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변사체’ 발견을 통해 드러난 검경의 무능은 참담하다. 대규모 수색이 실시된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를 노숙자로 인지하던 경찰은, 40여일만에 무능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부랴부랴 유류품 검사를 하다가 존재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촌극을 벌였다. 수사를 지휘한 검찰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인력이 부족해서’ 라고 변명한다면 기소 독점주의에 대한 비판을 추가로 불러올 뿐이다.

마침 일부 유가족들이 단식까지 해가며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가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의 위원장이기도 한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등은 이를 ‘보상의 양’과 ‘공정성’ 문제로 호도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정치공동체는 결코 빈곤하지는 않다. 다만 국가의 적폐를 대면하기 위해 진실과 대면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새누리당은 특별법상 진상조사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 말한다. 위헌적 발상이란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은 ‘법적 논리’라기 보다는 ‘무논리’에 가깝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 먼저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세월호 특별법의 진상조사기구는 ‘민간기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상조사기구는 법률에 의해 설치돼 세금으로 운영되며, 국회와 피해자단체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과 공무원의 권한의 책임을 갖는 직원들이 운영하는 엄연한 ‘국가기구’다. 한시 기구라는 점에서 특별함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아닌 국가기구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수사권·기소권을 어느 기관에 부여할 것인지의 여부는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정하면 될 문제다.

(...) 세월호 참사 후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이미 선장과 선원 등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감사원은 감사를 진행했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여전히 해소된 문제보다 해소돼야 할 의혹이 훨씬 많다. 엊그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지적한 세월호 관련 쟁점사항은 무려 89개에 달한다. 기존의 국가기구가 이 문제를 다루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다. 대통령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적폐’를 언급하고 ‘국가대개조’를 약속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적 국가기구에 충분한 권한을 주고 문제해결을 맡겨보자는 것은 전혀 과한 제안이 아니다. (...)“
▲ 23일자 한국일보 27면에 실린 홍성수 교수의 칼럼
결국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법적 논리’ 때문이 아니라 ‘조폭적 논리’ 때문이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진상조사기구로부터 조사를 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책동이다. 이를 위해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을 ‘보상’으로 몰고, ‘보상의 양’과 ‘보상의 공정성’ 문제를 걸어 유가족을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모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구조’보다 ‘의전’을 중시해서 나타난 결과가 세월호 참사라는 혐의가 있건만, 그 혐의를 벗어나려 노력하기는커녕 헌법기관이란 작자들이 여전히 행정부 수반의 ‘보위’에나 매달리는 중이다.
▲ 시민단체 참여연대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노란 우산과 피켓을 든 채 세월호 가족 대책위 단식 농성장을 찾아 가족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유병언 변사체 발견’으로 발가벗겨진 검찰과 경찰이 이 ‘조폭적 논리’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만약 진상조사기구가 생긴다면 해경과 청와대 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도 수사를 받아야 할 판이다. 진상조사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가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은 더 커진 셈이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자들의 반발은 훨씬 더 증대될 공산이 크다.
세월호 참사에 국민들이 깊이 상심한 이유는 그들이 그곳에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았다는 슬픈 예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지는 정국 역시 ‘세월호 참사의 확대판’이면서 ‘한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여겨질 뿐이다. 참사 직후 해경의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묘하게 헌법기관이라는 심재철의 유권자들에 대한 보고와 포개진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인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어쩌면 예언이었는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