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최초의 사과에서 ‘과거 정권의 적폐’를 언급했다. 정부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 줄곧 존재해왔던 문제, 지금의 자신은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문제들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윤 일병 사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역시 과거부터 지속되어온 뿌리 깊은 적폐 때문”이라면서 “지난 수십년 동안 군에서 계속해서 이런 사고가 발생해왔고, 그 때마다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또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6일자 보도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에 있어 ‘적폐’ 운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오히려 이 사건의 경우 세월호 참사가 이명박 정부 시절의 선박 규제 완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얘기다.
▲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2011년 당시 “각종 사고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사고에 대한 지휘책임과 개인책임을 명확히 분리하고, 단순히 사고의 유무(有無)와 건수로 지휘관과 부대를 평가하는 관행을 없애야 합니다. 훈련에 전념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개선해야 합니다.” 라는 내용의 김관진 국방부장관 신년사를 인용하고 “이후 육군의 모든 사고는 각 사단, 연대별로 처리하고 육군총장이나 국방장관은 사고에 대해 보고를 받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이어서 “2011년에 3군사령부 예하에서는 이상하게 자살자가 급증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상기 당시 3군사령관이 내 놓은 대책이 뭔지 아십니까? ‘이제부터는 사고 보고를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고 보고는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지시가 새로 나온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그의 의견은 윤 일병 사건 등 군내 사건·사고의 급증은 단지 ‘뿌리 깊은 적폐’가 아니라 보수정부의 직접적인 실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의 일부에도 암시되는 정황이다. <조선일보>는 4일자 2면 기사 <뇌종양 兵士 방치, 장교는 上官 협박… 軍 안으로 곪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 당국은 그동안 “일제(日帝)시대 군대의 잔재(殘滓)인 구타는 거의 근절됐고 가혹 행위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지만 군내 실상은 오히려 정반대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지난해 발표한 ‘군 인권 실태 연구 보고서’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사 305명 중 ‘군대 내에서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8.5%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 조사 때보다 2.5% 늘었다.

남이 구타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병사(17.7%)도 2005년(8.6%)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구타를 목격한 후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인 52.7%가 ‘못 본 척했다’고 했다. 가혹 행위를 당한 경험자도 2005년 9.6%에서 작년 12.5%로 늘었다. 특히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의 86.8%가 당한 후에도 ‘그냥 참았다’고 했다. 가혹 행위를 당하거나 목격한 병사들로부터 신고(보고)를 기다리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고질적인 군내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군 인권 문제가 2000년대에 비해서도 악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 원인 중 하나가 어쨌든 군 인권 개선을 정책 의제 중 하나로 담고 있었던 민주정부의 시책이 보수정부 출범 이후 중단되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정황을 보여준다. 6일 <한겨레>와 <경향신문> 보도에서 나온 ‘김관진 책임론’은 그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한겨레 6일자 1면
6일자 <한겨레>는 1면에서 [단독]이라고 단 <김관진, 윤일병 사망 다음날 전모 알면서 사단장 징계도 안해>란 제목의 기사에서 “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과 관련해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윤 일병 사망 직후 ‘지속적인 폭행’ 사실 등을 포함해 사건의 상당한 전모를 보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 실장은 당시 이런 보고를 받고도 사단장에 대해선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하급 군 책임자들만 징계하는 데 그쳐, 의도적으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기사는 “김 실장은 사건 전모를 알고 있었음에도 장관 재직 시에 사건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는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김 실장이 내린 징계 조처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보면 ‘솜방망이 처벌’이어서,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어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6일자 <경향신문> 역시 2면 기사에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증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6일자 2면
2012년에 출간되어 야당이 종종 인용도 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제임스 길리건, 교양인>란 책에서 저자는 20세기 내내 미국 사회에서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폭력 치사 발생률(살인율+자살률)이 줄어들고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그것이 늘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진보적 사회정책이 그 구성원들의 일탈적 죽음을 방지하는데 효력이 있음을 암시하는 논의일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거듭 이 책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도 이 통설이 들어맞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한국 사회에서 저 ‘폭력 치사 사망률’의 통계를 냈을 때 그 수치가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집권 시기에 따라 변할 거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는 십 년을 집권했을 뿐이고 그 시기는 IMF 직후이기 때문에 그 수치는 오히려 상승하는 추세였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군대 문제에서만큼은 새누리당 세력과 새정치민주연합 세력의 정치성의 차이가 드러날 수 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이에 대해 지휘관이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집권하는 것과, 사람은 원래 각자의 이유로 죽는 것이지 이에 대해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리면 국방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들이 집권하는 것은 군대 조직 문화의 양상을 바꿀 수 있고 그 결과가 ‘폭력 치사 사망률’의 차이로 드러날 수 있다.
군대의 자살자수가 가장 많은 시기는 유신시대였다고 한다. 윤 일병 사건에 우리가 분개할 수 있는 것은 군대 안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논의할 수 있을 정도의 민주적 매체 지형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틀 속에서, 과거로 회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군대 내 인권문제가 악화되는 과정일 수 있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윤 일병 사건은 ‘적폐’가 아니라 ‘현폐’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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