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공세가 점입가경이다. 26일 교육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실명으로 올렸던 교사 200여명을 모두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시국선언과 조퇴투쟁을 둘러싼 갈등
▲ 27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교사들은 지난달 청와대 게시판에 두 차례에 걸쳐서 각 43명, 80명이 실명으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고 지난 12일엔 161명이 비슷한 내용의 신문 광고를 게재했다. 청와대 게시판 선언 참여자 중 상당수가 신문 광고에 동참했지만 교육부는 아직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국선언 참여 교사 중 상당수는 전교조 출신이라고 한다.
또 교육부는 전교조가 법외노조 지정에 항의하는 취지로 27일 오후 3시 서울역에서 여는 ‘조퇴 집회’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교육부는 26일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각급 학교에서 교원들이 집회 참가를 위해 조퇴·연가 신청을 할 경우 불허하라”면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원 복무관리에 철저를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교육부는 조퇴투쟁 참여 교사들에게는 법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검찰과 경찰은 전교조의 집단행동이 국가공무원법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시국선언 징계와 조퇴투쟁과 관련한 정부와 전교조의 갈등은 27일자 언론에서도 다뤄졌다. <조선일보>는 12면과 14면 기사에서,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다뤘다. 오늘자에 실린 것은 아니지만 <중앙일보>는 25일 <조퇴투쟁한다는 전교조, 법 위에 있나>란 제목의 사설로 전교조를 비판한 바 있다.
▲ 27일자 경향신문 10면 기사
진보언론들은 전교조의 입장을 일정 부분 대변했다. 27일자 <경향신문>은 10면의 두 기사에서 <교육부, 선제 강공…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 전원 고발>과 <수업 조정한 조퇴투쟁 / 학습권 침해 해당하나>란 제목으로 전교조의 입장을 어느 정도 대변했다. 특히 하단의 <수업 조정한 조퇴투쟁 / 학습권 침해 해당하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조퇴투쟁에 관해 “학교별 참여인원 조정, 오전·오후 교환수업 등을 통해 수업결손은 없다. 학교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면 알 것”, “조퇴투쟁은 정부의 부당한 조치를 비판하기 위한 최선의 준법행위”라는 전교조의 입장을 소개했다.
<경향신문> 보도는 서울역 조퇴투쟁엔 “많아야 1500명 정도 참석”하고 “1만3000여개 학교에서 10개 학교당 1명꼴로 참석하는 셈”이라며, 공문을 보내 교장과 교사의 마찰을 일으키는 교육부가 학교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전교조의 입장을 소개했다.
한겨레가 만들어낸 어떤 논란
<한겨레>의 경우 최근 지면에서 전교조의 투쟁 기조에 대한 여러 입장을 반영했다. 25일자 31면에 실린 <한겨레> 김의겸 논설위원인 <전교조 변해야 산다>가 화제가 되어 26일자 33면엔 해직교사인 송원재 전교조 편집실장의 <‘말리는 시누이’>란 반박 칼럼이 실렸으며 27일자 29면에는 김의겸 논설위원 칼럼에 대한 시민들의 상반된 반응이 보도되었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전교조 변해야 산다>의 주요 부분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25일자 한겨레 31면 김의겸 논설위원의 칼럼
“(...) 세월호 아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진보 교육감 때문이다. 그 소중한 싹이 법외노조를 막아보겠다는 전교조의 총력투쟁 열기에 자칫 말라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 싸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 태세다. 처음은 해고자 9명이 문제였지만, 이들을 구하려다 노조 전임 72명이 잘려나갈 처지다. 72명을 구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 애초 해직자 9명을 끌어안고 가는 게 현명한 전략이었나 하는 의문마저 든다.

(...) 4년은 결코 길지 않다. 교육감과 전교조가 한 몸이 돼 경쟁교육과 특권교육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내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다. 관성의 궤도를 벗어나야 한다. 진보 교육감들도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 거꾸로 작은 일에 지나치게 힘을 쓰다 보면 큰 걸 놓친다. 전교조는 나이스인지 네이스인지에 매달리다 정작 중요한 교육개혁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경험이 있다.

