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패배 이후 21개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19개월이 지났다. 민주당이 안철수 세력과 통합하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꾼 지도 6개월이 지났다. 7.30 재보궐선거 참패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퇴진 한 후 8월 초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를 맡은 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어제 오늘 우리는 비상대책위원이 한 번도 구성되지 않은 그 ‘나홀로 비대위’의 위원장 자리에 외부 인사 누구가 내정되었느니 마니 하는 보도의 봇물 속에서 의석수 100석이 넘는 거대정당이 흔들리는 꼴을 보고 있다. 비대위원 한 번 선임되지 않은 그 ‘나홀로 비대위’의 위원장이 다른 비대위원장을 선임하면서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려 했는지 아니면 공동비대위원장으로 남으려고 했는지도 명확하게 확인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복수의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상황의 대략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비대위원장 영입을 위해 접촉한 인사는 소설가 조정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언론학과 교수, 김부겸 전 의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등이었다.
애초 박영선 위원장이 진보-보수 성향의 ‘투톱’ 비대위원장을 내세우고 뒤로 물러서려는 상황에서 안경환-이상돈 조합을 꾀했다는 분석도 있고, 이는 이상돈 교수 선임설이 언론에 흘러나오면서 당내 반발이 심해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급조된 변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이상돈 교수에 대해 박영선 위원장이 문재인 의원에 대해서 양해를 구했다는 보도도 있고 문재인 의원은 양해를 한 것이 아니라 우려 의사를 표명했다는 보도도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하나 명확한 것이 없는 가운데 결정에 반발하는 의원들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두 번의 원내대표 합의로 리더십이 상실된 박영선 위원장은 차기 위원장을 선임하는 문제에서조차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흘러나온 비대위원장 후보군부터가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실을 보여준다. 성향과 특성이 제각각인 이들의 공통점은 ‘명망가’란 것 정도다. 전략이나 컨셉을 잡고 비대위원장을 선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산적한 문제들을 떠넘길 수 있는 인물을 보기 좋은 그림으로 데려오려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저런 사람들이 비대위원장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인물을 추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으나 비대위원장 선임 자체가 '출구전략'으로 보이는 상황은 매우 갑갑한 것이 현실이다.
박영선 위원장과 문재인 의원의 대화에 대해서도 복수의 해석이 나오는 상황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더 이상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제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게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가 계파정치라면 계파 수장끼리의 소통과 타협을 통한 의사결정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박영선 위원장이 몇 명의 의견을 구해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강경파 의원들이 반발을 하는 상황은 이제 새정치민주연합은 계파정치조차 붕괴한 각자도생의 지경으로 빠져들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당’이 아닌 셈이다. 그나마 2012년의 민주통합당은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했기에 어느 정도는 조직 같은 모습을 보였다. 비주류는 선거운동에 제대로 결합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주류와 비주류의 구별 정도는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의 제1야당에선 그러한 구별조차 힘든 지경이다.
애초 금년 3월초 전격적으로 발표된 안철수 세력과의 합당 역시 기존 민주당의 지리멸렬을 해결하기 보다는 외부에서 국민적 기대를 받던 인사를 데려와 지도부를 구성하면서 문제를 덮어 두는 방식이었다. ‘투톱’이 될지 ‘원톱’이 될지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사퇴를 하게 될지 함께 남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비대위원장 선임 역시 비슷한 식의 은폐 내지는 봉합의 수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매우 자연스럽다.
‘리더 1인’과 ‘수많은 의원 개인’ 사이에 아무런 매개과정이 없는 정당, 지도부에서 무슨 결정이 나오든 당내에서 조율되기 전에 의원 개인이 성명서를 내고 반대하는 의원들끼리 연명서부터 돌리는 정당, 당내 갈등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는 정당에 정권교체의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이 상태로라면 새누리당의 자멸에 의해 요행히 정권을 잡더라도 어떤 식으로 정국을 운영할지 끔찍할 뿐이다.
비상대책위가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 단지 그때까지 정쟁을 거듭하며 시간만 보낼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전당대회를 조속히 실시할 수는 없는지부터 의원들이 중지를 모아야 한다. 어떤 식으로 누구를 내세우든 리더십을 줄 수 없는 현재의 형태로는 외부의 참신한 인사를 영입하는 일조차 의미가 없다. 누가 나오든 ‘흔들기’와 ‘시간 때우기’만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대위가 됐든 전당대회가 됐든 새로운 리더십으로 권한을 이양할 수 있는, 파편화된 의원들의 성향을 대의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기구 내지는 관계망의 복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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