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가 사퇴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인 25일 주요 일간지는 모두 해당 사안을 상세하게 다뤘다. 특히 <중앙일보>의 경우 다른 보수언론에 비해서도 독보적이었다. 이 날이 6.25 전쟁 64주년이란 점도 무색하게 할 만큼, ‘문창극의, 문창극에 의한, 문창극을 위한’ 지면 편집으로 보일 정도였다.

중앙일보의 ‘창극 무쌍’, KBS를 겨냥하나
▲ 25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25일 <중앙일보>는 1면 탑 기사 제목을 <문창극 사퇴 … 민주주의 숙제 던지다>라고 크게 가져갔다. 문창극의 낙마가 <중앙일보>에 던진 낙담을 엄한 민주주의에 숙제로 떠넘겼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2면 기사는 탑에 <“국민 눈·귀 속인 중대 범죄…KBS는 개조 대상”>으로 가져가는 등 지면 전체를 KBS 비판에 할애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비판의 중점을 ‘관피아’로 가져가 박근혜 정부의 ‘국가 대개조’ 담론을 만들어낸 <중앙일보> 다웠다. 이젠 KBS를 ‘개조’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중앙일보>엔 과연 ‘개조’의 필요성이 없는지 묻고 싶은 지경이다.
<중앙일보>는 이후로도 무려 3면에서 6면까지의 기사에서 ‘문창극 사퇴’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성토하는데 치중했다. 3면 기사에선 <보수 후보 못 지킨 보수 정권 … 국정 운영 부담>이란 제목으로 문창극 총리후보의 낙마가 박근혜 정부로부터 보수층 유권자가 이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 지적했다. ‘보수 후보 못 지킨 보수 정권’을 말하면서도 사실상 사퇴를 유도한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은 크게 비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창극 사퇴 기자회견’과의 교감까지 느껴졌다.
이어서 4면 기사에서는 ‘새누리당의 자성’을 크게 보도했고, 5면은 지면의 반 이상을 할애하여 <지난 15일간, 정치에 이성은 없었다>란 제목으로 문창극 총리후보 지명으로부터 낙마까지의 타임테이블을 구성했다. 4면 기사 하단에 <“대통령, 청문요청서 안 보내놓고 청문회 좌절 왜 국회 탓을 하나”>란 제목으로 야당의 항변을 다루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문창극 사퇴는 ‘15일간의 비이성적인 광기’에 의한 것이었다는 시선을 보여주는 편집이었다.
▲ 25일자 중앙일보 2면 기사
<중앙일보>의 ‘창극 무쌍’의 정점은 <원칙을 지켜내지 못한 한국 사회>란 제목의 사설이었다. 이 사설은 “문창극 사건은 한국 사회의 여러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사건은 나라의 미래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라며 비장한 포즈를 취한다. 총리후보의 낙마가 그 정도의 일이란 말인가. 중앙일보에게 ‘문창극 낙마’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이라도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중앙일보> 사설은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우선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라고 했다. 이어서 “또 다른 문제는 논란을 처리하는 방식이 미숙하고 후진적이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예의 ‘왜곡보도’론과 ‘청문회는 가야 한다’의 반복이다. <중앙일보>는 특히 두 번째 문제에 대해 “후보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하면 국회 청문회에서 검증하고 국회가 표결하라는 게 한국 사회가 정해 놓은 절차다. 헌법과 국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총리후보로 지명받으면 무슨 논란이 있든 청문회로 가야만 한다. 당장 안대희 후보도 그리 되지 않았지만 <중앙일보>는 이처럼 강력하게 지적한 바는 없다. 또 이런 식이라면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는 것도,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대통령과 총리후보의 처신에 비해서도 일부 아쉬움은 표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대체 왜 한국 사회가 원칙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문창극 후보의 사퇴에 청와대의 의중이 있다면, 차라리 보수인사들의 지적처럼 “대통령이 원칙을 지켜내지 못했다”고 비판할 일이다. <중앙일보>의 문창극 총리후보에 대한 과도한 변호가 보수언론들의 KBS 비판의 서곡이 되지나 않을지 우려스럽다.
