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이 낮은 재보궐 선거라는 특수성이 있다. 한국의 정치구도가 사실상 양당구도로 흘러가고 있고 애초부터 언론은 보수·진보할 것 없이 이를 부추겨 왔다는 맥락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9:6이니 8:7이니 하는 양자구도 중심 보도를 하면서 ‘진보 실종’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물론 이에는 진보정당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정의당의 경우 거대양당 이외의 진보정당으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이 양자구도의 분류에 합류한 모양새이며, 기타 진보정당들의 경우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대결 보도인데, 정말 양자대결 구도이기만 할까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 15개 선거구 중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만 출마한 곳은 부산 해운대 기장갑, 대전 대덕,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3군데다. 여기에 새누리당 후보에 무소속 후보가 맞선 울산 남구을까지 4군데 정도가 명확한 양자대결 선거다.
그 외엔 양당후보에 무소속후보가 경합하는 곳(경기 평택, 충남 서산 태안, 전남 나주 화순), 양당후보와 함께 통합진보당 후보가 출마한 곳(충북 충주), 양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출마한 곳(경기 수원병, 전남 순천 곡성), 새누리당과 정의당과 노동당 후보가 출마한 곳(서울 동작을), 양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와 정의당 후보가 출마한 곳(경기 수원을), 양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와 정의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까지 출마한 곳(광주 광산을), 양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와 노동당 후보가 출마한 곳(경기 수원정), 양당 후보와 정의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출마한 곳(경기 김포) 등 제각각의 사정이 있다.
▲ 30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즉, 재보궐선거에 개입한 정치세력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이외에도 적어도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이 있다. 게다가 무소속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후보들이 있다. 가령 경기 평택의 무소속인 김득중 후보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출신으로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 후보를 내지 않고 지지하는 진보단일후보이자 노동자 후보다. 이 지역의 선거는 보수정당과 자유주의정당에 맞서 노동계가 출마한 3자구도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또 울산 남구을에 출마한 송철호 후보는 무소속 시민후보를 표방하고 있지만 과거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국회의원과 울산 시장에 출마한 전력이 있다. 그는 여러모로 볼 때 지난 지방선거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오거돈 후보나 부산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김석준 후보와 견주어 해석할 수도 있는 후보다.
한정된 지역구와 낮은 투표율 탓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다각도로 분석될 수도 있는 선거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물론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 진보를 표방하는 일간지들에서도 군소정당의 선거전략이나 특색있는 무소속 후보의 동향에 관한 기사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실정이다.
정의당 ‘반쪽’만 남은 존재감, 무기력한 진보정당 운동
예외가 있다면 정의당 정도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결과적으로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서울 동작을에서 노회찬 후보를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를 사퇴시키는데 성공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경기 수원병과 수원정에 출마했던 이정미 후보와 천호선 후보를 사퇴시켰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다.
하지만 매우 주의깊게 살핀다 하더라도 노회찬 후보 이외에 여전히 완주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 경기 수원을(권선) 박석종 후보, 경기 김포 김성현 후보, 광주 광산을 문정은 후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쉽지 않다. 해당 지역구에 대한 보도를 할 때도 비중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몇 명은 ‘치우고’ 몇 명은 ‘남겨둔’ 정의당의 이번 선거 전략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는 법도 없다. 노동당은 정의당의 선거전략이 '이중잣대'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이 역시 '그들만의 리그'의 사정으로 취급당할 뿐이다.
▲ 30일자 한겨레 5면 기사
통합진보당의 경우 지난 지방선거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법무부로부터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위헌정당 해산심판청구나 이석기 내란음모죄에 관련해서만 진보언론에 등장할 뿐이다.
물론 현재의 통합진보당이 어떤 의미에서 진보정당인가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오히려 <미디어스> 같은 매체에 대해선 통합진보당에 온정적인 태도를 취한 바 있다. 그 입장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그것과 별도로 진행되는 선거보도를 이해하기 힘들다. ‘통합진보당은 간절하게 야권연대를 바라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류의 분석기사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실정이다.
최근 노동당 김종철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한 서울 동작을 유선희 후보 외에도, 전남 순천 곡성 이성수 후보, 광주 광산을 장원섭 후보, 경기 수원을 윤경선 후보, 경기 수원병 임미숙 후보, 경기 수원정 김식 후보, 충북 충주 김종현 후보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도 어렵다. 통합진보당은 15개 국회의원 지역구가 아닌 함께 실시되는 수원시의원 사 선거구 기초의원 선거에도 김정희 후보를 출마시켰는데도 말이다. 광주 광산을 장원섭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후보 측과의 갈등을 통해서만 ‘간헐적 존재감’을 보여왔을 뿐이다.
