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논조를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조선일보>와 상대적으로 진보적 논조를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한겨레>가 나란히 경제와 관련된 기획 기사를 실었다. 둘 다 최근 회자되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대를 통한 경제활성화 주장과 관계가 있어 흥미롭다.

<조선일보>는 15일자 8면에 <일자리·가계소득·내수 모두 키우는 선순환의 ‘킹핀 효과’ 노려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이 기사는 <한국경제,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란 제목의 연속기사 2편이다. 12명의 경제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어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는 내용이다. 이 12명의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두 가지 계책을 제시한다. 이 계책의 첫 번째는 부동산 경기를 살려서 내수 분야에 연쇄효과를 내도록 하고 두 번째는 기업의 사내유보금 등을 투자와 배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 조선일보의 10일자 지면.

부동산 얘기야 <조선일보>다운 얘기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투자 및 배당으로 이끌어내라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이른 바 ‘소득주도성장론’에서 기업이 축적한 이윤을 가계로 이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와 연결되는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배당을 늘리면 소액 주주들의 가계 가처분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살아나게 되고 빚을 갚을 능력이 커지니 가계부채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내놓은 것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주장이다.

사내유보금의 투자 유도 주장에 대해서는 기사에 인용된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의 말이 정확한 의도를 표현해주고 있다. 그는 “서울 시내에 호텔이 들어오도록 해 주든지, 영종도에 카지노를 제대로 되게 해 주든지, 제주도에 중국인 병원이 들어오게 하든지, 케이블카를 설악산에 놓도록 해 주든지 뭐라도 하나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결국 소위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확산시키라는 고전적 조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조선일보>가 해당 기사를 통해 주장하는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계책은 규제 완화를 통한 부동산 경기 활성화 및 기업들에 대한 투자 유도와 사실상 기업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 그 알량한 배당을 통한 주주소득 증대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나마 앙상하 형태로나마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활용을 언급하고 있다는 데에서 최근 제기된 소득주도성장론의 일단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한겨레의 10일자 지면.

이에 비하면 <한겨레>의 10일자 기사들은 전날 한계를 보였던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보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비정규직 임금 차별 시정, 최저임금 현실화, 사회보장 확대 등을 통한 소득 기본선 확보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가계소득의 증대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를 모색하자는 것인데 10일자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기사를 비교해보면 가계소득의 증대 방식을 두고 보수와 진보의 해법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보수는 최대한 시장의 논리를 통한 가계소득의 증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진보는 국가와 제도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 셈이다.

▲ 조선일보 10일자 사설.

두 신문들의 사설을 보면 서로의 주장에 대한 반론 격인 논리도 나와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이 보여준 한국 제조업 생존의 길>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국내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국외에 진출해 저임금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정부의 ‘유인책’을 통해 현지에 진출해 저임금 일자리 5만3000여 개를 양산하자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고급 일자리가 6100여개 늘어났다는 얘기다. 이 사설은 ‘양질의 일자리’라는 개념으로부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논리를 이끌어낸 수작으로 평가할만 하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사회보장 확대 등을 통해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양질로 만들지 않아도 더 불행한 국가의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착취해 얻은 이윤으로 국내 고급 일자리 창출을 도모할 수 있다는 참신한 논리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일정한 반론으로 다뤄질 수 있는 주장인 셈이다.

반면, <한겨레>는 10일자 지면에 <박 대통령 창조성 없는 ‘부동산 띄우기’ 대책>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 언급을 두고 “부동산 시장 진작을 마중물로 삼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의 경제성장에 대한 논의 등을 의식한 듯 “가계소득 증대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는데, <한겨레>는 이에 대해서도 “일자리를 창출하되 좋은 일자리여야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한편, 최저임금을 높이는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조선일보>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등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인식될 수 있는 주장이다.

▲ 한겨레의 10일자 사설.

하나의 담론을 놓고 이렇듯 현실에서의 구체적 적용 방법을 자신의 입장에 따라 이리 저리 모색해보는 모습을 언론이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필요도 있다. 위에서 보듯이 결국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라는 전제 하에서는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펴며 논의를 공전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논리에는 저 논리를, 저 논리에는 이 논리를 들이대며 각자의 주장을 강화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10일자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지면이 바로 그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청사진을 정치권과 학계에 언론이 요구해야 할 필요도 있다. 특히, 소득주도성장론은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실증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므로 이에 기반해 향후 한국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기획을 제출해낼 것을 언론이 정치권에 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청사진을 그려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가계 가처분 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활성화와 소득주도성장론을 둘러싼 논의가 실질적인 형태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정치권과 언론, 학계의 노력이 특별히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한 노력이 진행되지 않으면 모처럼 촉발된 논의가 이미 정책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행보만 강화시켜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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