지금 전교조의 경쟁 상대는 박근혜 정부가 아니다. 남은 임기 3년 반짜리를 상대로 아옹다옹하기에는 사반세기의 역사가 아깝다. 탄압을 하든 구박을 하든 교실의 학생만 보고 묵묵히 나가기 바란다. 최소한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우리의 교육 틀을 다시 짜야 한다. (...)“
이에 대한 송원재 전교조 편집실장의 반론에 해당하는 글인 <‘말리는 시누이’>란 내용의 글을 추려보면 이렇다.
▲ 26일자 한겨레 33면 '왜냐면'에 실린 송원재 전교조 편집실장의 칼럼
“(...) 나는 전교조 해직교사다. 정부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를 할 때 이유로 삼은 9명의 해직교사 중 하나다. 전두환 정부 때 억울하게 징계받은 학생을 두둔하다 처음 해직이 됐고, ‘87년 민주항쟁’으로 복직했지만 전교조 출범 뒤 탈퇴각서를 내지 않아 다시 ‘거리의 교사’가 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08년 처음 교육감직선제가 도입돼 ‘미친 교육’을 바꿔보자고 시민사회와 함께 진보교육감 후보를 추대하고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으며 선거자금을 모금했다가 세번째로 교단에서 쫓겨났다.

(...) 칼럼은 ‘애초 해직자 9명을 끌어안고 가는 게 현명한 전략이었나 의문’이 든다고 했지만, 그것을 선택한 것은 총투표에 참여한 6만 조합원의 70%였다. 그 선택이 현명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교조는 그렇게 길을 선택하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 조합원 총투표와 대의원대회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가시밭길을 가려는데 미련하다고 윽박지르며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치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전교조의 앞길은 누가 대신 갈 수 없다. 해직교사들은 자신의 생목숨과 맞바꾼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란다. 전교조도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위해 협력적 동반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생각이다.“
전교조가 변해야 하는 건 맞겠으나…
진보매체의 독자들 사이에서도 이 논란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27일자 <한겨레> 지면의 <[댓글 중계] ‘전교조 변해야’에 “정부 트집잡기 모르나” VS “할말하는 용기 응원”>에 따르면, 김의겸 논설위원의 칼럼을 비판하는 이들은 “한겨레의 동지애는 어디 가고 금전적인 관계로만 전교조를 이해하려 하는가”, “내가 그 아홉 명 중 하나였다면, 그래서 동지들로부터 버림받았다면 어땠을까”, “해고자 문제는 노조 말살을 위한 정부의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김 위원은 모르는 것이냐”라고 반응했다.
반면 김 논설위원의 칼럼을 옹호한 이들은 “해고자분들이야 노조 상근 형태로든 함께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기보다 관습적인 투쟁 전술을 택해온 전교조도 변해야 한다”,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 내내 전교조 지키기 싸움 하다 보내겠다”, “강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겨레라고 전교조에 우호적인 말만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바꿀 부분은 바꿔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응원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전교조 변해야 산다>라는 김의겸 논설위원의 칼럼 제목의 당위에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매주 실시하는 ‘한국갤럽데일리오피니언’ 6월 4주차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역·연령·성·정치성향을 고려한 1000여명 표본의 RDD 여론조사에서 평소 전교조에 대한 느낌은 '좋지 않다'가 48%로 '좋다'라고 응답한 19%와 의견유보 34%보다 훨씬 컸다. 또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대해서도 '적절하다'가 39%로 '적절하지 못하다'라고 응답한 30%와 의견유보 31%에 비해 다수였다.
이들은 ‘진보 교육감 시대’를 열어젖힌 바로 그 유권자들이다. 같은 조사에서 이 표본은 다수의 진보 성향 교육감 당선에 대해 '잘된 일'이라 답변한 이들이 45%, '잘못된 일'이라 응답한 이들이 23%, 의견유보가 32%의 분포를 보였다. 시·도 교육감 선출방식에 대해서도 '선거로 선출해야' 한다는 이들이 59%로 '다른 방식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31%나 의견유보한 9%를 압도했다.
전교조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면, 이 표본 중 초·중·고 자녀를 둔 200여명은 평소 전교조에 대한 느낌에 ‘좋다’라고 응답한 층이 33%로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는 것이다(‘좋지 않다’는 38%). 이들은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대해선 42%가 '적절하지 못하다'로 응답하여 ‘적절하다’라고 응답한 37%에 비해 다수였다.
