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과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 부지런히 두리번거리며 출구를 찾는 모양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3일 한민구 국방장관을 불러다 책상을 내리치며 강하게 질책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6일 최고중진연석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육군참모총장이 책임졌으면 책임을 다 진 것”이라며 추가책임론을 경계했다. 이는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국방장관이었으며 현재 청와대 안보실장인 김관진에 대한 책임론을 희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김무성 대표는 6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주영 해수부 장관은 할 일이 많은 장관”이라면서 “이주영 장관이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의 적당한 양보 속에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새누리당이 드디어 세월호 국면에 대한 ‘출구전략’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보도되고 있는 양당 원내대표 간의 오늘 합의 내용을 보면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모두 무력화되는 등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대폭 양보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 주요 민생법안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최 등에 합의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연합뉴스)
김무성 대표는 6일의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세월호 여파로 우리 경제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느냐, 아니면 경제활성화의 길로 가는냐,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면서 “국민들의 염원인 민생경제살리기를 성공시키려면 경제활성화를 위한 입법이 속전속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입법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크루즈산업육성법, 관광진흥법 등 경제활성화 19개 법안과 정부조직개편안 등이다.
야권 지지자들은 흔히 새정치민주연합은 ‘무능’하고, 새누리당은 ‘유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도 두 당은 그 도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출구만 찾는 새누리당을 보자면 이 도식을 좀 더 정식화하여 ‘무엇에 유능하고 무엇에 무능한지’를 따져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야권 지지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이 ‘무능’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이들이 당권 경쟁에만 신경쓸 뿐 총선과 대선 등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있는 새누리당과의 경쟁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지자들은 대체로 당권 경쟁보다는 총선과 대선에 훨씬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본다면 새누리당이 ‘유능’하다는 평가는 그들이 총선과 대선의 승리 여부에만 중점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새누리당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는데에 진력을 다한다. 그리고 오직 그 분야에서만 진력을 다하고, 청와대를 보위하는 데에 ‘유능’하다. 의회 권력, 입법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이들이 행정부나 사법부를 잘 견제하느냐고 묻는다면 새누리당 역시 할 말이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의 성화에 밀려 ‘관피아’ 척결을 해법으로 내세웠다. 당시에는 그것이 ‘정권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출구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관피아’를 말하면서 원래 하려던 공공기관 개혁의 레퍼토리를 읊었을 뿐이다. 공공기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세월호 참사가 방지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 정부가 말하는 개혁안은 공공기관의 기능을 민간에 이양하는 것에 치중되었다. 말하자면 ‘이빨이 아프다고 하니 이빨을 뽑아버리는’ 종류의 개혁이었던 것이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그러한 개혁안도 관료 사회는 피해갔다. 검경은 그들의 무능을 덮기 위해 ‘관피아’가 아니라 ‘유병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보수언론과 종편방송도 그 ‘푸닥거리 굿’에 동참했다. 유병언 시신 발견은 검경의 무능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줬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이미 유씨 일가에게로 이양되어 있었다.
새누리당이 ‘유능’한 부분은 이 작업에 대한 전적인 협력의 차원에서다. 정권과 관료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벌이는 그 작업은 국회를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기능의 측면에서 따지면 국회를 ‘무능’한 상태로 방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새누리당이 바라는 국회상은 “무능하고 싶다. 더 적극적으로 무능력하고 싶다”로 요약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치’를 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면, 새누리당은 애초에 ‘정치를 거부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탓에, 국회는 점점 더 ‘기능은 없고 특혜만 있는 집단’으로 변해간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점점 더 국회의원들을 불신하게 된다. 현재 국회의원 한 사람이 대변해야 할 유권자수가 너무 많고, 의원수와 보좌관수가 늘어나야 하는 지경인데도 심정적으로 국회의원을 줄이자는 제안에나 기대게 된다.
세월호 참사나 윤 일병 사건은 검찰이나 군당국과 같은 관료조직을 입법부가 견제할 방안을 만들어내기에 좋은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에서도 새누리당이 대책 마련의 시늉만 하다가 관료들에게 사건을 맡기고 ‘출구’를 찾아 나가 버리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무능을 사수하기 위한 그들의 치명적인 유능’이 발휘되었다.
그들은 유권자들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았지만, 이를 행사하여 사회를 통제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관료가 재벌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의회는 권료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 의회의 절반 이상이 그러한 ‘무능’의 상태를 방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회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이며 투표를 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 대개조’를 위해선 정권 교체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무언가’가 필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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