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당 혁신과 관련한 논의가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하는 박영선 원내대표는 비대위 명칭을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정했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금태섭 전 대변인은 ‘새정치’에 대해 반성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정의당과 합당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진보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초·재선 의원들은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둘러싼 풍경은 어떤 의미에서 익숙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땅의 제1야당은 ‘비대위 체제’를 흔히 경험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단지 7.30 재보궐선거 패배에서 드러난 지도부의 무능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야당 심판’이란 말까지 나온 선거의 전면적 패배에는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의 치명적 무능이 큰 영향을 미쳤다. 좀 더 무난한 공천을 했다면 11:4라는 성적표는 받아들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공천이 꼬인 데엔 지도부의 무능한 조율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각 계파와 의원들의 이해관계의 문제가 있었다. 또 기존의 민주당에 ‘안철수 세력’이 합당하는 형태로 진행된 새정치민주연합의 왜곡된 체계만이 문제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시계를 되돌려, 2014년 3월의 합당 이전의 상황으로 가보자. 그때의 민주당은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역시 ‘혁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었다. 물론 ‘안철수 세력’까지 마찬가지였다. 양 진영은 지지자들로부터 나오는 혁신의 요구를 합당이라는 정치행위로 응대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각에서 나오는 ‘정의당과의 합당’ 논의도 반성적 성찰과 대책 마련의 길을 막는 알리바이로 기능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6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 훈련소 내무반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 지지층 일각에선 “정치 초보인 안철수가 망친 당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안철수 의원은 확실히 무능했다. 야권에 대한 혁신의 요구를 그는 ‘새정치’란 말로 언어화했지만, 끝내 그 모호한 단어에 실체를 부여하지 못했고 스스로 시대의 요구에 걸맞는 리더십을 행사하지도 못했다. 정치권의 인물로 소비된 후 3년여, 여의도에 입성한 후 2년여의 시간이 흘렀건만 정치인의 문법을 학습하지도 못했다. 초보적인 학습도 안 되는데 기성정당을 개혁해달라는 요구가 과한 것이었다. 자신이 ‘보스’로 인한 제3정당을 지휘하는 것처럼 보일 땐 그나마 ‘금박’이 벗겨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부실한 정치력이 휑하니 드러났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제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는 그와 여전히 남아 있는 열성적 지지층에게나 관심사다. 안철수 의원이 절치부심할 경우 정치적으로 재기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으나, 야권 지지층 일반이 그것을 절실하게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냈던 그것, 새누리당에 분개하지만 제1야당에 만족하지 못하는 유권자층의 열망이 더 이상 그에게로 수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개인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는 것은 역시 야권의 혁신이란 과제를 방관하는 것이다.
어쩌면 2012년 그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군림할 때조차 그랬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란 인물에 대한 경외’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에서 생긴 것이었는데, 민주당의 열혈 지지자들은 어떻게든 안철수란 인물을 깎아내리는 데에만 주목했다. 안철수를 비난하고 안철수만 후보에서 낙마시키면 문재인의 당선이 기정사실화되는 것마냥 행동했다. 2012년 대선 결과는 그들의 오만과 오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의 ‘체질’은 거듭 당을 쪼개고 통합하고를 반복하면서 악화된 것이 맞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의 탄생의 폐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안철수 세력’이란 것이 워낙에 현실적으로 몇 명 되지 않는 실체 없는 그룹이었고 자신들끼리도 제대로 된 맴버십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의 결과만을 쳐다보고 몇 되지도 않는 구당권파만을 축출하는 것에서 혁신의 의미를 찾는다면 이 나라 제1야당의 문제는 결코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기존의 계파들이 책임 소재를 물을 때 침묵하면서 차기 전당대회에 대한 전략이나 짜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백가쟁명이 중구난방에 그치지 않고 문제해결의 수순으로 나가려면, 책임을 통감하고 무언가를 던지는 중진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는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개인 리더십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전략공천을 없애겠다고 말했다지만, 단지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전남 순천 곡성 이정현의 당선을 도와준 서갑원 후보의 공천은 전략공천이 아닌 경선에서 나온 참사였다. 차라리 그곳은 정치신인으로 전략공천이라도 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하나의 정당으로서 공유하는 가치가 없다는 것, 그래서 이권연합으로 강하게 결속한 새누리당과는 달리 가치연합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선 문제를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외부 비대위원의 선임도 중요하겠지만, 일차적으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계파를 넘어 당을 재건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당의 노선과 방향에 대한 논의가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인적청산의 요구 역시 계파다툼 속에 함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트위터가 아닌 회의 석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당의 위기를 증언할 때다. 그게 아니라 의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하나도 없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은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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