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사히신문>은 3일,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가토 다쓰야(48)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처리를 정명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의 사설은 국내 매체에도 널리 보도되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보도에 대한 압박은 용납할 수 없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이 쓴 기사를 둘러싸고 서울중앙지검이 2차례에 걸쳐 지국장을 조사(사정청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검찰이 출두를 요구한 것이다”라면서, “한국에선 지금 흡사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아간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평했다.

가토 다쓰야(48)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은 지난 8월 3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운영위원회 답변 내용과 <조선일보> 칼럼, 증권가 정보지 내용 등을 인용해 ‘세월호가 침몰한 날 박 대통령이 7시간에 걸쳐 소재 불명이 됐다’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이후 자유수호청년단, 독도사랑회 등 시민단체의 고발을 구실로 가토 지국장을 출국금지하고, 두 차례 소환 조사를 했다.
▲ 일본 아사히신문 3일자 사설. 온라인판 화면 캡쳐
<아사히신문>의 사설에 대해 국내의 법학자 및 기자들 역시 “옳은 말이다”, “부끄럽다”란 말이 나왔다. 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산케이신문> 기사가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좋은 기사인지는 회의적이지만, 법을 동원해서 처벌해야 할 문제인지는 별개”라고 설명했다. 홍성수 교수는 “설사 법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언론보도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표현의 자유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법의 동원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산케이신문>의 보도가 신중치 못했다거나 저널리즘 차원에서 비판받을 수 있는 여지는 있어 보이지만, 법을 동원해서 처벌해야 할 정도로 상당성을 잃거나 악의적인 보도인지는 의문이 든다는 설명이다.
홍성수 교수는 “UN에서도 공식문서를 통해, 공직자의 공직수행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발표한 바 있다”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또 “2010년 <PD수첩> 사건 법원 판결에서도 사인과 공인의 명예훼손 판단 기준은 달라야 하며, 공인의 공적업무를 비판하는 보도는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쓴 뒤 고발당한 일본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이 지난 8월 18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여 점심 시간 휴식을 취한 뒤 검찰 건물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 가토 지국장은 지난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서 증권가 관계자 등을 인용해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 등을 언급하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연합뉴스)
복수의 진보언론 기자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다. 한 기자는 “<아사히신문> 사설과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다”라면서 “<산케이신문> 기사가 저널리즘적 관점으로 매우 질이 낮은 기사라고 비평할 수는 있겠으나, 이런 의혹은 당사자가 바로 참사에 대한 구조 및 대처 상황을 지휘해야 하는 행정수반이라는 점에서 누구든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적절성 여부는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서도 안 되고, 법적으로도 기소 대상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기자는 “국가원수를 허위사실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외신기자를 출국금지하고 소환하는 건 <아사히신문> 말대로 선진국에서 할 일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 기자는 “<조선일보>가 어디가서 저런 짓을 했을 때 우리 신문은 저런 사설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사히신문>이 참 정론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자는 “검찰 수사가 너무했다고 본다. 고발장이 왔더라도 얘기가 안 되면 조사를 해서는 안 되는데 대단히 신속하게 했다. 검찰의 대통령에 대한 과잉충성이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3일자 <아사히신문> 사설의 전문이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 보도에 대한 압박은 용납할 수 없다>
한국에선 지금 흡사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아간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이 쓴 기사를 둘러싸고 서울중앙지검이 2차례에 걸쳐 지국장을 조사(사정청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검찰이 출두를 요구한 것이다.
한국에선 1980년대까지 오랜 시간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쥐는 독재정권이 이어졌다. 당시에도 언론탄압이 이어져 <아사히신문> 서울 지국도 폐쇄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화가 이뤄진 것은 벌써 4반세기 전의 일이다. 정권의 뜻에 따르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를 탄압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권력의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검찰이 만약 이대로 기소를 단행한다면, 국제 사회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큰 의문부호를 던질 것이다. 박 정권은 최대한 존중받아야 할 ‘언론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번에 문제된 기사는 8월3일치 <산케이신문>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됐다. 기사엔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날, 박 대통령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 시간에 남성과 만난 게 아닌가라는 ‘소문’도 포함돼 있다.
기사는 한국 신문(<조선일보>)의 칼럼이나 증권가에 흘러 다니던 정보를 근거로 쓰여 있다. 청와대는 강하게 반발하고 “민사, 형사상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밝혀다. 그 뒤 검찰 당국이 조사에 나선 것이다.
한국에는 지금까지 독특한 유교의식이 남아 있어 (이 기사를) 여성 대통령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의견이 있다. <산케이신문>이 그동안 쓴 지난 기사에서 대통령을 모욕하거나 혐한정서를 부추기는 내용이 많았다는 사실을 들어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케이신문>의 도쿄 편집국장은 이번 기사에 대해 “대통령을 비방중상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코멘트를 낸 상태다. 풍문을 안이하게 쓴 부분에 대해선 <산케이신문>도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해도, 검찰 당국이 기자를 불러, 조사를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통상적인 절차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세계 선진국의 상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공권력을 사용한 위압일 뿐이다.
박 정권은 발족 이후 대통령과 주변에 대한 접근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조사는 한국 국내 언론에 대한 견제도 포함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에선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귀중한 가치를,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제재하는 행동으로 잃어버려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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