영화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우회 증세를 시도한 정황이 명확한데도 그러한 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하면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이 여론을 거스르는 일을 할 때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2기 경제팀 출범 이후 박근혜 정권은 조금 더 뻔뻔해졌다. 안전행정부는 12일 주민세와 자동차세를 점차적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지방세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주민세를 2년에 걸쳐 1만원 이상 2만원 미만의 폭으로 인상하고 법인의 주민세도 과세구간을 현재의 5단계에서 9단계로 세분화하고 2년에 걸쳐 100% 인상한다. 자동차세 또한 2017년까지 100% 인상하고 재산세 세부담상한선도 상향 조정된다. 지방 재정이 파탄인 분위기에서 지방세수를 늘리겠다는 취지다.

1기 경제팀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해 세제개편 논란에 대해 “거위 깃털을 살짝 빼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앞서 언급한 박근혜 정권 특유의 ‘아니라고 하면서 하기’는 이런 거위의 깃털을 살짝 뽑는 것에 비유할만한 일이다. 어쨌든 거위를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기 경제팀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보면 거위의 깃털을 살짝 뽑는다기 보다는 여러 깃털을 뭉텅이로 뽑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취임 직후 노골적인 경기부양을 기정사실화하며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활성화와 기업들의 사내유보금 배당 유도,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빙자한 기업 및 지자체 민원 해결 등 민감한 사안들을 밀어붙였다. 분명히 언급하면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알면서도 한국은행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 또한 대놓고 감행한 바 있다.

증세는 경제민주화나 생애주기별맞춤형 복지정책 등을 정면에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는데 그간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합리적 세정을 통한 세수의 추가 확보로 공약을 달성하겠다고 반복해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즉, 증세는 안 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세수부족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되자 이제는 최경환 부총리를 중심으로 정부는 이런 저런 수단들을 통해 사실상의 증세에 나서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종종 ‘황소’에 비견된다는데 그런 이미지에 걸맞는 행보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야권 일부와 진보진영은 복지제도 등의 확충을 위해서는 보편증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최경환 경제팀의 이러한 질주(?)는 그간 증세를 주장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반가운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관점보다는 지난 정부에서 이뤄진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고소득층에 과세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증세를 바라보는 야권의 관점에 미묘한 균열이 보인다. 그러나 보편증세, 부자감세, 법인세 및 재산세 등에 대한 증세, 누진세 강화 등의 여부로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방향을 입체적으로 보고 이를 조망해서 상황을 분명히 하는 것 또한 지금으로서는 필요한 일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 “증세는 없다”는 약속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확충에 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재원 확충은 지하경제양성화와 예산조정, 세무행정의 합리화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 초기 각 기관들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2년차가 시작되면서 논의되고 있는 증세는 경제민주화나 복지제도 확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와 ‘규제완화’의 액세서리로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위에서 예로 든 거위의 털을 뽑는 문제도 이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다. 1기 경제팀의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박근혜 정권 출범 직전 언론 등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재정의 역할’을 중요하게 언급한 바 있다. 조원동 전 수석은 재정건전성의 문제는 연단위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 또한 이와 관련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최경환 경제팀은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말하면서도 재정적자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입장에 처해있다. 지난 1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담뱃값 인상 문제를 논의하던 중 김무성 대표가 최경환 부총리를 향해 재정건전성을 따질 때 공기업 부채 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이런 현실의 반영이다.

1기 경제팀의 ‘증세 없는 복지’와 2기 경제팀의 ‘재정균형을 위한 증세 아닌 증세’는 서로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긴 하나 박근혜 정권이 애초 세웠던 청사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확충, 재정 정책의 중요성을 말하긴 했지만 정치적·경제적 이유 때문에 결국 임기 내에 균형재정을 달성하고 기업의 민원(?)을 해결해줘야 할 운명을 타고난 보수정부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담뱃값 인상과 관련해 야권이 던지고 있는 “증세 안 한다더니……”라는 질문은 좀 더 섬세한 문제의식을 담은 것으로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논쟁은 이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두고 이뤄져야 할 게 아니라 이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돈 없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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