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언론 지형도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으로 확연하게 분할되어 있다. 신문으로 치면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과 ‘한경’(<한겨레>·<경향신문>)의 구도고 그 중간에 다소 특이하게 중간자적 위치로 <한국일보>가 있는 정도다.

나머지 일간지와 경제신문들은 <내일신문> 정도를 제외하면 보수언론과 포지션이 흡사하다. 보수신문이 운영하는 종편 방송의 편향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 방송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이 있지만 현재는 ‘보수정부 2기’의 상황이다. 인터넷뉴스와 주간지 정도에서 약간의 균형이 맞춰져서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시사in> 등을 추가적으로 진보언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래서 진보언론을 지칭할 때 ‘한경’ 대신 ‘한경프오’란 말이 쓰이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엔 <뉴스타파>나 <국민TV>처럼 대안언론이란 평가를 받는 몇몇 방송들이 생겨났다.
▲ 4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그리고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입장은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현격하게 다르다. 물론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무언가를 함께 비판하는 일도 적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비판의 논거나 양상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철도 부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72)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상황, 소위 ‘방탄국회’에 대한 신문 사설의 내용이 거의 온전히 합치하는 상황은 매우 흥미롭다.
4일자 신문 사설의 제목들을 보면 <조선일보>가 <송광호 체포안 否決, 국회 문 닫으라는 말 나올 판>, <중앙일보>는 <여야 힘을 합쳐 부결시킨 체포동의안>, <동아일보>가 <비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시킨 ‘의리 국회’ 부끄럽지 않나>, <한겨레>는 <‘말로만 특권 포기’ 외친 새누리당>, <경향신문>은 <송광호 체포동의안 부결시킨 국회의 후안무치>, <한국일보>가 <송광호보다 더 못한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등으로 비판 일색이다. 다만 <한겨레>가 국회나 여야를 함께 비난하기 보다 새누리당을 중점적으로 비판하는 모양새를 보였다는 점에서 다소 정파성이 드러났을 뿐이다.
▲ 4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송광호 의원의 혐의에 대한 가치판단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비리 사슬인 관피아(관료+마피아), 그 가운데 이른바 철피아(철도 마피아)를 파헤치는 수사”(<중앙일보>), “송 의원의 혐의는 세월호 사건의 한 원인으로 지목돼온 관피아 척결과 직결”(<한겨레>), “철도 부품 제작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이른바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혐의”(<경향신문>), “송 의원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철도납품비리는 민관유착과 ‘관피아’ 폐해의 결정판”(<한국일보>)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한겨레>가 새누리당을 좀더 강경하게 비판했으나 보수언론도 새누리당을 비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번 표결로 새누리당과 김 대표가 그간 주장해온 정치 혁신은 쓰레기로 버려진 꼴이 됐다”(<조선일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는 수차례에 걸쳐 ‘비리 의원을 보호하는 방탄국회는 없다’고 강조하더니 허언(虛言)임이 드러났다”(<중앙일보>), “변화와 혁신을 내걸고 대표에 당선됐으면 적어도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소속 의원에 대해서는 당 전체가 단호하게 선을 긋도록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했다”(<동아일보>)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집중 난타의 대상이 되었다.
간만에 신문 제호를 가리고 읽는다면 무슨 신문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신문 사설의 집중도다. 그만큼 ‘방탄국회’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고 뻔한 것이란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온전히 합의할 수 있는 상식의 한계선이 이 정도 사안에서나 생긴다는 얘기도 된다.
▲ 4일자 한겨레 1면 기사
이 한계지점을 발견하는 것인 반갑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 보수와 진보가 합의하는 영역의 넓이를 확대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궁금하기도 하다. 적어도 국가안보, 외교문제, 경제적 이해관계가 분명한 사안에선 이와 같은 합치가 좀 더 빈번했으면 좋겠지만 한국 언론의 지형에서 이러한 바람은 사치다.
우리는 불과 몇 달 전 이와 같은 합치를 한 번 경험한 바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충격이었다. 그때의 언론들은 참사 몇 달 후 특별법을 두고 극명하게 분열되어 있다. 그렇게 큰 충격을 준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의 문제가 이토록 정파적으로 분열할 사안인지, 몇 달만에 다시 의견이 합치된 이 신문 여론에 물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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