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에 노출된 <미디어오늘> 기사 <박광온 딸 ‘랜선효녀’ 얼굴도 나이도 신비주의 전략?>(기사 바로가기)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왜 의혹 기사 형식으로 작성된 것인지…
이 기사는 “지난 7·30 재보선에서 트위터를 통해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수원 영통) 후보자의 당선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랜선 효녀’ 박효도씨. 하지만 실제 20대인 박씨가 왜 본인을 30대라고 소개하며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도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라는 두 줄로 시작한다.
이 두 문장은 전형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의 리드다. 그리고 이하 <미디어오늘>은 “랜선효녀가 나이를 속였다”는 의혹에 대한 검증에 들어간다. 먼저 <미디어스>와의 서면 인터뷰, 트위터를 통해서 본인이 30대라 말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그런 후 인물검색, 박광온 당선자에 대한 확인, ‘랜선효녀’ 본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의혹을 확증한다. 전형적인 의혹 취재 형식이다. 자신들이 인물검색을 통해 진실을 밝혔는데, 박광온 당선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랜선효녀’ 본인 역시 답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랜선효녀 나이 변조 의혹’은 규명해야 할 진실이 된다.
▲ 2일 오전 미디어오늘 기사 화면 캡쳐
심지어 <미디어오늘>은 “취재결과 30대가 아니라 20대인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이 알아낸 ‘랜선효녀’의 생년과 실명을 공개한다. 대체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무슨 공익성이 있을까. 기사를 시작하는 위 두 문장에서 그 공익성을 찾을 수 있을까.
후보자의 당선에 큰 도움을 주었을까?
일단 “후보자의 당선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부터 눈에 밟힌다. 왜냐하면 ‘랜선효녀’는 복수의 언론매체에다 대고 자신은 ‘아버지’의 당선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트위터라는 매체의 속성과 한계를 이해하는 선에서 박광온 당선자를 홍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측면에서 분석해봤을 때 박광온 후보의 당선은 젊은 유권자들이 많은 경기 수원정(영통)의 지역 특성, 지역에서 3선을 한 김진표 전 의원의 조력과 그 때문에 2번을 찍어봤던 유권자들의 경험, ‘기동민’발 야권연대로 인한 정의당 천호선 후보 사퇴 등이 결정적일 것이다. SNS상에선 오히려 “랜선효녀가 재밌긴 했는데 야당이 이를 ‘역시 트위터를 해야 잘 먹혀’라고 잘못 알아듣고 다른 거 안 하고 ‘노잼’ 계정 양산할까 우려된다”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박광온 당선자가 지역구를 돌면서 청년 유권자들에게 “따님 계정 재밌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많다고 하니, 지나고 생각해보면 정치신인으로서 거물급 정치인 임태희를 꺾는데 ‘인터넷 유명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우리가 의미있게 따져봐야 할 지점이 있다면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과연 인터넷상 유명세란 것이 정치인에게 도움이 되는지, 어떨 때는 도움이 되고 어떨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아무런 설명이나 분석 없이 거두절미 “당선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으로 시작하는 <미디어오늘>의 기사는 그들의 방점이 ‘당선에 큰 도움’이 아니라 ‘알려진’에 있을 거란 짐작을 하게 한다.
물론 <미디어스>의 ‘랜선효녀’ 인터뷰 기사가 그랬듯, 소소한 것들에 대한 소소한 정보도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익적인 의혹을 취재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검색어’를 노리면서 굳이 의혹 제기 형태의 기사를 쓰고 중간에 ‘신상’을 풀어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보기 민망하다.
▲ 지난 7월 30일 오후 수원정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사무소에서 꽃다발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이를 속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있나?
“실제 20대인 박씨가 왜 본인을 30대라고 소개하며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도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혼자서는 도무지 풀리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서 “얼굴도 나이도 신비주의 전략?”이란 제목을 붙였던 것일까.
그러나 기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랜선효녀’가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나이도 ‘보정’하는 것의 이유로,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되든 말든 그와 상관없이 내 사생활은 안전하게 보장받겠다’는 욕망 이외의 것을 찾을 수가 없다. <미디어오늘>이 정말 저 기사가 의혹 제기 기사이며 그 의혹에 공익성이 있다고 주장하려면, ‘랜선효녀’가 인터넷 소개와 인터뷰에서 나이를 몇 살 얹고 낮추고 하는 것이 박광온 당선자나 그녀 자신에게 어떠한 부당한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부터 설명하길 바란다.
<미디어오늘>은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심통이 나 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령 <미디어오늘>은 ‘랜선효녀’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 역설적인 이유, ‘부모와 독립된 인격체가 되려는 자녀의 욕망’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디스(공격)하면서도 자랑한 것이 아니냐”라고 물었던 것 같다. 뭘 하든 홍보전략의 차원에서나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든 아니면 허상이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한 얼굴을 공개한 후보자의 자녀보다 '아버지'를 ‘디스’하면서 섞이는 '아버지'의 얘기가 더 진실하다고 느꼈다. 적어도 그 지점을 이해했다면 저 질문은 다소 달랐을 것이다.
이해가 부족했더래도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위에서 적었듯, 상식적인 수준에서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디어오늘>이 내놓을 수 있는 설명은 “국회의원은 공인이며, 공인의 자녀의 사생활도 국민의 알권리이며, 이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가 고작일 것이다. 그러나 ‘랜선효녀’의 답변은 청문회장이나 법정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녀의 나이가 문제의 쟁점사항이 되는 비리나 의혹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 @snsrohyodo 계정의 반응 캡쳐 사진 (1). '미디어오늘' 기사는 계폭했던 계정을 사흘만에 살려냈다. 하지만 곧 다시 계폭이 이루어졌다.
‘가십’을 ‘알 권리’로 치장하는 언론의 횡포
<미디어스>가 ‘랜선효녀’ 측에 확인해본 결과 <미디어오늘>의 인터뷰 질문지의 첫 질문은 “미안하게도 뒷조사를 좀 해봤다(...) 진실을 말해달라”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랜선효녀’는 이에 대해 “어이가 없어서 공란으로 남겨놨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미디어오늘> 기사에 오면 “박효도씨는 지난달 31일 미디어오늘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이와 관련한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았다”가 된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궁금하다. 첫 질문에 붙인 '미안하게도'는 허언에 불과했던 것인가.
‘랜선효녀’는 ‘익명’이지만 ‘특정 인명’이다. 박광온 당선자가 직접 그 계정의 작성자가 자신의 딸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 계정의 공신력은 없었다. <미디어오늘>이 쉽게 그녀의 신상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불특정 익명’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랜선효녀’가 국회의원 자녀로서 특권을 휘두르는 부적절한 처신을 한다면 이를 밝혀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는, 공개를 원치 않는 그녀의 신상정보 역시 사생활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 @snsrohyodo 계정의 반응 캡쳐 사진 2. '미디어오늘' 기사는 계폭했던 계정을 사흘만에 살려냈다. 하지만 다시 계폭이 이루어졌다.
<조선일보>는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의혹을 보도하고, 공중파와 종편은 유씨 일가의 식습관에 탐닉하는 세상에서, 그들을 감시해야 할 매체비평지의 품위는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 거대한 '악'들과 비교했다고 억울해 한다면, "모래알도 바위도 가라앉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올드보이> 이우진의 대사를 생각해보자. ‘가십’을 ‘알 권리’로 치장하는 언론의 횡포에 매체비평지까지 동참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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