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과 새누리당이 직접 논의를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장외투쟁에 나섰다. 그리고도 시간은 정확히 흘러 정기국회도 개원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상황이다. 똑같은 주문, 엇비슷한 진단들이다. 불과 열흘 전인 8월 22일자 신문 비평 기사에서 <미디어스>는 이렇게 진단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마비되고 난 뒤…
“새정치민주연합이 사실상 '마비' 상태다. 유족들을 설득할 방도도 없고, 그렇다고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할 용기도 없다. 그런데 질타 받는 ‘무능한 제1야당’이 나자빠지자 이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정부 여당’의 모습이 보인다.

(...) 세상은 여론만 정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거나 묵살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입장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일을 해줬어야 했다. 그들이 나서서 유족들의 요구를 관리하거나 묵살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고, 정부 여당을 지극히 싫어하는 30% 정도의 국민들의 비판이 새정치연합을 향해 ‘무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의 상황이었다

(...) 그들은 다시 이 상황의 화살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하길 기대해야 한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처한 상황이 외통수다. 그래서 미적미적 일어나지를 않고 있다. 그러자 자기 잇속 차리기에 ‘유능하다’고 소문난 이 정부 여당이 멋쩍은 상황이 됐다. 야당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유족들을 직접 만나서 설득할 용기는 없다. 원래 그런 용기와 야성이 없는 세력이다. 평범한 사람 만나는 걸 귀족이 자기 옷에 똥물 튀기는 것 마냥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 다른 언론들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지면 편집 비중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비해 현격하게 적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마비된 상황에서 할 말이 많지 않은 것이다. 오직 <조선일보>와 <한겨레>만이 ‘결단’을 요구했다. 그런데 <한겨레>가 요구한 결단은 내용이 뚜렷하다. 대통령이 나서란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요구한 결단은 실체가 안 보인다. 기사를 봐도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없다.
<조선일보>는 대체 누구에게 결단을 내리란 것인가. 내심을 짚자면 물론 야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일어나서 유족의 요구를 묵살하고 새누리당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면 그들만이 욕을 먹고 이 사태는 종료된다.

