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 최단기간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전반적으로 평론가들의 반응보다는 관객 반응이 좋은 가운데,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 영화의 흥행작들이 흔히 거쳤던 논란인 스크린 독점 논란도 불거졌다.

물론 <명량>의 스크린 수는 <트랜스포머4>에 이은 역대 2위의 수준으로 전체 영화관의 절반 가량을 가져가고 있단 점에서 한국 영화시장의 왜곡된 생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스크린을 가져간 작품들이 모두 1000만 관객을 넘지는 못했고 <명량>의 경우 좌석점유율이 현재 개봉한 다른 영화보다 높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부분도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명량>이 ‘천만영화’ 치고는 매우 조용하게 그 고지를 넘었다는 것이다. 대체로 한국 사회에서 ‘천만영화’나 그에 약간 못 미치는 흥행영화가 탄생할 때에는 ‘호들갑스러운 찬사’가 민망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넘치거나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점화되거나 했다. 영화 <명량>은 그에 비하면 보고 나온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찬양하지 않고, 안 볼 사람들은 그저 안 보고 만다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뭐에 홀린 듯이’ 조용하게 그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고 있다.
▲ 10일 영화 '명량'이 투자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12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부문 역대 최단기록을 보유한 '괴물'(2006, 1천301만)보다 9일 빠른 속도다.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2009, 1천362만)보다는 26일이나 빠르다. 이날 서울의 한 극장 모습. (연합뉴스)
<명량>, <퍼펙트게임>과 비슷했던 부분과 달랐던 부분
그런 현상의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애초 관람하기 전 평이 많이 엇갈린 <명량>에 대해 짐작했던 것은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영화 <퍼펙트게임>(2011)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1987년 ‘최동원과 선동열의 전설적인 선발 맞대결 경기’를 다룬 <퍼펙트게임>은 스토리나 드라마의 측면에선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일단 ‘그 게임’이 시작되기만 하면 ‘몰입하는 힘’이 느껴진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역사상 전쟁’과 ‘현대 스포츠물’이란 현격한 장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명량>에 대한 호불호>는 <퍼펙트게임>에 대한 호불호와 비슷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관객에게 결론은 스포일러인 상황, 그 인상적인 ‘시합-전쟁’에 영화 러닝타임의 절반 가량을 힘을 쏟았고, 전반부 장면은 이 결론을 위해 소비되어 아쉬움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관람 후에는 차이점이 더 많이 보였다. 두 영화는 출발점이 달랐다. <퍼펙트게임>의 스토리엔 흥행을 위해선 ‘최동원과 선동열과 야구를 모르는’ 이들을 극장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졌다. 영화는 ‘야구를 모르는’ 관객들에게 이 대결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야구를 전혀 모르는 여성 야구기자(최정원 분)를 주요한 캐릭터를 배치했다. 최정원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다소 억지스러운 것들이 많았지만, 의도가 뚜렷했기에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원균에게 모함당해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빼앗겨 백의종군하는 동안 조선 수군이 소멸하여 소수 병력으로 수십 배 많은 일본수군과 맞부딪히게 된 이순신’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영화는 명량해전을 있게 한 그 수많은 맥락들을 잘라 버리면서 ‘선택과 집중’을 시도한다.
이는 <퍼펙트게임>의 오프닝이 캐나다와의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역투하는 최동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감독의 선택’을 넘어서는 제약조건이 있다. 만약에 영화 <명량>의 오프닝을 화려하게 장식하려 했다면 거기엔 ‘칠천량해전의 처참한 패전’의 장면이 들어갔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 <명량>이 헐리우드 영화였다면 초반 5분 정도는 칠천량해전의 묘사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작비 180억'으로도 손익분기점을 '650만 관객'으로 잡아야 하는 한국의 시장규모에선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드라마와 캐릭터를 생략한 채 등장한 ‘그 이순신’
그렇기에 <명량>의 전투씬은 정유재란 중에서 오직 ‘명량해전’에만 국한된다. 게다가, ‘명량해전’의 묘사조차 대부분 ‘대장선 1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영화 <명량>이 ‘조류가 불리한 몇 시간 동안 사실상 대장선 1척만 압도적인 적에 맞서 싸우다가 조류가 반전할 무렵 합류한 아군과 함께 난전을 펼친 끝에 기적과 같이 승리’했다는 역사적 명량해전의 기본적인 얼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용’과 ‘역사’만이 문제라고 보기엔 감독의 의도 역시 뚜렷해 보인다. 칠천량해전의 전투씬을 비용의 문제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칠천량해전을 스쳐 지난 후 조선 조정의 ‘멘붕’을 묘사하는 데엔 비용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 10일 오후 시민들이 세종문화회관 상설전시관 '충무공이야기'를 관람하고 있다. 이날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은 개봉 12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연합뉴스)
또한 역사상 전투가 ‘대장선 1척’의 그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시되는 백병전이나 백성들의 구원 장면까지 집어넣은 그 감독이 ‘나머지 11척 전선’(역사상 전투에 참여한 전선은 13척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영화에선 줄곧 12척이라고 나온다)은 ‘함포 사격을 하는 세트’ 정도로 보이게 한 것은 ‘연출의 실패’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명량해전의 세부에 대한 각색은 고증을 중시하는 이들의 불만을 감안하더라도 관객들의 반응을 봤을 때 ‘성공’이라 볼 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전쟁의 세부에서 ‘나머지 전선’의 역할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한적이다.
