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연일 ‘누워서 침 뱉기'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어서 안쓰럽다. 2일 <동아일보>는 5면 기사 <확실한 증거 내놔도 “정부 못믿어”… 정치인마저 괴담 가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난데없는 ‘애국가 음모론’으로 뜨거웠다. 한 음악가가 올린 이 글은 ‘교황 오기 하루 전에 전광석화처럼 ‘서울시 교육감에 의한 애국가 낮춰 부르기 시행령’이 시행됐다’며 ‘애국가 낮춰 부르기는 전교조의 애국가 기피 전략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애국가의 음정을 낮춰 부르면 원곡의 기백이 사라지고 어두운 노래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이 글은 한 페이스북 사용자가 복사해 올리면서 카카오톡, 트위터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SNS에는 ‘좌빨’들의 집요함이 무섭다’고 공격하는 측과 ‘지나친 음모론’이라고 반박하는 측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애국가 음정을 낮춰 부르라는 방침이 전교조의 전략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이 방침은 보수 성향의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때 나왔고, 이전에 다른 교육청에서 이미 시행된 적도 있다.

‘애국가 논란’은 최근 인터넷에서 괴담이 유포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의 주장을 담은 글이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톡 메신저 등 SNS를 통해 전파되고, 진실인 것처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
▲ 2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하지만 이 ‘애국가 음모론'의 확산은 단지 SNS의 공로가 아니었다. 불과 4일전인 8월 29일 16면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음역 낮춘 애국가' 씁쓸한 음모론>이란 제목으로 해당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여기서 <동아일보>는 애국가 음역을 낮춘 것이 문용린 전임 교육감 시절 결정한 사안이라는 서울시교육청의 해명을 실었음에도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수원시립교향악단 악장 등을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김필주 씨(60)”의 어설픈 음모론의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음악평론가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예술경영전공)”의 전문가 코멘트를 받아 “음역을 낮추면 다소 무거워지고 힘이 빠지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음역을 낮추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문 합창단이나 일반인 등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음역을 어떻게 조정할지 심층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논란 거리도 되지 않는 코미디 같은 주장을 논란으로 받은 것은 <동아일보>였다. 주류매체 중 ‘서울시교육청 애국가 음모론’을 받아 쓴 곳은 사실상 <동아일보>가 유일했다.
▲ 8월 29일자 동아일보 16면 기사
<동아일보>는 이 유치한 보도가 신경이 쓰였던지 1일자 31면 송평인 논설위원의 [횡설수설] 지면에서 부연설명을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은 <애국가 낮춰 부르기 음모론>이란 제목의 횡설수설하는 수필에서 “하지만 애국가 낮춰 부르기가 조희연 현 서울 교육감이 아니라 문용린 전 교육감 시절에 추진된 것으로 드러나 그 주장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라며 음모론에 거리를 둔다.
그러나 송평인 논설위원은 이어서 “음모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애국가 낮춰 부르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꽤 있다. 애국가 선율은 안익태의 ‘코리아 환타지’에 들어 있다. 작곡가가 곡을 가장조로 썼으니 그 조로 연주해야 곡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애국가를 불러본 사람이면 대부분 낮춰 부를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서울시교육청이 굳이 두 음을 낮췄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한 음만 낮춰 사(G)장조로 불러도 애국가는 수월하게 부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괴상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곧 죽어도 공익성은 있었다고 우기려는 자세다.
모든 사안의 뒤편에 이 사회를 부정하려는 운동권의 음모가 있다는 식의 <동아일보>의 ‘권레발'은 스스로의 ‘횡설수설'을 통해 폐기되었다. 그런데도 왜 <동아일보>는 왜 이 음모론을 “인터넷과 SNS”의 책임으로 돌려야 했을까? 술자리 사담 수준의 얘기가 무수히 올라오는 그 공간에 음모론은 숱하고 그중 보도가치가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의무일 텐데 말이다.
▲ 1일자 동아일보 31면 칼럼
이러한 <동아일보>의 이중적인 태도는 2009년 2PM 박재범의 한국 비하 논란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2009년 9월 9일, <동아일보>의 이진영 당시 인터넷뉴스팀 차장은 2PM 박재범의 한국 비하 논란에 대한 칼럼을 쓰며 인터넷 문화에 대해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이진영 차장은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어떻게 친교 사이트에서 주고받은 사적인 글이 공론장을 달구는 최대 이슈가 됐느냐는 점이다.
박재범이 '한국인이 싫다'고 털어놓은 공간은 몇몇 지인을 위한 친교 사이트였다. 모두가 듣고 있었다면 결코 내뱉지 않았을 적나라한 속내는 몇 년이 지난 후 누군가에 의해 내밀한 공간 밖으로 드러났고 곧바로 '인기 스타의 한국 비하 발언'이라는 뉴스로 터져 나왔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경계를 간단히 허물어뜨리는 디지털 미디어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디지털로 한 번 기록된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겹겹의 잠금장치를 둘러놓아도 비밀을 보장할 수는 없다. 전파 속도도 매우 빠르다. 동아닷컴이 추적한 바로는 문제의 발언이 5일 새벽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와 뉴스 사이트의 보도를 거쳐 소속사의 공식 사과로 이어지기까지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
인터넷은 수많은 장밋빛 전망 속에 등장했다. 하지만 공동체와 공론장 복원이라는 기술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소모적인 논쟁에 집단적으로 한눈을 파는 난장(亂場)이 지금 온라인 세계의 실상이다.
말이 곱지 못했던 연예인의 퇴출 여부보다는 정보기술(IT) 강국의 하드웨어를 이렇게 활용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뉴미디어 문화에 대한 반성이 '재범 한국 비하' 논란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견해는 그 자체로는 타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해당 사안에 대한 최초의 보도를 굳이 한 그 ‘뉴스 사이트'가 <동아닷컴>이었단 것이다. 9월 5일자에 ‘뉴스 낚시질’을 하며 공론장을 파괴한 언론의 종사자가 불과 5일 후에 ‘소모적인 논쟁에 집단적으로 한눈을 파는 난장’의 책임을 인터넷 문화에 떠넘기는 것이 <동아일보>의 실상이었다.
<동아일보>가 ‘낚시'를 즐기는 것이야 조회수에 목맨 다른 뉴스 사이트와 더불어 비판의 대상이 될 일이다. 그러나 저급한 ‘낚시’를 즐기는 <동아일보>가 마치 자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격이 있는 냥 그 저급함의 책임을 인터넷과 SNS에 돌리는 작태는 가증스럽다. 더구나 그 ‘낚시'가 단지 조회수를 노리는 선정성이 아니라 서울시 교육감의 정책에 색칠을 하는 정치성을 띄고 있다면 더구나 그렇다.
<동아일보>는 단순히 ‘낚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세대에게 특정한 편견을 부당하게 주입시키고도 그들은 언론윤리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최소한의 데스킹 기능도 작동하지 않은 ‘애국가 음모론'의 말로는 그 편협함과 허구성에 대한 책임을 ‘인터넷과 SNS’에 돌리는 것이었다. 그럴 바에야 ‘인터넷과 SNS’만 쳐다봐도 될 것을 <동아일보>는 왜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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