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에 나온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 대한 12일 신문들의 보도 주안점은 제각기 달랐다. 이는 각 언론들의 1면 편집에서부터 드러났다.

오묘한 항소심 판결… 춤추는 1면 편집
참조점이 될 만한 것은 중도언론이라 할 만한 <한국일보>의 1면 편집이었다. <한국일보>는 1면 하단 기사의 제목을 <이석기 내란선동 유죄, 내란음모 무죄>라고 달았다. 어찌 보면 이것이 가장 건조하게 항소심 판결의 핵심을 전하는 기사 제목이었다.
보수언론들의 강조점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대담하게 1면 기사 제목을 <이석기, 체제전복 內亂 선동했다>로 가져갔다. 내란음모죄에서 무죄가 나오고 ‘RO’의 실체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생길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중앙일보>는 그보다는 다소 소심하게 1면 기사 제목을 <“폭탄제조·시설파괴”…내란음모는 무죄>라고 가져갔다. <중앙일보> 독자라면 이석기 의원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1심과는 사뭇 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진보언론의 강조점도 다소 엇갈렸다.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이석기 ‘내란음모’ 무죄… “RO 실체 없다”>란 제목으로 1심 판결과 2심 판결의 차이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결은 ‘RO’의 실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RO’의 실체를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다소 편향적인 제목 배치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선 <이석기 내란음모 무죄…징역 9년으로 ‘감형’>이란 제목을 달았고 부제는 <항소심, 1심과 달리 ‘RO’ 존재 인정안해… 내란 선동 등 유죄>로 가져갔다. 제목에선 ‘내란음모 무죄’를 중점적으로 썼지만 ‘징역 9년’을 병기하면서 모든 혐의에 있어 무죄가 아니란 점을 밝혔고 부제에선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달았다. 6면 관련 기사에서도 <법원 “혁명조직 RO 입증 부족…내란선동 죄질은 무거워”>란 제목을 달아 <경향신문>에 비해 다소 중립적인 제목 편집을 했다.
보수언론, “이석기 면죄부 받지 않았다”
이석기 항소심 판결은 1면에서만 주목받은 것이 아니었다. 3개의 보수지와 1개의 중도지, 그리고 2개의 진보지 등 6개 주요 신문사에서 사설의 대상이 되었다. ‘조중동’은 이석기 의원의 죄상을 밝혔고 ‘한경’은 국정원이나 검찰을 비판했으며 중도지인 ‘한국’은 차분하게 의미를 짚었다.
▲ 1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11일자 <조선일보>는 <이석기 2심, '內亂음모' 면죄부 준 것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동조하면서 내란을 선동(煽動)한 이 의원 등의 행위는 국가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매우 중대하고 급박한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또 ‘이 의원 등이 객관적인 증거들에 의해 내란 선동 행위가 명백히 인정되는데도 반성하기는커녕 이 사건이 국정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석기 세력이 북한 정권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내에서 폭동을 일으키려 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라며 판결문이 밝힌 이석기 의원의 진상을 재확인했다.
이어서 <조선일보> 사설은 “국민 상식으로는 이 의원 등의 행태는 명백한 내란음모다. 2심 재판부 역시 내란음모의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취지이지, 면죄부까지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증거로만 유·무죄를 다툴 수 있다는 것이 자유민주 체제의 근간이다. 이 의원과 같은 세력은 이런 자유민주 제도를 이용해 자유민주 체제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들에겐 재판도 투쟁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사설은 “법무부는 작년 11월 통진당의 강령이 북한 김일성의 노선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데다 통진당 활동은 RO를 중심으로 한 이석기 세력에 의해 사실상 장악돼 있다면서 정당 해산을 청구했었다. RO의 실체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에서 통진당 해산 청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줄어든다. 대법원은 1·2심의 혼선을 이른 시일 안에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라며 ‘RO’ 실체 불인정이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에 미칠 영향을 경계하며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을 주문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 사설 역시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면죄부’란 단어를 사용했다. <중앙일보>는 <이석기 내란음모 무죄가 면죄부는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결국 항소심 판결은 ‘범죄 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307조)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검찰은 내부 제보자로부터 넘겨받은 이 의원의 발언 등이 담긴 녹음파일 외엔 2심 재판 때까지 결정적인 추가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 12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이어서 <중앙일보> 사설은 “재판부는 ‘이 의원은 내란을 선동해 대한민국의 민주질서를 실질적으로 해쳤고 이 사건 회합 참석자들이 가까운 장래에 내란범죄를 결의해 실행할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입증 부족으로 내란음모 혐의가 무죄라는 것이지 결코 피고인의 행위에 잘못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취지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중앙일보> 사설은 “이번 판결로 대법원의 최종 판단과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위헌정당해산 심판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이 헌법과 법률을 충실히 따를 것으로 믿는다. 이 과정에서 결과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해 정쟁(政爭)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에 비한다면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단이 어찌 나오든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일보> 역시 <내란음모든 선동이든, 이석기는 국가전복 획책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두 보수언론과 논지를 같이 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 지도자들은 이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냈지만 체제파괴 세력에 대한 안이한 자세가 이석기 같은 사람을 국회까지 진출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항소심에서도 이 의원에게 중형이 선고된 만큼 여야는 몇 개월째 국회 윤리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이 의원 제명 징계안에 대한 심사를 서둘러 처리해야 할 것이다”라며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 징계를 서둘러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진보언론, “표현의 자유 침해… 국면 전환용 기획”
반면 <한겨레>는 <‘내란음모 무죄’, 당연한 판결이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러나 법원이 이 의원 등에게 굳이 내란선동죄를 적용한 데 대해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은 이 의원이 강연에서 전쟁에 대비한 물질적 준비를 언급한 것이 선동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의원의 강연 자체에서 폭력적 파괴행위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대목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란음모 혐의가 무죄인 터에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하는 것도 어색하다. 무엇보다 이런 판결로 정치적 소수파의 정부 비판이나 과격한 선동이 처벌 대상으로 굳어진다면 자칫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법원을 비판했다.