특히 조선 수군의 경우 이순신과 독자적인 무언가를 보여주는 인물은 온갖 민폐를 끼치고 도망가다 죽은 경상우수사 배설 정도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수군의 구루지마 미치후사(유승룡 분)와 와키자카 야스하루(조진웅 분)가 분량이 많이 나온 것이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그렇다기 보단 일본 수군 장수들의 경우 ‘최소한의 캐릭터’가 드러난 반면 조선에선 이순신에만 집중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드라마와 캐릭터를 생략한 채 등장한 ‘그 이순신’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안타까운 것은 최민식이란 명배우가 연기한 영화 <명량>의 이순신이 새로 보여준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론에선 아들과 밥 먹는 부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위폐를 보며 대화하는 부분, 죽은 군사들을 꿈에서 보고 술을 바치는 부분 등을 두고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평가할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특히 이순신이 죽은 군사들을 꿈에서 보고 술을 바치는 부분에서 암살 기도를 당하는 부분, 이어서 구선(거북선)이 불타는 것을 보며 이순신이 울부짖는 부분까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나이가 많았을 이순신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
중년 남성에게 어필한 ‘그 이순신’의 ‘리더십’
그러나 몇몇 신문의 사설과 칼럼에도 등장한 ‘이순신 리더십’이 이 영화에서 실체를 드러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을 고루 갖춘 이상형의 인물로 관객에게 다가오는 것이다.”(5일자 <중앙일보> 사설, <'명량', 리더십에 목타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은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인기를 얻는 데도 그런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6일자 <동아일보> 사설, <박 대통령, 국가 적폐 해결에 ‘명량’ 리더십 보여라>), “우선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명량>의 전후 사정은 오늘의 ‘세월호’와도 고스란히 겹친다.”(5일자 <경향신문> 김석종 논설위원 칼럼, <영화 ‘명량’ 대첩>)란 평이 있지만 이는 관객의 기대였을 뿐 영화가 드러내 보인 것은 아니다.
▲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명량'이 평일 1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평일 최다 관객 기록을 다시 갈아치우며 흥행돌풍을 이어가는 가운데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극중 이순신은 ‘상감의 명’에 반하여 명량해전을 수군의 힘으로 이끈다. 그가 그렇게 한 건 선조나 조선 조정보다 당대의 전황과 해전의 전략적 가치를 더 잘 꿰뚫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가 자신의 판단을 고수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해명되어야 한다. 그가 조선왕조보다 백성을 더 중시한 민본주의자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임금의 명보단 자신이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존속을 훨씬 중시한 소박한 애국자였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전쟁을 잘 모르는 정치인들의 결정을 경멸하는 ‘전쟁기술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정도는 보였어야 한다. ‘인물에 대한 해석’ 없이 어떤 인물을 드러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량>의 이순신은 여전히 모호하다. 물론 장수가 전략회의에서 참모들이나 병사를 상대로 내심을 모두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순신이 내심을 말하는 것으로 설정된 아들 이회와의 대화에서도 그는 모호하다. “장수의 의리는 충이고, 그 충은 백성으로 향한다”와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에도 무슨 해석은 가능하겠으나 해석을 하려면 그 빈 공간을 관객들의 상상으로 채워야 한다.
