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에 관련해서 군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이 군부대내 폭행사건 피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17일 강원 철원군 육군 6사단 헌병대에 복무 중인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이 부대 내에서 후임병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혐의로 군 당국의 조사를 받는 사실이 알려졌다.
6사단에 따르면 군은 4월부터 최근까지 업무와 훈련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A일병(21)을 수차례 때린 혐의로 남경필 지사의 아들인 남모 상병(23)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다. 또 그는 B일병(19)을 성추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고 한다. 피의자는 폭행과 욕설 등 가혹행위에 대한 혐의는 인정했지만 성추행 혐의에 대해선 “장난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육군이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발생한 후 전 부대에 대한 가혹 행위 여부 전수 설문조사를 하면서 드러났다.
▲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도청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장남이 군대내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과 관련 피해 장병과 그 가족, 국민에게 사과하기 위해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논란이 일자 곧바로 대응했다. 남 지사는 17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 아들이 군 복무 중 일으킨 잘못에 대해 피해를 입은 병사와 가족분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사회 지도층의 한 사람으로서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한 점은 모두 저의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법으로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벌을 달게 받게 될 것"이라며 "아버지로서 저도 같이 벌을 받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로서 모든 것은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잘못"이라고 재차 사과한 뒤 "제 아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법으로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지만 올바르게 처벌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13일에 아들이 입건될 때 통보를 받았을 남경필 지사가 15일에 게재한 기고문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남경필 지사는 15일 <중앙일보>에 [나를 흔든 시 한 줄]란에 게재된 글에서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을 소개한 후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의 관계자는 “남경필 지사가 기고글을 보낸 건 첫째 아들의 가혹행위 혐의를 통보받기 전인 지난 12일”이라고 해명했다. 또 칼럼에서 ‘병장이 되서 가해자 역할을 하는 건 아닐지’에서의 병장은 남경필 지사의 첫째 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이 사실이더라도 15일에 게재된 글은 적어도 14일 오전까지는 필자 의사에 따라 손볼 수 있었을 거란 점에서 그 내용을 그대로 둔 것에 대한 윤리적 차원의 문제는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사건은 물론 남경필 경기도지사에게 향후에도 정치적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들이 ‘남경필’이란 정치인을 평가함에 있어 이 사건을 하나의 근거로 삼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경필이란 정치인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거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할 정도의 사건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시선에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파악하는 전근대적인 시선이 깔려 있다.
‘자녀교육은 근본적으로는 부모의 책임’이란 원론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조차도 사회가 성숙하면 사회의 책임을 예전보다 더 크게 강조하게 된다. 게다가 자녀교육이 부모의 책임이라 하더라도, 자녀의 모든 행동이 부모의 무한책임으로 소급된다고 볼 수는 없다. 부모는 자녀가 인생에서 하는 모든 행위를 관리·감독하는 상급자가 아니다. 부모는 자녀가 독립적인 개인으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안내하는 조력자이며 그렇기에 그 역할이 막중하다 하겠다.
한국 사회에서의 부모·자녀 관계의 특수성을 생각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성인 이후의 행위는 그 자신의 책임이며, 그 이후에 거론되어야 할 것은 사회정책이다. 이 사안의 경우 사건의 진실을 정확하게 수사한 후 남모 상병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할 필요가 있고, 다음에는 군 인권문제의 개선을 위한 사회정책의 논의가 필요할 뿐이다. ‘아버지로서의 남경필의 책임’은 어디가지나 도의적인 차원에 머문다. 아들의 비행과 처벌에 그 누구보다 먼저 아버지가 고통을 느낄 상황이기도 하다.
▲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도청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장남이 군대내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과 관련 피해 장병과 그 가족,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대를 가보면 많은 곳에 “부모님의 소중한 자식, 그대로 돌려 보내겠습니다”와 같은 표어가 적혀 있다. 사병을 독립적 개인이나 인권을 담지한 주체로 취급하지 않고 그들의 부모님으로부터 양도받은 사물인양 취급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인식의 반영일 수 있겠고, 현실적으로 군대에 항의할 수 있는 건 명령-복종관계에 있는 사병이 아닌 외부의 부모님이기 때문에 나타난 ‘사탕발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성인이 된 자녀의 행위에 대해 부모의 책임을 크게 묻는 그 시선이 군대가 사병의 인권을 업수이 보는 그 시선과 포개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거기간인 특수성이 있었겠으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아들 발언’에 대한 대응이 ‘사과’였다는 점도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을 드러낸다. 만약 독립적 개인의 권리가 중시되는 사회였다면 정몽준 후보는 “아들의 참담한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인식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아버지인 내 책임이 있고 그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 집에 가서 아들과 그 문제에 관해 토론해보겠다”라는 식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물론 정몽준 후보 아들의 발언과 달리 남 상병의 행위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기에 두 사안을 같이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사과’란 말은 나오지만 그것은 단순히 ‘아들의 행위에 부모가 사과’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한국 사회는 이 미묘한 차이를 지각하고 독립적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논리를 더 세련되게 받아들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새누리당에 반대하고, 남경필이란 정치인에 대한 호감이 없더라도, 그 아들의 범죄를 이유로 함부로 누군가의 사퇴를 주장하는 것이 어떤 인식의 발현인지는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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