여당은 할 수가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있기 때문에 야당이 저항한다면 일이 안 된다. 결국 야당이 마비되면 대통령이 설득에 나서는 게 제일 빠르지만 대통령이 불능인 걸 그들이 더 잘 알고 대통령에게 뭔가를 요구할 배짱도 없다. 진보언론이 뭐가 안 되면 ‘무대’(김무성 대표)의 결단을 요구했듯, 이제 보수언론은 박영선을 향해 ‘일어나세요, 용사님!’이라고 외쳐야 할 판이다. 그런데 박영선 의원은 이제 그런 말이 씨도 안 먹힐 정도로 지도력에 손상을 받았다. (...)“ (<세월호 특별법, 정반대의 '결단' 요구한 조선과 한겨레>, 기사 링크)
‘답 안 나오는’ 세월호 출구전략 고수하는 조선일보
그리고 열흘 후, <조선일보>는 여전히 ‘답이 안 나오는’ 출구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1일자 6면 기사 <리더십 무너진 野… 온건파, 세력화 나선다>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온건파가 세력화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해당 기사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1일까지 원내(院內) 복귀 여부도 정하지 못한 채 표류(漂流)하고 있다. 국민 여론은 '야당의 국회 복귀와 정상적인 법안 처리'를 주문하고 있지만,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강경파들 눈치 때문에 정기국회 참여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그러자 장외투쟁 반대 입장을 밝혀온 온건파 의원들은 토론회 개최 등으로 독자 세력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한다.
▲ 1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그런데 <조선일보>의 ‘훈수’는 이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지금의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선택은 더 이상 정국을 주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여당과 야당과 유가족 대책위가 함께 협의하는 틀을 만들었다면 야당의 선택에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유족에 대한 설득은 야당 몫으로만 남겨 두다가 야당이 상처를 받으면서 여당과 유가족이 만나는 상황이 됐다.
이제 ‘세월호 특별법 정국’은 여당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협상 결과에 좌우될 뿐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민생법안’을 세월호 특별법에 연동하느냐 마느냐가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이 내세운 그 ‘민생경제법안’을 ‘카지노믹스’라 부르며 조롱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정국 경색이 야당 탓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무리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협상은 어떻게 될까. 여의도 정가에선 “협상에 진전이 있으며 추석 전에는 어떻게든 합의가 될 것”이란 시선이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행동에 대해선 여의도 정가의 예측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에 사태는 좀 더 지켜봐야만 한다. 지난번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재협상안에 대해서도 여의도 정가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유족들을 상당수 설득했으며 재협상안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라면 협상이 장기화되고 투쟁동력이 줄어들 때 ‘질서정연한 퇴각’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의 유족 대책위는 당사자들의 상이한 욕망이 교차하는 집단이다. 여당도 야당도 이들을 대의하는데 실패한 상황에서 이들이 어느 정도의 요구를 고수하고 어느 정도의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예측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엔 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여당이 유가족 설득을 야당 몫으로 미루고 이 사안을 정략적으로 취급했기 때문도 크다.
조선일보가 ‘강경파’와 ‘온건파’를 나누는 이유?
<조선일보>는 걸핏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누어 온건파의 손을 드는 ‘훈수질’을 하려고 든다. 이십여일 전에도 그랬다. <조선일보>는 지난 8월 13일 3면 기사 <"場外세력에 조종당하는 '리모컨 野黨' 집권 못한다">에서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원외(院外) 재야그룹과 이에 동조한 당내 강경파의 주장에 휘둘리고 있다. 야당 출신 원로나 중진들, 정치 전문가들은 ‘국가 운영에 대해 책임질 필요도 없고, 여야나 이념 충돌이 많아야 자신들의 입지가 확대되는 것이 장외(場外) 세력’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야당의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이상 집권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질 것’이라고 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김한길 의원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들의 진단에 대해 당시 <미디어스>는 이렇게 분석했다.
“(...) <조선일보> 기사엔 당 안팎의 원로라는 사람들이 모두 나타나 쓴소리를 하고 있다. 여기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허구적인 대립구도가 탄생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강경해서, 혹은 온건해서 문제가 아니다. 새누리당과 구별되는 정체성에 구성원들이 합의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이를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근본문제다. 정당은 어쩔 때는 투쟁하고, 어쩔 때는 타협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무슨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과 전망이 없으니 그냥 투쟁하고 그냥 타협해서 욕을 먹는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좌클릭’이니 ‘우클릭’이니 ‘선명야당’이니 ‘수권정당’이니 하는 말들은 다 부차적이다. 척추가 나가고 코어근육이 빈약한데 상체를 단련해야 하니 하체를 단련해야 하니 식이요법이 더 중요하니 운동이 더 중요하니 하는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이런 식의 훈수를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들의 훈수를 수용하면 매우 좋고, 그게 아니라 강경파와 온건파의 허구적 구도 내에서 당내투쟁을 지속하며 허송세월해도 매우 좋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도부를 고립시키는 논의 지형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기왕에 당론을 뒤집은 상황,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짱돌이 우물 안에 떨어져 그 부유물이 모두 올라오는 것처럼 당을 어쩌자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여전히 개인별·계파별로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누가 가질지에나 관심을 기울인다면, 새정치민주연합에겐 ‘정권교체 사수생’이란 시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지지자들의 ‘멘탈’도 함께 상처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리모컨 정당'은 집권 못한다" 굴욕 당하는 새정치>, 기사 링크)
문제의 핵심은 <조선일보>의 진단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난국을 해결하는데 쓸모가 없을뿐더러 ‘세월호 정국’을 타개하는 데에도 쓸모가 없다는 데에 있다. 여당은 7.30 재보궐 선거의 승리를 이끈 후 강공 드라이브를 가져가다 야당이 나자빠지자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당분간은 큰 규모의 선거가 없을 거란 상황은 새누리당이 버팅기기에도 좋지만, 바꿔 말하면 <조선일보>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무슨 소리를 하든 무시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 지난 8월 13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조선일보>는 1일 아침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온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장 민병두 의원의 발언을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민병두 의원은 “이 세월호 사건이 무슨 진보만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만의 문제도 아니다. 진보는 지금 세월호에 대해서 연민을 갖고 함께 하는 것처럼 돼 있고 보수자들은 유가족을 폄하하거나 조롱하는 것처럼 돼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정국, 정말로 돌파하려면…
말하자면 보혁갈등의 쟁점이 아닌 문제를 여야가 갈려 정쟁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야당과 운동세력이 유족들에게 결합해 이 문제를 보혁갈등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애초 여당은 유가족과 접촉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가 없다. 먼저 여당이 강도 높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유족을 만나서 그들이 원하는 수위의 특별법에 대해서 논의해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가 행여나 대통령을 흠집낼까봐 우려하여 일사불란하게 세월호 특별법의 내용을 축소하고 그 처리를 지연해왔다. 그러다가 야당이 흠집이 난 상황에서 외려 국민 여론이 썩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통령에 반대하는 이들이 저쪽에 결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애초에 그들이 대통령의 위신에 너무 신경을 써 고집을 부려서 만든 일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노사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왼쪽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연합뉴스)
<조선일보>가 세월호 정국을 정말로 지나치고 민생경제 걱정을 하고 싶다면 십여일 전 <미디어스>의 진단을 다시 돌이켜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마비되면, 집권여당이 직접 유족들과 같은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관리하면 된다. 그들의 ‘약속’은 훨씬 힘이 있을 것이다. 정치는 그렇게 일을 풀어나가는 행위다. 그런데 그 부분에 관해 근본적인 불능이 있으니, 야당이 마되비니 역설적으로 할 일이 없다. 그들 말대로 대의제 정치가 근본적 불능을 드러낸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을 향해 이 상황을 어찌 수습하려고 하느냐고 묻고 싶다. 대체로 이런 경우 그들이 알고 실천하는 문제해결의 방식은 항의하는 이들의 현장에 경찰을 투입해서 두들겨패고 끌어내는 것 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여론이 지금은 우호적이라지만 이 사안에 대해 그런 행위까지 용인해줄까. 그래서 장담하건데, 이 상태로 며칠 지나면 어쩌면 <조선일보>조차 <한겨레>를 따라 ‘대통령’을 호출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사 링크)
요약하자면 이렇다. 새누리당만 나서서 유족의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한다면, 유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꽤 많은 양보가 필요할 것이다. 만일 지금의 법안도 진상규명에 충분하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면,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유족들의 신뢰를 얻고 설득을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단순한 해법을 말하기 어려워 ‘야당 온건파’를 호출해대는 보수언론의 모습은 면구스럽다.
여당이 대통령에게 소신발언 하지 못하는 ‘환관 스타일’로 가고 있다고 해서 평소 거친 발언을 일삼았던 <조선일보>조차 이를 따라갈 셈인가. <조선일보>는 생각이 있다면 박근혜 정부 이후 보수세력의 운명에 대해서도 고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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