그러나 김의겸 논설위원의 주문은 무언가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교조는 스스로 박근혜 정부를 견딜 수 없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선거의 진보교육감 선전에 크게 고무되어서 투쟁하는 것도 아니다. 해직자 9명의 조합원 지위를 유지하는 결정은 선거 전에 총투표를 통해 결정된 것이다. 당시엔 오히려 이 사안을 굳이 총투표에 부치는 집행부가 너무 조심스러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현 전교조 집행부의 대응은 오히려 최대한 절차를 밟는 수비적인 것에 가깝다.
또 박근혜 정부 시대 전교조가 향후 한동안 법외노조의 지위를 감수해야 한단 건 주어진 현실이겠으나, 이 정도 사안에 노동조합이 항의 한 번 하지 않고 물러선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교조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어차피 제한되어 있는데, 그 제한된 수준의 항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태도다.
▲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전교조 대국민 선전 퍼포먼스에서 참석자들이 '참교육 25년 전교조를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홍보물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선출 권력의 편리만 걱정하는 한겨레적 관성
김의겸 논설위원은 “지금 전교조의 경쟁 상대는 박근혜 정부가 아니다. 남은 임기 3년 반짜리를 상대로 아옹다옹하기에는 사반세기의 역사가 아깝다. 탄압을 하든 구박을 하든 교실의 학생만 보고 묵묵히 나가기 바란다”라고 주문했다. 그의 칼럼에 동의한 누군가는 이에 대해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 내내 전교조 지키기 싸움 하다 보내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결사단체의 존속을 달가워하지 않는 시대에 대중조직의 첫 번째 목적은 ‘지키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전교조가 지금 최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법외노조가 되더라도 조합원이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게 할 방법이 무엇이냐다. 조합원의 권익이든, 교육개혁이든, 진보교육감 지원이든 그 조직력이 전제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전교조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간 합법노조의 지위에 있었기에 애써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영역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것일 게다. 그 영역들을 살피고 그 부분을 결사의 범위 안에 끌어들이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견해는 철저하게 학교현장의 시선이 아닌 선출된 진보교육감의 정치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전교조가 진보교육감에게 방해가 될까, 짐이 될까 전전긍긍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한겨레>가 노동조합 등 대중조직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돌이켜보게 된다.
김 위원의 태도는 대중조직이 선출된 진보권력에 짐이 될까봐 전전긍긍했던 <한겨레> 내 보수파의 태도를 반영하는 듯하다. “나이스인지 네이스인지에 매달리다 정작 중요한 교육개혁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경험”이라는 다소 경악스러운 시선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는 학생인권 문제이기도 했지만, 교사들에겐 노동조건 문제이기도 했다. 이 시스템 전후를 겪은 교사들은 시스템 시행 이후 업무량이 폭증했다고 증언한다. 또 우리는 이 시스템이 고위공무원들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의혹을 불법적으로 사찰하는데 이용되었음을 이미 경험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물론 현재의 진보교육감들은 대체로 과거 민주당의 교육정책 노선보다 훨씬 진보적인 노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진보교육감의 길과 전교조의 길이 온전히 포개지지는 않는다. 진보교육감이 가진 권한과 권력자원의 한계 때문에 전교조의 입장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면, 전교조 역시 마찬가지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등으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 법외노조판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대중조직 바탕 위에 진정한 권력교체 가능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당장 여론에 도움이 안 될 수 있어도, 전교조와 같은 대중조직이 약화된 교육현장은 진보교육감에게도 더 험난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노동조합이 충분히 결사되지 않아서 진보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것인데, 그 상황을 여론으로 돌파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약화를 감수하라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보수정부는 이쪽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매우 정확하게 아는데, 정작 <한겨레>는 그 부분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한겨레>의 관성이 이렇다면 교육문제를 넘어선 사회문제에서도 잘못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과연 전교조는 진보교육감의 승리에 도취하여 투쟁노선을 내세우는 것인가. 혹시 승리에 도취된 것은 전교조가 아니라 김의겸 논설위원이 아닐까. 기층현장에선 바뀐 것이 없고 나날이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데도, 선거로 인한 상층부의 권력교체에 열광하고 그들을 위해 다른 걸 희생해야 한다는 그 태도를 볼 때 말이다. 김의겸 논설위원과 같은 태도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쇠퇴를 뒷받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교육현장의 권력교체는 진보교육감의 승리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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