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인 목표가 필요하다고 본다. 군 사법제도 개혁은 중요하지만 민주정부서도 힘들었다.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는데 군 수뇌부가 크게 반발하고 이에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적극 동조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도 분열했다. 그래서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박근혜 정부이지 않나. 현재의 군대에서 구타, 가혹행위, 인신모독적 욕설 정도는 없애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그러니 군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군사 옴부즈만 제도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국방위원회 의원의 토론 중 발언이 현재의 상황을 드러냈다. 1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진성준 의원실과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군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방안> 토론회의 한 풍경이다.
토론회 발제는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및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이 각각 <독일군 인권법제에 비추어본 군인 인권보장 방안>과 <군 인권문제와 군사법원 체제의 개혁>을 발표했다. 이재승 교수의 발제는 독일군대의 개혁 개념인 ‘민주적·시민적 지휘’와 ‘제복입은 시민’이란 독트린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군인법제들, 즉 군인법, 국방감독관법, 병역거부법, 대체복무법, 대체복무자대표위원법, 군인참가법, 군내양성평등법, 군인소원법, 군형법, 병역법, 군인징계법, 군인급여법, 부양보장법, 일자리보호법 등이 독일군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며 한국군인들과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한상희 교수는 무분별하게 적용되고 있는 군 사법제도의 특수성 담론을 엄밀하게 규정하며 비판하면서, 독립성·민주성·전문성을 군 사법체계 개혁의 세 가지 지도이념으로 삼아 군사법원, 군판사 및 심판관제도, 관활관제도, 군검찰 및 군사법경찰제도 등 전반적인 군 사법제도의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군대 개혁의 지향점, ‘제복입은 시민’
이재승 교수의 발제는 우리의 군대 개혁이 지향해야 하는 이상을 잘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군인은 기본적으로 시민으로 교육되지만, 그 직무적 특수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만 그 권리가 제약된다. 그의 발제에 따르면, 독일의 군인은 정부정책에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는 도서나 매체에 접근할 수 있고 이러한 정보자유권은 공동막사에 거주하는 군인에게도 인정된다. 의견형성권과 의견표현권을 구분할 때 의견형성권에 대한 제약은 없다.
다만 독일의 군인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단 규정이 있으며, 판례에 따르면 “군인은 동료 전우들에게 불복종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함으로써 군대의 존속과 기능적 효율성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군인은 “부대장의 편향된 정치적 발언에 대하여 (...) 합당한 수단을 통해 비판할 자유가 있다. 또 ”직무 이외의 영역에서 정부의 정책방향과 다른 견해라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직무시간 이외에 공개적인 발언과 글로써 정치적인 문제, 안보정책 또는 국방정책을 비판하고, 군사적 방어나 군사전략의 합목정성에 대한 공개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독일에서도 ”고위장교는 직무상 발언시에 연방정부와 국방부의 안보 및 국방정책상의 제약을 받는다“.
독일군인은 정치적 행사에서의 제복 착용 금지당할 뿐, “장교가 민간인 복장을 하고서 평화와 군축을 위한 시위에 참여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한다. 또 군인은 조합이나 단체를 결성할 수 있으나, 파업이나 파업준비행위는 충성의무에 위반된다. 군인은 자유시간에 정치활동을 할 수 있으며 당적을 보유할 수 있고 심지어는 공직에 출마할 수도 있다.
‘시민으로서의 군인’에겐 위와 같은 권리만 있는게 아니라 의무도 있다. 군인은 민주적 질서에 충성하고 적법한 명령에 대해 복종해야 하지만 불법적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 “독일군인법은 명령이 범죄를 명하는 때에는 복종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하가 명령의 수행이 범죄라는 점을 알았거나 정황상 그 점이 명백한 때에는 부하는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군대가 침략전쟁을 일으키거나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불법적 만행을 자행할 때 “이에 저항해야 하며, 여의치 않는 때에는 긴급피난으로서 탈영할 권리가 인정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민간의 군인통제 기구인 국방감독관 제도와 사병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군인참가법 등의 제도가 있다. 국방감독관 제도는 군사 옴부즈만 제도의 한 모델이기도 하다.
▲ 1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진성준 의원실과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군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미디어스
군사 옴부즈만 제도의 필요성
이와 같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한상희 교수의 발제에서 나온 것과 같은 군 사법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처음에 소개한 진성중 의원의 발언에서 나타나듯 보수정부 하에서 그것을 추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당장은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능동적 시민’의 권리보다 반인권범죄로부터 보호받는 ‘수동적 시민’의 권리부터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군사 옴부즈만 제도의 필요성은 적실하다고 하겠는데, 토론자로 나선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교수는 바로 그 부분을 정리했다. 홍성수 교수는 <‘군사 옴부즈만’에 대한 아홉 가지 질문>이란 제목의 토론문에서 군사 옴부즈만에 대한 상식적인 의문점을 질의하고 이에 대해 반박했다.
홍성수 교수는 군 인권침해가 만연한 이유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상담하거나 신고하는 제도적 장치, 즉 고충처리절차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옴부즈만은 바로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고충처리기구다. 고충처리기능의 핵심은 독립성과 적절한 조사권한이다. 독일의 국방감독관은 그것을 갖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홍성수 교수는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면서 교도소의 인권보호 수준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사례에 주목한다. “인권위는 전체 진정의 약 40%를 구금시설 수용자로부터 접수하고 있고, 그 건수는 연간 2천 건을 넘나든다”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인권위 출범 이후 가장 큰 성과를 거둔 분야가 재소자 인권분야라는 평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외부에서 군 관련 민원 문제를 다루는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권익위의 군사 관련 진정 담당 인력은 2명 정도로 추정되고, 인권위의 담당 인력은 실제로 1명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부대방문권도 없고 약한 수준의 자료제출요구만을 할 수 있는 정도여서 실제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홍성수 교수는 “군사옴부즈만 제도를 실시하려면 가능한 한 법률에서 그 위상과 권한을 자세히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그렇지 않을 경우 시행령 차원에서 실질적인 권한 행사를 막는 형식으로 옴부즈만의 권한이 왜곡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홍성수 교수는 예로 들어 현재 인권위에 있는 독소조항을 지적한다. 군에서 진정이 들어오면 인권위의 조사가 가능해지지만 수사나 재판에 들어가면 각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법률을 상세히 규정하지 않는다면 시행령에서 이런 식의 제약이 생길 거라고 본다.
군대의 폐쇄성 넘어서야
다른 토론자로 나선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대가 수십년 째 바뀌지 않아서, 그간 내가 했던 일은 뭐였나라는 자괴감이 있다”라는 감상을 전했다. 그는 “입대자에 대한 인권교육이 필요하며, 특히 참여연대 산하에 ‘군 입대자 어버이연합’과 같은 조직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요즘 세월호 유족들에 민감한 국회 경비인력들이 국회에 들어오려고 하면 ‘민간인 출입은 통제한다’고 말한다. 군대에서나 듣던 말이다. 그들이 사실 의경이지 않나. 국회에 의원을 선출한 유권자는 들어올 수 없고 군인들만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반문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사병의 숫자를 줄여야 하고 복무기간도 12개월 정도로 확 줄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청객 발언 중에선 “남편이 30년 동안 직업군인이었고 두 아들도 군대를 보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의 발언이 눈에 띄었다. 그는 “남편에게서 민간인들은 모르는 사건을 많이 들었다. 사병끼리 싸우다 죽든, 의무장교가 바둑을 두다가 환자를 놓쳐서 사망하든 자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더라”라고 설명했다. 이 방청객은 “장교들에게도 인권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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