원내에 5석을 가진 두 정당도 이럴진데 원외의 노동당이 받는 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노동당은 서울 동작을에 김종철 후보를, 경기 수원 정에 정진우 후보를 냈지만 언론에서의 존재감은 ‘미미’를 넘어 ‘제로’에 가깝다. 김종철 후보는 2006년 민주노동당적으로 서울시장 후보에 나섰고, 2008년 총선에 이어 2012년 총선에서도 서울 동작을에 출마해 5%대의 만만치 않은 지지율을 거둔 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특히 노회찬 후보와 기동민 후보의 단일화 이후 노회찬 후보 선본은 ‘야권단일후보’란 명칭을 쓰고 있어 일부 노동당 지지자들은 “김종철 후보는 여당후보다”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철 선본 측은 “보도는커녕 여론조사에도 포함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그래도 지역에선 반응이 있기 때문에 완주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종철 선본은 지난 27일 인터넷선거보도심의회에 몇몇 기사를 제소한 상태다.
언론이 ‘존재감’을 지웠으나 결과에서의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언론이 ‘투명인간’ 취급한다 해도 선거결과에서까지 이들이 투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를 출입하는 정치부기자들은 경기 평택과 서울 동작을에서 무소속 김득중 후보와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여야 승부의 당락을 가릴 수 있을 수준의 득표를 하리라고 본다. 경기 평택의 김득중 후보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출신으로 새누리당 임태희와 새정치민주연합 정장선이 경쟁하고 있는 지역에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진보언론들의 존재감 때문인지, 역설적으로 김득중 후보는 여타 진보정당 후보에 비해서 보도환경이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측면도 있다. 김득중 후보 선본의 한 관계자는 “정장선 후보가 평택에서 3선을 하면서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더 나아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야당 후보를 위한 사퇴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 30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노동당 김종철 후보의 경우 상징성이 강한 지역구에 나온 ‘진보’로 생각되는 노회찬 후보의 급상승으로 그만한 득표율은 얻지 못하겠지만 나경원-노회찬의 경쟁이 ‘초박빙 판세’로 가는 상황에서 캐스팅보트 정도는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부기자들은 “김종철 지지율 이내의 격차로 노회찬 후보가 패배하는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후보단일화 협상은 진보정당 재편을 위한 당대당 논의에 대한 요구에 노회찬 후보 측이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중단된 상태인데, 이에는 노동당 김종철 후보 측의 책임도 있다.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그만 통합진보당 유선희 후보와 합의문을 쓰고 지지선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이 단일화하면 ‘종북’인 통합진보당 후보와 단일화한 노동당 후보와 협력한 정의당 후보도 ‘종북’이며, 이를 지원하는 새정치민주연합도 ‘종북’이라는 새누리당의 논리가 완성된다. 좀 어거지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하여간 그렇게 말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두 사람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될 전망이 없음에도 새누리당의 김을동 최고위원이 그런 식으로 말한 상황도 있다.
‘상징적 죽음’조차 주목받지 못한 진보정당, 이후 보도는?
어떤 의미에선 정의당의 반쪽만 드러나고 전체 진보진영 전체가 ‘투명인간’인 상황에 놓여 버렸기 때문에 ‘실책’이 보도되지 않은 측면조차 있다. 이를테면 막 피선거권을 획득한 노회찬 후보가 굳이 이번 재보선에서 6년간 닦은 서울 노원병을 등지고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역시 6년간 닦은 서울 동작을에 온 것은 진보언론으로부터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상황이었다. 또 그와 경중은 다를지언정 통합진보당 유선희 후보의 지지선언을 받으면서 합의문을 쓴 노동당 김종철 후보의 선택의 의미도 진보언론에서 고찰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접근은 없었고 이 모든 것은 ‘찻잔 속의 내홍’으로 끝났다. 남은 것은 ‘훌륭한 진보정치인 노회찬’과 상대편 후보 나경원의 선악대결구도이며 다른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이것은 진보정당 운동을 지지하던 담론이 붕괴했으며 적어도 담론적 측면에선 여야 양당정치로 휩쓸려 갔음을 보여주는 징후일수도 있건만 이조차 무시당했다.
한 켠에는 ‘후보단일화를 위한 사퇴’라는 감동이 있지만, 다른 한켠엔 ‘강제로 언론으로부터 존재감 삭제 단일화를 당한 폭력’이 있다. 이는 통합진보당이 그 정치성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제1야당과의 야권연대에 환영받지 못하고, 노동당의 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정의당이 기타 정당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는 탓도 크다. 서울 동작을에 나선 노회찬 선본의 ‘야권단일후보’ 운운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의당의 태도가 진보언론들의 보도기조를 합리화하진 못할 것이다. 보나마나 재보선이 끝나면 이들 언론들이 ‘진보정당 운동의 위기’를 다시 한번 다루게 될 것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평소에 주는 약간의 관심마저 선거과정에선 생략하는 이 정파적이고 정략적인 보도행태가 이십년 넘게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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