결국 <명량>의 이순신은 ‘성웅 이순신’의 전형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여, ‘어느 쪽으로든 해석될 수 있으나 이순신을 폄훼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안전하고 텅빈 길’로 나아간 셈이다. 최민식이 “이순신 연기가 너무 부담스러웠고 차기작에 함께 할 생각이 없다”라고 밝힌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극중 이순신의 리더십은 ‘누구와도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않고, 고작 구닥다리 같은 정론을 몇 마디 말할 뿐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며 실제로 성과를 이루어내는 이’의 것에 가깝다. 이는 재미있게도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장이 미화되는 방식’에 가장 잘 포개진다. 내면은 잘 모르겠지만, 적당한 인간미를 드러내면서 어필된다는 지점에서조차도 말이다. 감독이 이런 인물을 조형하려고 의도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성웅 이순신'의 내면을 어떤 방식으로든 채우길 거부하면서 만들어진 인물은 결과적으로 자녀와 추상적 어휘로 밖에 소통하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가부장의 모습이 되었다.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최근 몇 년간 각종 ‘리더’에게 요구한 ‘리더십’은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 것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대두된 ‘리더십’이 이와 같은 ‘과거 회귀의 전형’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그 자유분방했던 1990년대를 지나 1997년 IMF 구제금융이란 참사가 터졌을 때, 소설과 영화에서 <아버지> 신드롬이 불었던 상황과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유난히 아버지들이 이 영화에 감정이입하더라는 몇몇 증언들도 그런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가정과 나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통해 허술한 나라를 대면한 중년 남성의 우울은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가부장의 모습인 이순신’과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거 후손들이 알아줄까 / 모르면 호로자식들이제”라는 대사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흥행은 세계적으로 관객이 꽤 들긴 했지만 유난히 한국에서 크게 흥행했다는 리암 니슨의 액션영화 <테이큰>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명량>은 ‘아버지의 희생’에 대한 승인과 인정을 역사극을 통해서 확인받는 계기였을 수 있다. 평소 영화관을 자주 찾지 않고 인터넷도 많이 하지 않는 중년 남성이란 집단이 영화의 흥행에 큰 관련이 있다면, ‘1000만 영화’ 치고도 논란이 크게 일지 않았다는 사실도 설명될는지도 모른다.
온 국민의 ‘세월호 출구’: ‘맹골수도’에서 ‘울돌목’으로
물론 <명량>의 흥행을 특정 세대와 성별의 그것만으로 환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명량>은 다른 영화와 달리 청년세대가 선도한 후 중년세대가 나온 게 아니라 한꺼번에 모든 연령대가 관람하기 시작했단 점에서 ‘중년세대’의 역할을 말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론 모든 연령대가 반응했다고 봐야 한다. 극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울컥할 수밖에 없었던 몇몇 장면에서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 한참을 자다가 영화가 끝난 후 여자친구가 깨워서 일어나는 젊은 남성의 모습도 보였다. 더구나 <명량>은 큰 논란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그 폭발적인 흥행으로 인해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명량해전은 실제로 한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사건이었단 점에서 한국 사회의 시민들의 감정이입을 수월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명량해전이 정유재란의 전황을 바꾸지 않았다면, 한반도 전체가 일본의 지배권으로 들어가진 않았더라도 협상 과정에서 나왔던 안처럼 명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분할통치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세월호 참사라는 사건이 없었더라면,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의 충격을 어떤 형태로든 벗어 던지고 싶어 하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명량>의 이와 같은 흥행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을 관람하기 위해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배우 안성기 씨와 함께 입장하며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신문에 실린 비평들이 현상적으로는 연결고리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는 ‘명량’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짓는 것도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일 터이다. “‘명량’에서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맹골수도의 물살이 떠오른다. 거기서 안타까운 꽃들이 도움을 기다리다 속절없이 죽어갔다.”(6일자 <동아일보> 사설, <박 대통령, 국가 적폐 해결에 ‘명량’ 리더십 보여라>), “417년이 지난 2014년, 공교롭게도 똑같은 진도 앞바다 팽목 맹골수로에 세월호가 침몰하고 304명이 억울하게 생매장된다. 여기서 상황은 엇갈린다. 우리 시대엔 국가기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책임의식 실종만 드러나고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바꾸는 지도자는 없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백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알아줄까.’ 어렵고 불안한 사회가 이순신 장군과 <명량>의 대첩을 불러냈다.”(5일자 <경향신문> 김석종 논설위원 칼럼, <영화 ‘명량’ 대첩>)라는 평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올해 한 웹툰 작가는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꿈>이란 단편만화를 올리기도 했는데, 오랫동안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해 ‘맹골수도’에서 ‘울돌목’으로의 연상과정을 보여줬다(해당 작품 링크).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나 선원들의 우왕좌왕을 이순신의 리더십과 비교한다. 그러나 체제의 무능을 보여준 재난사고인 세월호 참사 위에 국가와 국가의 전쟁이었던 명량해전이 덧붙여지는 현실은 ‘적’이 뚜렷하지 않은 체제의 파탄에 상심한 마음이 ‘아군’과 ‘적군’이 뚜렷한 전쟁상황의 영웅적인 단합을 그리워하는 심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럴 때 ‘북한’을 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두 개의 정치적 당파 중 한쪽만 만족시키는 것이나, ‘417년’을 거슬러 올라가 ‘일본’을 호출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시민 누구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으니 말이다. ‘뭐에 홀린 듯이’ <명량>을 보러가는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역설적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그들을 강타했던 우울함의 크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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