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와 ‘세월호’를 표적삼은 사이버테러, 통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라도닷컴 누리집(http://www.jeonlado.com)이 2000년 10월 문을 연 이래 처음이자 최악의 사이버테러를 당했습니다.
지난 8월 30일 새벽 ‘일베’ 회원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의 해킹으로 수천 건의 기사와 사진· 동영상·게시판이 삭제되고 기사 곳곳이 ‘홍어’ 등 전라도를 비하하는 낙서로 도배됐습니다.
14년 간 축적해온 전라도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한꺼번에 불에 타버린 참사와도 같습니다.

특히 ‘세월호 기억하기’ 기획기사를 집중적으로 훼손·삭제한 걸로 보아 매우 불순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전라도’와 ‘세월호’를 표적삼은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사태를 맞닥트려 통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피해 규모를 파악중이며 복구와 함께 응분의 법적조치를 취할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합니다.

홈페이지 복구 중입니다.
한 지역언론사의 홈페이지에 위와 같은 공지문이 올려왔다. 현재 이 홈페이지엔 이 공지문 이외의 콘텐츠가 보이지 않는 상태다. 공지 밑에는 광주전남민언련의 논평과 광주시민단체협의회의 성명서가 링크로 걸려 있다.
▲ 현재 '전라도닷컴' 공지 화면 캡처 사진 http://www.jeonlado.com/v5/
2일 발표된 광주전남민언련의 논평(링크)은 “이번 사건은 일각의 무리들이 언론사의 편집권을 침탈하고 콘텐츠를 훼손했다는 그 자체로 충격적인 사건인데다,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과 국민들의 상황을 충실하게 보도해온 언론사를 직접 공격하고, 특정 지역과 인물을 비하.혐오하는 발언과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광주전남민언련 논평은 “일베식 혐오 발언은 특정 지역,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 사회적 소수자 등을 향함으로써 혐오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가 다반사로 지속적인 사회 문제를 야기해왔다”라면서, “이번 사건의 경우 특정 언론사의 ‘세월호’ 기사와 ‘전라도’라는 문화적 콘텐츠를 직접 공격했다는 점에서 혐오의 내용 문제와 함께 혐오의 행위 문제가 더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광주전남민언련 논평은 “언론사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편성.제작 및 편집권을 갖는다. 지금 언론과 언론사가 사회적 공기로서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고유하게 부여되는 권한이다(...) 일베 회원들이 일베 사이트에서 혐오 발언을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라면서, “경찰은 조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진행해야 하고, 지역 언론사와 언론 관련 단체.기관들이 이 사태를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4일 발표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논평(링크)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시작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의 논평은 “사실 이런 수준의 혐오 발언은 일베 사이트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고, 혐오 발언의 정도에 따라 시시때때 사회 문제로 비화되곤 했던 일이다”라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은 이같은 혐오 발언이 말 에 그치지 않고 <전라도닷컴>이라는 언론사 침탈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라고 했다. 혐오 발언의 문제도 지적했지만 <전라도닷컴> 침탈 사태가 혐오 발언을 넘어 언론사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임을 지적한 것이다.
또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아울러 지역의 한 언론사가 이처럼 처참한 곤경에 빠졌는데, 아직까지 지역언론의 보도는 소극적이고, 지역 언론인과 언론학계, 지방자치정부나 언론기관 등도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광주시와 전라남도, 시민사회, 특히 지역 언론은 이 사태를 남의 일로 치부하지 말고 연루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재발방지책을 수립하도록 상호 협력하며 적극적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면서 지역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광주지역은 여타 지역보다 지여언론이 활성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록된 언론만 이십 여개다. 그중에서도 월간 <전라도닷컴>은 지역 관공서에서 거리를 두고 광고 비중도 높지 않으며 월간지 판매를 통해 유지되는 언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사회의 ‘독립언론’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광주전남민언련 유영주 사무처장은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전라도닷컴>은 정치·시사 뉴스 중심의 언론이 아니라 호남의 일상적인 생활에 접근하는 언론이었고 그런 부분에서 역으로 호남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측면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유영주 사무처장은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전라도닷컴>은 다른 지역언론과 비교해도 돋보이는 비중으로 기사를 내보냈다”고 설명했다. 유 사무처장은 “아무래도 ‘전라도’와 ‘세월호’란 키워드에 ‘일베’ 유저들이 자극받아 벌인 일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 5일 오전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메인화면 캡처 사진
30일 새벽 사건의 경위는 기술적 수준에서의 ‘해킹’에 의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영주 사무처장은 “관리자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언론사 및 사이트 주소에서 쉽게 추론될 만한 것이었다”라면서, “새벽에 우연히 관리자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로그인할 수 있단 사실을 알아낸 한 유저가 게시판에 올리자, 이천 여명의 ‘일베’ 유저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언론사 사이트를 마음대로 편집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야스다 고이치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따르면, 재특회(재일코리안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역시 원래는 인터넷상의 모임이었으나 차츰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일베’ 유저나 그런 성향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단식농성을 조소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거나 대자보를 찢는 등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또한 굳이 ‘일베’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한 이들(특히 여성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함께 욕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등 온라인상의 행위라 하더라도 다른 이에 대해 실질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이미 나타난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설령 동기가 단순한 장난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통상적인 행위를 심각하게 넘어서 언론사의 소유물인 콘텐츠를 타인이 제멋대로 침해한 행위다. <전라도닷컴> 측은 콘텐츠를 복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으며 이미 고소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꼭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혐오발언 및 혐오범죄를 어떻게 규정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러하듯 ‘일베’ 유저들을 ‘벌레’라고 비하하고 배제하는 것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도 있고 대응폭력이란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수준의 발언과 행위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시민사회의 규준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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