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과 분노는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4일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일부 의원들과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등이 이를 요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피의자들을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기소했는데 (이는) 국민의 법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사건을 폭로한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 역시 "때리는 순간 살인 고의성은 있는 것”이라면서 가해자들에게 고의성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군 당국 역시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에 대해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흥석 육군 법무실장은 4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질의에 출석해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이 상해치사 및 폭행 혐의로 기소돼있는 것과 관련 “군 검찰에서 수사할 때 살인죄 적용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라면서 “국민 여러분이 그와 같은 여론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 김흥석 국방부 법무실장이 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진행된 윤모일병 폭행치사 사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사건에 대해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또 박근혜 대통령 역시 5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이 사건에 대해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잘못이 있는 사람들은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군 당국이 무리해서라도 살인죄 적용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살인죄 적용이 능사가 아니며 현재 드러난 사건 정황으로는 상해치사죄가 더 합당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한 익명의 법조인은 “몇몇 언론에 상해치사죄로는 최대 10년 6개월 밖에 못 때린다고 나온다. 그런데 10년 6개월은 일반적인 살인죄에 비해서도 짧은 양형이 아니다. 군에서 30년 운운하는 건 형법상 가능한 유기징역 최장기 기간인데 문제의 본질과 이미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설명했다. 그 법조인은 “양형으로 해결하면 될 문제인데 ‘살인’에 집착하는 건 모종의 선정성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지적했다.
4일 <아시아경제>에 실린 <'윤일병 사건' 살인죄 적용 재검토, 법조계 반응은 '글쎄'>란 기사 역시 ‘살인죄 적용’에 대한 법조인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담겼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선 살인의 의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미필적 고의성이라도 인정돼야 하는데 단순히 죽을 수도 있으리란 사실을 예견한 정도에 그쳤다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경지법의 한 판사 역시 "살인의 의사가 있었다는 가해자들의 직접진술이 나온다든지 폭행의 정도에 비춰봤을 때 흉기를 사용했다거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위를 가격했을 경우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고 보도되었다.
다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 경우는 새로운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숙명여대법대 홍성수 교수는 “수사기록을 본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나 일부 변호사들은 여러 정황상 살인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라면서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법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살인죄로 기소하느냐 마느냐가 이 문제에 관한 핵심 논점이나 대안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홍성수 교수는 “흔히 ‘법리 문제’라고 하지만 순수한 법리 문제인 경우는 없다. 수사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갔느냐에 따라 사실관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법리 작용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그러니까 상해치사냐 살인죄냐를 따지려면 단순히 법률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헌병 수사 단계부터 검찰 수사 단계까지 모든 수사기록을 다 검토해야 한다”라면서, “살인죄가 아니냐는 의혹은 수사는 헌병대가 하고, 기소는 군검찰이 하고, 재판은 군사법원이 하는 등 군형사사법체계가 군대의 지휘통솔체계 안에 있고 군사법당국이 ‘봐주기식 수사’를 했다는 혐의를 여러 번 받아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홍성수 교수는 “군검찰관 수사가 무조건 잘못됐다고 단정짓는 건 아니지만, 헌병대나 군검찰관은 기본적으로 지휘명령체계 안에 있는데, 이번 사건을 봐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도 잘 안 되었고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이 지휘체계 내에 있는 헌병과 군검찰관이 제대로 수사를 했을까 하는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 국회 국방위원회 황진하 위원장과 여야 위원들이 5일 윤일병 폭행치사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연천 28사단 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을 찾아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여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된 만큼 윤 일병 사건에 대한 재판 진행은 군대 내에서 발생한 기타 사건에 대한 그것보다는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애초 윤 일병 사건 자체가 친척 중 의사나 법조인이 있었기에 이 정도 문제제기가 가능했다고 여겨질 만큼 군대가 외부에 개방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더구나 군대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전문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까지 하다. 익명의 한 법조인은 "사람들은 군대에게 살인죄 적용을 요구하며 아우성이지만, 역설적으로 육군이 여론과 권력(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의 압박에 이렇게 쉽게 떠밀려 '살인죄 적용 검토하겠다'고 말한 순간 '저런 사람들에게 사법을 맡겨도 되나'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개탄했다.
결국 군형사사법체계의 문제 뿐 아니라 군대 내 인권문제의 상당수가 군대가 외부에 정보를 개방하지 않고 외부로부터의 통제도 거의 없는 집단이기에 발생한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윤 일병 사건으로 인해 군대 내 사건 사고에 대해 보수언론도 보도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는 이 때에, 군대를 어떤 방식으로 군 외부 국가기관과 민간으로부터 통제를 받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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