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야의 재보궐선거 공천 논란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야말로 대혼란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정책과 정치적 비전을 갖고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할 7·30 재보궐선거가 누가 더 못났는지를 겨루는 코미디로 귀결되고 있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돌려막기’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6일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경기 수원시 정 지역구 재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애초 경기 평택시 을 지역구 출마를 결정했다 공천에서 배제된 이후 내려진 결정이다. 임태희 전 실장은 “당을 아끼고 국정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당의 출마 요청을 수락한다”면서 여러 가지 좋은 얘기를 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평택 출마가 무산된 것에 대한 지도부의 ‘배려’가 작동했을 것임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기 수원시 정 지역구는 수원시 영통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의 지역구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와 역대 선거결과 등을 분석해보면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새누리당 내에서 이 지역구의 공천을 신청한 사람이 사실상 없다는 것에서도 뒷받침 된다. 이런 어려운 지역구의 출마를 임태희 전 실장이 덥썩 받아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임태희 전 실장은 그냥 출마를 하면 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오른쪽) 등 지도부가 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7·30재보궐선거에서 수원정에 공천을 받은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구가 탐탁치 않아도 출마만 하면 된다. 우리가 잊고 있지만 임태희 전 실장은 재무부 엘리트 공무원 출신에 3선 국회의원,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역임한 정치권의 나름 거물이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도 출사표를 던지셨었다. 그 자신이 말하는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셨다’는 이유로 당 내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는 신세가 된 그로서는 출마라도 해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스토킹을 해서라도 모시겠다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요지부동인 상태다. 나름대로 계산을 해본 끝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출마하도록 한 상태에서 김문수 전 지사가 선거에서 지면 그대로 정치생명은 끝이다. 따라서 일단 이번 판은 쉬어가는 게 차라리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새누리당 지도부의 다음 행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문수 전 지사에 이어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 출마가 점쳐지는 건 나경원 전 최고위원이다. 나경원 전 최고위원은 그간 수원시나 김포시 등 경기권 지역구 전략공천이 논의됐으나 서울 중구를 지역구로 하면서 서울시장 선거에까지 나간 사람이 경기권 보궐선거에 명분도 없이 출마하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불출마로 정리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카드를 김문수 전 지사가 출마를 고사했다는 이유로 다시 꺼내든 것이다. 나경원 전 최고위원으로서는 고려해봄직한 제안일 수 있다. 임태희 전 실장과 마찬가지로 친이계라는 이유로 빛을 못 보던 나경원 전 의원으로서는 해볼만한 게임에 출전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이렇듯 새누리당이 볼썽사나운 꼴이긴 해도 어쨌든 서로의 욕망과 요구에 맞춰 돌려막기 공천을 하고 있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마찬가지로 돌려막기를 하면서도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비극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역구가 서울시 동작구 을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전략공천하기로 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아직까지도 이를 수락한다는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광주 광산구 을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던 사람을 하루 아침에 서울로 끌어올려 출마토록 한 당 지도부에 대해 당 내에서 비판 여론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부의 이 결정으로 ‘물을 먹게 된’ 허동민 전 지역위원장이 기동민 전 부시장과 20년 지기 친구라는 사실도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허동민 전 지역위원장이 양해를 해주면 모를까, 당 대표실까지 점거하면서 반발하고 나서면 기동민 전 부시장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던 도중 전략공천에 항의하며 농성 중인 허동준 동작을 지역위원장(가운데)과 지지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딱한 것은 이 결정으로 인해 4선 중진인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마저도 갈 곳을 잃었다는 것이다. 천정배 전 장관이 공천을 신청했던 광주 광산구 을 지역구가 해당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던 기동민 전 부시장이 차출(?)되면서 전략공천 대상 지역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천정배 전 장관은 지도부에 항의하고 재차 경선을 요구하는 등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천정배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들리고 있다. 천정배 전 장관은 7일 복수의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 출연해 탈당 후 무소속 출마설을 정면으로 부정했지만 이미 해당 지역구에 천정배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할 경우에 대한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등 심각한 내홍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추천했다는 최명길 전 MBC 부국장이 대전 대덕 지역구 재보궐선거 후보자 경선 불참을 선언하고 경기 김포에 출마할 예정이었던 안철수 공동대표 보좌관 출신의 이수봉 직능위 부위원장도 사퇴를 선언하는 등 민감한 상황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새정치민주연합 구성원들과 지지자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들은 안철수 공동대표 측이 “김한길 공동대표 측에 속은 것 같다”고 자평해 결별 내지는 충돌이 예고된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안철수 공동대표 측 인사들이 6·4 지방선거 때부터 공천과 관련한 비난은 안철수 공동대표가 뒤집어 쓰고 김한길 공동대표 측이 민 인사들은 큰 잡음 없이 살아남은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공천을 받은 사람이나,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이나, 그 공천을 결정한 지도부나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는 그림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재보궐선거와 관련한 ‘위기’는 새누리당보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에 더 가혹한 형태로 올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로고도 볼 수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비록 선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더라도 당내 계파 간의 협상이 어느 정도 진전된 상황에서 7월 14일 치러지는 전당대회 결과와 연관지어 선거 결과를 평가하는 우회로를 경유할 수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재보궐선거 공천과 관련한 잡음이 이런 수준으로 지속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김한길-안철수 지도부의 운명이 곧 차기 대권주자들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고 어렵다. ‘새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불행한 신세가 되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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