▲ 12일자 한겨레 6면 기사
또한 <한겨레>는 “이번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심리중인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 사건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내란선동 혐의는 명백하게 이 의원 등의 개인 문제이지, 정당 조직 전체의 문제일 순 없다. 이를 두고 통합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친다고 법률적으로 인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대법원과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라고 제안했다.
<한겨레> 사설이 제기한 논점은 받아들일 만하지만 이석기 의원 등의 발언의 의미에 대해선 그저 지나치는 모습을 보였다. ‘침소봉대(針小棒大)’, “바늘처럼 작은 것을 몽둥이처럼 크다고 과장한다”라는 사자성어와는 반대로, 몽둥이처럼 큰 것을 바늘처럼 작다며 여론을 호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경향신문> 역시 <내란음모 무죄, 검찰과 국정원은 뭐라 답할 텐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 핵심 공소사실인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은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경향신문> 사설은 “.이 의원 등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내란음모라는 중대 범죄의 유무죄를 가르는 일에는 일체의 외부 요인이 배제돼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라면서 이석기 의원의 발언에 대해선 비판적 거리를 취했다.
▲ 12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경향신문> 사설은 마지막으로 “내란음모 사건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8월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잇따를 즈음이다. 국정원은 3년간 내사를 벌여온 사건을 갑자기 공개수사로 전환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이제 국면전환용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최종심을 맡게 될 대법원이 엄정한 심리를 통해 모든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지적하면서 이 사건이 국정원의 국면전환용 기획이었다는 추론을 제기하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석기 일당 사건’ 보도, 진보언론의 편향도 있어
<한국일보>의 경우 <"내란음모 무죄 선동은 유죄" 이석기 항소심 의미>란 제목의 사설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국일보> 사설은 “항소심 판결의 핵심은 1980년 김대중 사건 이후 34년만의 내란음모 유죄 판결이 증거부족을 이유로 뒤집혔다는 것”이라 설명하면서도 “먼저 이 의원과 통진당은 내란음모 무죄 선고만 부각해 다른 혐의의 유죄 판결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라고 주문했다. 또한 <한국일보> 사설은 “ 이 사건을 통진당은 물론 진보세력 공격에 악용해온 일부 보수세력도 근거 없는 ‘종북 마녀사냥’을 자제해야 한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RO’란 명칭의 실체를 법원마저 부인한 지금 이 사건은 ‘이석기 일당 사건’이란 식으로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사건에 관해선 이들이 나라를 뒤집을 수 있을 것처럼 묘사한 보수언론의 호들갑에도 편향은 있었지만 진보언론에도 편향은 있었다. ‘이석기 일당 사건’은 상식인의 관점에서 납득이 불가할 만큼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사상과 내면을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 12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이를 ‘흉측함’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움’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선 이들의 발화가 외부 세계에 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운동권 방언’이며 내부 조직을 단속하기 위한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수십 년간 자신들을 ‘혁명가 집단’으로 자처했을 ‘이석기 일당’이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고 그들은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날조이며 조작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법이 이들의 신념을 단죄할 권리가 없다는 진보진영의 변호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으나, 이들은 피고인들이나 통합진보당이 내세운 부적절한 변명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국가기관 앞에서 죄를 숨기는 것을 문제삼을 일은 아니겠으나, 결과적으로 하나의 정치세력이 유권자를 기만하는 것을 방조·묵인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사법부의 2심 판결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여전히 폭력적이긴 하지만 법치주의나 3권분립과 같은 민주주의의 체계를 어느 정도는 지켜내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국가를 살아가는 이땅의 진보가 과연 ‘진보’를 자처할 만한 수준이 되는 지에 대해선, 사건 당사자는 물론 진보언론조차 큰 성찰이 없다.
물론 그들이 너무나도 크게 핍박받은 피해자란 생각에 그럴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래서야 정부가 내세우는 모든 증거가 조작이라고 믿는 음모론자가 아닌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기도 어려울 판국이 되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