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련) 사건으로 기소된 오세철(71)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야간시위 금지가 한정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일부 집시법 위반 혐의만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해당 부분은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작다. 이에 따라 오세철 교수는 ‘사노련 사건’에 대해 사실상 유죄를 확정받은 셈이 되었다.

▲ 오세철 연세대 명예 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세철 교수 등 8명은 지난 2008년 사노련을 구성한 뒤 토론회를 열어 무장봉기나 폭력혁명으로 현 정부를 전복하고 새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정치신문인 '가자 노동해방'과 사노련 기관지 '사회주의자'를 제작해 배포하면서 국가 변란을 적극적으로 선전·선동하고, 촛불시위에 참가해 교통을 방해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사노련 활동이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미치는 위험을 아주 크다고 볼 수 없다며 오세철 교수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일반교통방해 혐의 등에 대해서는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일부 사노련 주최 토론회나 발간 책자를 유죄로 보고 형을 다소 가중하여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경정지 2년, 벌금 50만원이 되었다.
2008년 8월 26일, 오세철 교수와 사노련 중앙위원 7명은 긴급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틀 후 법원은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영장전담 판사는 "사노련이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구성된 단체로서 그 활동이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한 (수사기관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선일보> 사설은 법원의 판단을 비판했다. 2008년 8월 30일자 <조선일보> 사설 <사노련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보며>를 다소 길게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이들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해칠 실질적 위험성이 있는지는 앞으로 수사기관이 수사를 보강해 더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법원은 과거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문건을 배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재판에서는 유죄로 판결해왔다. 사노련은 홈페이지에 경찰과 군을 없애고 입법부·사법부·행정부도 다 폐지한 다음에 소비에트식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하겠다는 목표를 띄워놓고 있다. 황당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폭력 혁명이 아니고선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목표인 것은 틀림없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담은 문건을 촛불시위 현장에서 뿌렸다. 같은 행위에 대해 어떤 경우엔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어떤 경우엔 발부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사노련이 밝힌 입장은 80년대 대학가에 나붙던 운동권 대자보들 그대로다. 당시 운동권을 주도하던 NL(민족해방)파가 김일성 주체사상 운동을 한 반면, PD(민중민주)파는 북한과 연대하지 않는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면서 NL파와 대립했다. 사노련은 PD파 계열로 북한·중국의 공산당을 "노동자를 착취하는 지배자들의 정당"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친북(親北)이든 아니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활동은 모두 처벌대상이다. 그러나 국민의 인식 속에서 국보법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법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노련처럼 친북을 하지 않는 공산주의 이념활동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는 국민들도 있을 수 있다.

사노련과 같은 망상(妄想)에 빠진 집단은 친북은 아니라 해도 파괴적인 활동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수사당국은 친북 아닌 좌파 파괴 활동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그와 함께 '국보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 해석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면 안 된다'는 국보법 제1장 제1조의 원칙 역시 항상 먼저 새겨야 한다.
여기서 <조선일보>가 설파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준이라기보단, 반공을 정체성으로 삼는 군부독재 국가의 기준에 가깝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상은 처벌받지 않으며, 처벌대상이 되는 건 ‘행위’ 내지는 ‘행위를 위한 모의’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냐는 것도 그 표현이 단지 생각을 얘기한 것인지 체제 타격을 위한 행위의 모의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통해 정해질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그 단체 홈페이지에까지 버젓이 올렸다는 사노련의 사상이 무슨 구체적인 위협이 되기에 처벌의 대상이 되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논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야 국가보안법이 말하는 반국가단체가 반드시 북한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이 합리성이 있다. 그러나 그간 보수주의자들은 ‘사상의 자유’를 과도하게 통제하는 국가보안법의 존립 근거로 ‘북한이 존재하는 한국적 현실의 특수성’을 들이밀었다. 그런 실정에서 출발한 국가보안법이 북한과 관련이 없는 사회주의자들의 표현을 단죄하기 시작하는 상황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그 법안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역설을 보여주게 된다.
가령 최근에 있었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재판을 생각해보자. 2심 재판부는 이석기와의 회합에 참여한 150명이 전쟁 발발시 국가기간 시설을 타격해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모의가 없었다며 내란음모죄는 인정하지 않았고 다만 내란선동죄에 유죄판결을 내렸다.
▲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11일 서울고법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오세철 교수 등 사노련 운영위원들을 내란선동죄로 기소했다면 과연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말한 바 “대한민국의 안전을 해칠 실질적 위험성”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은 오세철 교수에 대한 법리적 처벌의 황당함과, 국가보안법의 불필요함을 보여준다. 체제는 국가보안법이 아닌 형법으로도 충분히 수호될 수 있으며, 그조차 발달된 민주주의 사회의 관용의 기준에 비해선 팍팍하다. 국가보안법은 그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지만, 그 법의 적용이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혁명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체제가 자신들을 위험한 존재로 여기는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노련 사건의 경우 체제가 그들을 겁냈다기 보다는 촛불시위에 ‘빨간 칠’을 하기 위해 그들을 잡아넣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검경의 그러한 태도는 그들이 수호하는 것이 체제가 아니라 정권이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이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정권 교체’란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체제 수호와 상관없이 특정 정치세력의 재생산을 위해 기능하는 법일 뿐이란 것이 오세철 교수의 유죄판결에서 드러나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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