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놀랐다. 예전부터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인 기자의 부모님은 언제부턴가 10번 중후반대에 있는 종합편성채널에 꽂혔다. 60대 초반인 아버지와 50대 후반인 어머니는 “TV조선이 앵커 목소리가 시원시원하게 들리고, 세월호 참사도 가장 빨리 보도한다”고 평했다. “그것만 보지 말고 JTBC <손석희 뉴스>도 보시라” 했더니 어머니가 대뜸 말했다. “그때 <왔다! 장보리> 하잖아.”

부모가 왜 세월호 가족들의 수사권·기소권 요구를 ‘정치적 협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는 2G폰에 지역 케이블TV 가입자다. 스마트폰과 포털에서 뉴스를 읽지 않고, JTBC와 MBC 뉴스를 비교해가며 시청하지도 않는다. MBC <뉴스데스크>를 보며 정치권을 욕하던 부모는 이제 MBC 뉴스를 끊고 종편을 본다. 이른바 ‘종편 효과’와 ‘디지털디바이드’는 바로 우리집에서 진행 중이다.

‘아차’ 싶었다. 이러다 부모가 멀쩡한 아들에게 ‘너도 종북좌빨이냐’고 묻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상황을 되돌려야 했다. 머리를 굴려봤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돋보기를 쓰고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것보다는 큰 TV 화면을 보는 게 낫다. 그렇다고 디지털케이블, IPTV, 스카이라이프를 달아 드리고 VOD시청을 유도한다? 수십 년 동안 근검절약과 본방사수가 몸에 배인 분들이다.

▲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즐겨찾는 웹사이트(왼쪽). 네이버 신문지면 면별보기(오른쪽)

부모가 매체비평지 기자처럼 뉴스를 읽을 순 없다. 기자는 매일 아침 뉴스스크랩서비스와 네이버 신문읽기 서비스(총 17개 일간지 면별보기)로 주요 일간지들의 지면배치를 확인한다(중앙일보도 면별보기를 제공한다). 즐겨찾기를 해놓은 포털과 10여 개의 언론사를 수시로 드나든다. 페이스북, 트위터는 필수다. 여유 있으면 뉴스페퍼민트뉴스프로에서 외신을 읽고 슬로우뉴스일다에 들른다.

방송뉴스도 스마트폰으로 포털에서 본다. 웬만한 방송사는 자사 누리집보다 포털에 더 빨리 영상과 텍스트를 올린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도 텍스트로 읽는다. 사무실에 앉아서는 큰 모니터에 창을 두어 개 띄우고 여러 매체를 비교하며 읽는다. 퇴근길엔 미리 받아놓은 팟캐스트방송 <시사통 김종배입니다>, <PBS NewsHour>를 듣거나 <뉴스타파>, <컬처비평 잉여싸롱>을 보며 감탄한다.

그런데 평범한 기자의 부모에게는 이 모든 게 다 불가능하다. 알아야 할 뉴스는 적지 않지만 점점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 부모가 즐겨보던, 속 시원하게 정권을 비판하던 지상파는 이제 망가진 지 오래다(만약 기자의 부모가 SBS 취재파일을 보면 ‘그런데 뉴스는 왜 이래?’라고 할 터지만 이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 분들에게 지상파는 그나마 볼 만한 드라마, 예능제작사다(물론 이마저도 위태하다).

물론 이 세대는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을 능력이 있다. 어지간한 어른들은 대부분 정치평론가다. 세월을 무시 못한다. 이정현이 여당 최초로 호남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소식에 아버지(61·택시기사)는 이같이 말했다. “이정현이가 이번에 순천에 예산 밀어주면 다음 선거 때 (호남) 여기저기가 한나라당(새누리당)에 넘어갈 거야. 그리고 김무성이가 자기가 예산 해줬다면서 대선 나오면 이기겠지.”

▲ 네이버 언론사별 뉴스 서비스 페이지(왼쪽), TV 메인뉴스 서비스(오른쪽)

실력 없는 야당을 날카롭게 비판할 능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특히 심각한 문제는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고, 매일 종편 뉴스를 보는 60대 택시기사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는 무리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몰락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상파가 망가지기 전, 종편이 생기기 전까지 기자의 부모는 이렇지 않았다.

종편에 빠진 추석 밥상에서 지상파의 몰락, 저널리즘의 몰락이 무섭게 다가왔다. 주간 편성표에서 광고를 완판한 프로그램이 드라마 두 편뿐이라는 SBS, 일주일 동안 뉴스데스크에 붙은 광고가 하나뿐이라는 MBC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이제 기자의 부모가 볼 뉴스는 TV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상파는 점점 종편을 닮아갈 게 빤하다. 일베식으로 말하자면 언론은 빠르게 ‘민주화’되고 있다.

언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보던 어머니가 물었다. “기자들은 다 저렇게 돈 받고 그러냐”, “저 높은 양반(보도국장)은 시청률 올리려고 그렇게 한 거였냐”고. 매일 네이티브 광고가 넘쳐나는 신문, 저널리즘이 실종된 방송을 보는 기자는 그저 “그렇다. 언론을 믿으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답이 나왔다. 답이 없다. 부모에게 EBS를 권했다. 이제부터 전화를 자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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