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내외가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3일부터 4일까지 한국을 국빈 방한한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여러 모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먼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중국 국가주석의 첫 단독 방한이다. 1992년 수교 후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3차례 있었으나 모두 여타국과 연계된 방문이었다. 또 그동안 중국 국가주석은 모두 방한에 앞서 북한을 먼저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 개인으로 봐도 지난해 3월 취임 후 총 6회 외국 방문 중 양자 차원의 단독 방문은 이번 방한이 처음이다. 이번 중국 측 방문단에는 부총리급 인사 3명과 장관급 인사 4명을 포함한 총 80여명의 수행원이 포함돼 있고 200명 내외의 경제계 인사들이 따라왔다. 그렇기에 ‘메머드급 사절단’이라느니 ‘유례가 없다’느니 하는 표현이 흔히 언론에 나온다. 하지만 한중 우호가 ‘순풍에 돛단 듯’ 진행되고 있다고 만족하기에는 산적한 문제가 너무 많다.
▲ 3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동아시아의 계속된 딜레마, 북한 핵 문제
양국 정상의 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일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중국이 기존에 내세웠던 ‘한반도 비핵화’나 ‘6자회담 찬성’ 정도의 원론적 입장이 재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중국 정부의 최대 정책자문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은 연초 발간된 “2014년 아시아태평양 지구 발전 보고서”에서 “중국이 북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의) 오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는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측의 북한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가 박근혜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연초부터 ‘통일 대박’론을 펼치게 한 정황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2월 5일자에 실린 <美·中과 한반도 통일 전략대화 시작할 때 됐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가 이미 통일의 길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절실한 상황이다”라고 까지 지적한 바 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하지만 정황을 살펴볼 때 중국의 태도가 변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북한’ 뿐 아니라 ‘남한’도 ‘카드’로 고려해준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당장 2013년 북한 3차 핵실험 후 중국 일각에서 ‘북한 포기론’이 나왔지만 관영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그해 4월 12일자 사설에서 "조선을 포기하자는 주장은 지나치게 간단한 것으로 중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이런 유치한 견해를 따를 리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이 신문의 사설을 보면 중국의 인식에서 북한은 여전히 중국의 지정학적 전선이며 한국, 일본이라는 전략적 지지 세력을 가진 미국이 아태 지역으로 복귀하는 가운데 북한은 여전히 한·미·일에 대응하는 보호벽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중국 정부의 내심이 미묘하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이렇게 얘기하는 이들도 있고 저렇게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에서 만난 북한 전문가에게 중국의 북한 정책을 “환탕불환약(換湯不換藥)”, 즉 약탕기는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그 안에 든 약은 바꾸지 않았다는 비유를 들었다고 전한다. 접근하는 태도는 다소 바뀌었을지 모르나 북한이 중국에 가지는 전략적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방한의 훈훈한 분위기를 중국 정부가 ‘중한경조(重韓輕朝·한국을 중시하고 북한을 경시하는)’의 기조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장밋빛 전망일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이 4차핵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어느 정도 압박은 하겠지만, 한국 정부가 원하는 것만큼의 압박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및 교류·협력 기조를 견지하기를 바랄 것이다. 중국을 신뢰하면서 그저 ‘통일 대박’이라는 김칫국을 마신다면 그 시간은 ‘허송세월’이 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일본 재무장과 과거사 문제에 '공동 대응'은 가능한가?
최근 중국과 한국은 특히 역사문제의 차원에서 일본에 대해 공동 대처해온 측면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표지석을 세워 달라고 했을 뿐인데 중국 측이 아예 하얼빈역사에 ‘안중근 기념관’을 만들어준 사례도 있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분명히 한국과 중국이 공동 대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자, 홍콩의 유력지 성도일보(星島日報)는 올해 2월 4일에 "시진핑 지도부의 외교 전략에 변화가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안중근 기념관’을 개관한데 이어 시진핑 주석이 2월 2일 62세 생일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생일 축하 서한을 보내 '연내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힌 후였다.
성도일보는 이에 대해 "이 서한은 중국 최고 지도부가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에게 보낸 생일 축하서한"이라면서, "이는 '연한제일(聯韓制日·한국과 손잡고 일본을 제압하는)'의 뜻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시진핑 지도부의 외교 정책에 변화가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당시 성도일보는 중국이 덩샤오핑 시절 중국의 대외정책인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를 넘어서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과거 중국은 적도 맹우도 없는 중립적인 국가로 적을 만들지 않는데 주력하면서 미국 등 대국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한국과 일본을 구별하고 러시아와 친교를 도모하는 등 적극적인 주변국 외교정책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에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면, 중국 역시 일본 문제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나 우경화에 대한 우려 정도는 표할 수 있을지 모르나, ‘집단적 자위권’과 같은 사안을 정면비판하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재무장이 일정 부분은 미국의 용인 하에 진행되는 것으로,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의 틀거리 안에 있는 한국의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국과의 갈등이 켜켜이 쌓인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교류·협력의 폭을 확대할 수는 있겠으나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층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미중대결 구도에서 한국의 역할 찾아질까
두 나라의 이해관계를 어지러이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가오는 미중대결 구도에서 한국의 역할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익으로만 판단해 본다면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지 않거나, 한국은 양측과 모두 친한 것이 이롭다. 당장은 수세에 있다고 할 중국 역시 그렇게 볼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이 부상할 것을 보고 있는 미국으로선 아시아의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 급선무다.
▲ 3일자 한겨레 6면 기사
시진핑 방한에서의 논의에서 이런 문제가 표면상으로 드러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게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를 권유하는 상황은 중국에겐 분명히 껄끄럽다. 또 중국이 제안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이 가입을 검토하자 미국이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은 분명히 미국의 진영에 속해 있고 보수세력은 이를 축복으로 여기지만 미국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장기적으로는 중국 쪽으로 넘어갈 것이라 본다는 분석도 있다. 어쩌면 중국 역시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당장에는 친미노선을 밟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처지를 배려하면서도 접점의 폭을 넓히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진영으로 온전히 넘어가는 것의 위험부담이 더 큰 상황이기도 하다.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초강대국과 당장 통일하면 육로로 국경선을 맞대어야 하는 초강대국의 중량감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다자간 평화협정이겠지만 중국도 일본도(혹은 미국도) 이를 원하지 않을 경우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시진핑의 ‘역대급’ 방한에 설레이기엔 한국 외교의 근본적인 딜레마가 너무나도 엄중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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