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회가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를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 주시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도중 사퇴하면서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심화되고, 혼란이 지속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어 고심 끝에 지난주 정홍원 총리의 유임을 결정했다”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으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이와 같이 밝혔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두 명의 총리 후보자 낙마와 정홍원 총리 유임 등 이른바 ‘인사 파동’ 정국에 대한 최초의 해명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해명은 자가당착이다. 자신의 ‘수첩 인선’이 아니라 인사청문회 제도가 문제라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 1일자 한겨레 1면 기사
심지어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이던 시절 참여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틀을 잡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참여정부 시절 “모든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며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제안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시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인사권 제약이라 하여 반대했으나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 해줘라, 우리도 좀 불편하겠지만 혹시라도 저거들 정권 잡으면 난리 날기다, 사람 빌려돌라고(달라고) 할지도 모른데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정홍원 총리의 유임 자체도 과거의 사례로 생각해 볼 때 올바른 절차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YTN 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한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태도가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 1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박범계 의원은 “2006년도에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있었다. 그 당시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사표를 내고 노무현 대통령이 후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을 하고 나서 국회에다가 임명 동의서를 제출하니까 그 당시 한나라당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무슨 얘기냐면 헌법에 헌법재판관 중에 헌재소장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전효숙 재판관은 이미 사표를 냈고 그 수리 의사를 대통령이 밝힌 거기 때문에 민간인이다, 따라서 헌법 위배다, 그래서 두 번 청문회를 해야 한다, 헌법재판관 지명을 통한 청문회와 별도로 헌재소장 지명을 통한 청문회를 두 번 해야 된다고 해서 결국은 넉 달 동안 청문 절차도 진행을 안 해 줘서 지명 철회를 하게끔 만든 사태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박범계 의원은 “그 당시에는 수리가 됐기 때문에 민간인 자격이다, 그래서 국회 임명 동의를 제출한 것이 이미 헌법재판관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해 놓고 이번에 정홍원 총리 문제는 사표 수리가 아니다, 따라서 유임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제가 아까 말씀드린 법리상으로도 맞지 않고 이중 잣대라는 측면에서 적어도 저는 상당히 개탄할 만한 일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며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이중잣대를 성토했다.
‘조중동’, 사설에서 한 목소리로 대통령을 성토하다
이런 논점들을 전부 챙기지는 않더라도, 보수언론들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의 '총리 留任' 해명, 이 정도로 충분하겠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날 설명이 대통령의 잇단 인사 실패로 답답해진 국민의 꽉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는지 의문스럽다”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인사청문회 제도에도 문제는 있지만, 박 대통령의 설명은 “이 나라엔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고 대통령이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제 새 인사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대통령이 먼저 달라져야 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핵심 측근들의 보좌 방식이 변해야 한다. 국민이 이번 파동을 겪으면서 대통령으로부터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에 관한 대통령의 생각일 것이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이에 대한 각오와 성찰이 보이지 않아 국민이 더 답답해할 수밖에 없다”라고 마무리되었다. 보수언론 역시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없다고 본다는 의미다.
▲ 1일자 조선일보 사설
<중앙일보> 역시 <기자회견을 두려워하는 대통령>란 제목의 사설로 대통령의 통치 태도를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이번뿐 아니라 대부분 대통령은 수석회의를 빌려 해명하곤 하는데 이는 적절하지 못하다. 수석회의는 국민 상대 설명회가 아니라 청와대 내부회의다. 문창극 사퇴나 정홍원 유임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문들과 연결돼 있다. 지지율 하락에서 보듯 국정운영과도 밀접히 연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이 궁금해한다”라며 대통령의 발언의 형식을 비판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그렇다면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짧게 말할 게 아니라 정면으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어느덧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1월 연두회견 이래 기자회견은 한번도 없다. 그만큼 그가 실정(失政)에 대한 언론의 추궁을 두려워하고 국정의 주요 쟁점을 설명할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라며 비판했다. 이는 보수언론들 역시 단지 인사만이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나선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동아일보> 역시 <박 대통령의 인사실패 해명에 ‘내 탓’이 없다>란 제목의 사설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국민이 실망한 인사 실패에 대해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고, 국회에 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달라는 당부만 했다”라며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비판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월드컵 축구팀이 연패하고 나서 심판 탓, 룰 탓만 한다면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꼬집으면서, “리얼미터가 어제 공개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부정평가 비율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50%대에 올라선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용했던 ‘서강학파’의 거두 서강대 김병주 명예교수가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린 대통령 비판 글을 소개하고 김병주 명예교수에게 추가 취재를 들어가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 1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소위 ‘조중동’이 대통령의 발언 한 개를 이토록 집중 성토하는 일은 드물다. 물론 국민의 정부 시절이라면 심심치 않게 있던 일이고 참여정부 시절이라면 일상다반사였지만 보수정부 출범 이후 이런 일은 흔치 않았다.
대통령 바뀌지 않으면, 정국 운영 어려울 수 있다
<동아일보> 사설의 내용을 곱씹어 보면 보수언론이 최근의 박근혜 정부 지지율 하락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지지율 하락이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고착화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대통령님, 더 이상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칼럼이다. 김대중 주필은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왔다. <중앙일보> 기자들이 “문창극 선배는 <중앙일보>의 김대중”이라 말할 정도였지만, 사실 대중적 인지도에서 문창극은 김대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김대중 주필은 개혁적 정치인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물어뜯고 극우 정치인들을 향해선 고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김대중 주필의 상황판단을 들어보자.
▲ 1일자 조선일보 30면 김대중 주필 칼럼
“(...) 이처럼 흔들리지 않던 ‘박근혜 지지’에 이제 서서히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 그동안 부풀려진 보수층의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가 점차 현실감을 되찾고 냉정한 바탕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시사점이다.

