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30일 쓴 <방통위, 편향 논란 ‘이승만 다큐’ 강행했던 이에게 특별상>기사(▷링크)가 그랬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방송대상’ 명단에서 특별상에 강대영·김옥영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KBS <이승만 다큐> 방영에 반대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KBS 앞에서 천막을 쳤던 사진이 떠올랐다. 당시,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KBS 측과 천막 철거로 실랑이를 벌이다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었다. 강대영과 김옥영은 KBS가 이승만 다큐를 강행하기 위해 구성한 <이승만 다큐 자문위원단> 명단에 포함된 이들이었다.

▲ 2011년 방영되며, 독재미화 논란을 낳았던 KBS 이승만 다큐 화면

그렇게 기사를 써내려갔다. 2014 방통위 방송대상에서 특별상을 받게 된 강대영·김옥영, 두 인사는 2011년 독재미화 논란을 낳았던 KBS 이승만 다큐 방영에 공헌한 인물이라는 지적이었다. 2011년 KBS 이승만 다큐는 큰 논란의 대상이었다. 왜 그 시점 KBS에 이승만 다큐를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은 ‘미화’에 맞춰졌었다. 당시, KBS 새노조는 “역사왜곡으로 흐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KBS 이승만 다큐 기획안을 살펴본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와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등은 “미화로 볼 소지가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독립운동가 후손, 4.19혁명 단체 대표 등 원로 125명은 “KBS 이승만 다큐 전면 중단”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그 논란에 KBS가 돌파구로 내놓았던 것이 <이승만 다큐 자문위원단>이었다. 자문단은 김규 전 서강대 교수(한국방송학회 초대회장),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송해룡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차기 한국방송학회장), 강대영 전 한국방송 부사장(다큐멘터리 10부작 한국전쟁 제작), 김옥영(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등으로 구성됐다.

해당 자문위원단은 KBS 이승만 다큐에 대해 “A+점수를 줄 수 있다”, “이승만에 대한 기존 프로그램 중 가장 균형잡힌 시각의 잘된 평전”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전달했다. 이후 KBS에선 이승만 다큐가 그대로 방영됐다. ‘친일파’로 꼽히는 백선엽 다큐 방영까지 이어졌다. 역사 편향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해, 이승만 다큐 자문단에 포함됐던 인사에게 방통위가 특별상을 준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앞섰다. 기사에 “(두 인사가)한국방송 발전에 기여한 것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수식을 붙이긴 했다. 진심이었다.

기사가 나가고, 1일 저녁 김옥영 작가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2011년 당시 이승만다큐 자문위원회 한번의 회의에 참석한 바는 있습니다만, 말씀하신바(기사)와 같이 이승만 다큐 방영에 힘을 쏟은 적은 없습니다. 또, ‘A+점수를 줄 수 있다’, ‘이승만에 대한 기존 프로그램 중 가장 균형 잡힌 시각의 평전’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린 적도 없습니다. 당시 회의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기명 보도해달라고 했던 저의 요청이 사후적으로 묵살되었고 자문위원회 이름으로 위 인용문장과 같은 ‘긍정 평가’가 보도되었으나 저 자신은 위원회의 그런 평가에 동의한 바 없습니다”

“당시 담당 국장은 내부에서 제작진이 힘이 없으니, 외부에서 들어와 버틸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며 간곡히 참여를 요청했고, 진보학자들도 참여할 것이라고 하여 저도 들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회의 당일 가보니 진보학자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섭외에 응하지 않아 하는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날 회의 내용을 보도할 때 개별 발언을 기명으로 처리해달라고 했고 국장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윗선에서 기명 발언은 참석자들에게 부담이 되니 일괄 보도하라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 한 사람의 소수 의견은 그렇게 다수의 ‘긍정’에 묻혀버렸고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제가 그 사정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그 사실이 몇몇 매체를 통해 기사화되기도 했었습니다”

김옥영 작가는 KBS <이승만 다큐 자문위원단>에 들어가면서부터 ‘KBS의 방패막이용’으로 이름이 이용될 우려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작가는 내부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참여를 했고 다큐 기획을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KBS 측에 자문단 회의 내용을 외부로 설명할 때 자신의 발언을 기명으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KBS는 그저 <이승만 다큐 자문위원단>의 의견으로 “A+”, “균형감”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고, KBS의 발표를 그대로 따르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김 작가의 우려가 사실로 이어진 셈이다. 이에 김 작가는 개인 페이스북 등을 통해 호소했지만 이에 주목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김옥영 작가의 억울했던 호소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작성한 <방통위, 편향 논란 ‘이승만 다큐’ 강행했던 이에게 특별상>으로 김 작가는 또 다시 언론 피해자가 되었고, 기자는 가해자가 되었다.

김옥영 작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기사 한 줄이 이렇게 깊고 긴 영향을 남기는구나 새삼스럽게 느꼈다”고 토로했다. 변명하지 않겠다. ‘김옥영 작가’에게 사실확인만 해봤더라면 김 작가가 재차 피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었다. 이 기자수첩은 김옥영 작가에게 드리는 사과문(최소한의 언론피해 구제를 위한 방안)인 동시에 매체비평지 기자로서 각오를 다시 다지는 기자의 반성문인 셈이다. ‘기사 한 줄’이 한 개인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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