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직접 세례를 받았다.

17일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7시께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이호진씨에게 세례를 줬다. 세례명은 교황과 똑같은 프란치스코였다. 세례성사는 이 씨의 딸 아름씨, 이씨가 거주하는 안산지역을 관할하는 천주교 수원교구의 신부 1명이 동석한 채 1시간 가량 비공개로 진행됐다.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는 세월호 도보순례단의 일원으로 800여km를 걸었다. 도보순례단은 지난달 8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십자가를 멘 채 안산 단원고를 출발했고 진도 팽목항을 거쳐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 세월호 도보순례단에 참가해 800여km를 걸어 대전에 들어선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가 14일 목적지인 대전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해 상념에 잠겨 있다.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팽목항을 거쳐 대전에 온 이호진(이승현 군 아버지)·김학일(김웅기 군 아버지) 씨 등 도보순례단은 오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순례 내내 메고 온 십자가와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떠온 바닷물을 교황에게 전달했다.
도보순례단은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린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떠온 바닷물을 교황에게 전달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만난 이 씨로부터 세례를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했다.
공식 기록상으로는 한국 신자가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25년 만이다. 앞서 1989년 10월7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젊은이 성찬제'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배우며 세례를 준비하던 청년 12명이 선발돼 당시 방한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적이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에게 세례성사를 하고 있다. 세례명은 교황과 똑같은 프란치스코다. (이호진씨 페이스북.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이호진 씨의 세례성사에 참석했던 딸 이아름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심경을 밝혔다. 이아름씨는 고 이승현군의 누나다. 이아름씨는 '2014년 8월 17일. 아빠가 교황님께 세례받은 것에 대해서…'라고 시작하는 글에서 "단지 우리 아빠는 지금까지 아이들과 남은 실종자들을 위해서 걸어오셨고 어찌하다보니 지금은 교황님께 세례를 받으셨다"며 "교황님께 세례를 받아서라도 아빠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그 마음을 조금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서 이씨는 "교황님께서 아빠를 기억해 주신다면 바티칸에 돌아가셔도 이 얘기를 해주실거고, 아이들 얘기도 해주실거고, 언젠가는 바티칸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주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씨는 "교황님께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빠가 교황님께 세례를 받은 건 아빠의 개인적인 욕심도 아니고 쉽게 세례를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아빠가 하는 모든 건 아이들을 하루라도 더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다"고 세례를 받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 방한의 마지막 공식일정은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미사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맨 앞자리에 앉아 교황을 직접 만난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연 교황 방한 관련 브리핑에서 "교황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미사 전에 만날지, 끝나고 만날지 형식은 모르지만 직접 만나 인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배석한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위안부 피해자 세 분이 미사에 참석해 맨 앞자리에 앉을 것이기 때문에 교황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이 강론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될 이날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3명을 비롯한 각계 인사 1천500여명이 초청됐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허영엽 대변인은 17일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연 브리핑에서 "평화와 화해가 필요한 사람들, 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초청됐다"고 설명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이에 따라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초청 명단에 포함됐다. 북한 평양·원산·함흥교구에 속한 사제와 수녀, 신자 등 실향민과 새터민, 납북자 가족들,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5명 등도 함께 한다.
허영엽 대변인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 신자의 참석을 요청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참석하기 어렵다는 답이 왔다"며 "이달 초 개성에서 교회 인사를 접촉했지만 참석하겠다는 답은 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30여 년간 국내의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인술(仁術)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교황이 수여하는 '교회와 교황을 위한 십자가 훈장'을 받은 치과의사 강대건(82)씨도 미사에 초청됐다.
이밖에 '우리나라의 미래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중·고생 50명도 초청됐으며, 경찰과 환경미화원, 장애인을 비롯해 일찍이 한국 평화를 위해 일했던 메리놀수도회 관계자, 한국 카리타스 관계자, 가톨릭노동장년회원, 가톨릭농민회원 등도 포함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미사 집전에 앞서 타 종교 지도자들과 만남을 갖고 성당에 입장하면서 서울대교구 직원 500여명을 비롯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또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브리핑에서 "교황은 방한 이후 건강 상태와 컨디션이 아주 좋다"면서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 가톨릭교회의 순교 역사에 크게 감동받은 것 같았다. 특히 영적으로 이 부분에 큰 관심을 갖게 된 듯하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