60%대를 넘나들었던 지지율은 박 대통령을 오판(誤判)하게 하거나 착각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에게는 철통같은 지지 세력이 있다.’, ‘비판 세력이 나를 공박하지만 여론조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 박 대통령이 이런 자신을 갖게 된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박 대통령을 자만과 불통(不通)의 길로 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을 보좌화는 참모진의 무능과 내시성(內侍性)도 크게 작용해왔다는 비판이 드세다.

(...) 그동안 많은 보수층 인사와 여권 정치인이 박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인사, 정치권에 대한 독선적 행보,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심한 권위주의적 행정 등에 비판적 시선을 보내며 개선과 변화를 기대해 왔지만 박 대통령은 지금껏 들은 척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혼자’를 즐기다가 그야말로 ‘혼자’가 되기 직전이다.

(...) 박 정권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아니, 험난하다. 경제는 올스톱이고, 관료 체제는 서서히 반발로 돌아서고 있다. 여당은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고, 야당은 마포대교에서 완강히 버티고 서 있다. 좌파 세력은 때 만난 듯 기세등등하고, 우파 세력도 이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집권층이 틈을 보이자 노조는 다시 지난주부터 깃발을 올리고 있다.

(...) 지지세력은 이제 박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지도 변화를 ‘대통령께서 더 이상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경고로 읽고 이제까지 해왔던 정치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수 있다.“
▲ 1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보수세력도 이제 명백하게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두 명의 총리후보자 낙마 이후 지지율 하락이 눈에 보이고 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안이하게 처신하는 상황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 보수언론의 칼럼니스트들은 보수정권을 지지하는 중장년층 유권자들의 감정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다.
그들은 여의도연구소 조사에서 새누리당이 통합진보당보다 인기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현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청년층으로부터 고립되고 중장년층에게는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즉 계속해서 기자회견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거나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며, '수첩 인사'를 고집한다면 정상적인 정국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고, 그것은 곧 '보수세력의 불통, 무능론'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음을 그들은 직감하고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이 위기감을 수신할 수 있느냐, 수신했을 때 얼마나 자기 자신을 바꾸어나갈 수 있느냐에 따라 정국의 향방이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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