비교적 차분했던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박근혜 비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경우 일정 부분 <중앙일보>와 비슷한 부분을 보여주면서도 수위조절을 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1면 탑 기사 제목을 <여론재판에 문도 못 연 인사청문회>로 가져가면서 여론재판에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 25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그렇다고 그의 사퇴가 민주주의에 문제가 된다는 식의 ‘중앙일보적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3면의 기사들에선 청와대가 위기에 몰렸다는 시선, 김기춘 책임론에 대한 시선, 여야반응과 공방 등을 다뤘다. 4면 기사에서는 문창극 사퇴 기자회견의 내용을 소개하였지만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았고, 문 후보 사퇴가 ‘민주주의 위기’라는 보수진영의 반발은 동정으로 다뤘다.
무엇보다 <조선일보>는 사설 <문창극 파동이 남긴 것>에서 ‘문창극 총리 인선’이 기본적으로는 잘못된 인사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문 후보자가 지금 이 시기에 걸맞은 총리 후보였는지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가 개조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반발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 지지가 흐트러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총리는 무엇보다 국민과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국민 대다수가 잘 모르는 깜짝 인선을 할 여건이 아니었다는 얘기다”라며 문창극 후보자의 인선을 비판했다.
다만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이와는 별개로 이번에 문 후보자의 과거 교회 강연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도 그냥 넘길 순 없다. (...) 언론사엔 줄이고 압축해 보도할 수 있는 편집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비틀고 왜곡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 정파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마치 적(敵)을 공격하듯 함부로 매도하고 낙인(烙印)찍은 다음에 제 귀는 닫아버리는 풍토를 그대로 두고는 국가 개조는 공염불일 뿐이다”라며 KBS 보도와 야당 의원들의 태도 역시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1면 탑 기사 제목을 <낙마, 낙마… 총리 못 뽑는 나라>로 가져갔다. ‘민주주의 숙제’를 말한 <중앙일보>는 물론 ‘여론재판’을 문제삼은 <조선일보>와도 달랐다. 국정공백을 우려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지적하는 모습이었다. 이어지는 2, 3, 4면 기사에서도 문창극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의 내용을 소개하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다뤘고, 새 총리 인선에 대한 고민(3면)과 청와대의 불만과 김기춘 유임에 대한 전망을 다뤘다(4면),
▲ 25일자 동아일보 2면 기사
특히 <동아일보>는 <세번째 총리 낙마, 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죄송하지도 않은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집중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의 초입에서 “이로써 박 대통령은 원점에서 다시 후임 총리 후보자를 물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홍원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이후 총리 후보자가 두 번씩이나 연이어 물러났으니 ‘인사 참사’가 아닐 수 없다”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했다.
또 <동아일보>는 “문 전 후보자는 자신의 역사의식과 ‘책임 총리론’에 대해 국민 앞에 좀 더 성실하고 소상하게 설명해야 했지만 충분치 못했다. 우왕좌왕하는 대응 태도에 총리 자질에 대한 의문이 커지기도 했다”라면서 문창극 총리후보의 문제도 비판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역시 “정치권은 문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받을 기회를 차단하려고 들었다 (...) 여당 일각에서도 동조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흔들었다 (...) 우리 사회의 척박한 토론 문화와 중우(衆愚)정치의 위험성도 드러났다”라면서 청문회까지 가는 것이 절차적으로 합당한 일이었다는 <중앙일보>의 견해에 일부 동조하기도 했다.
중도·진보언론들은 ‘인사 참사’ 비판
그 외 중도성향과 진보성향의 신문들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를 중점적으로 비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을 묻는 것에 주력했다. 중도성향 <한국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우물안 인선’은 안 된다>로 가져갔다. 진보성향의 두 언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1면 기사 제목을 <잇단 ‘총리 낙마’…책임지는 사람이 없다>와 <또 ‘인사 참사’…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로 가져갔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한국일보>에 비해 ‘인사 참사’라는 현상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한층 강도높게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설에서도 이와 같은 성향은 드러났다. <한겨레>는 <이대로는 총리 지명 또 실패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번번이 국무총리 지명에 실패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문제는 아무리 소를 잃어도 박 대통령은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인사 책임자들을 문책하라는 요구가 새누리당에서조차 분출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인사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 외양간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호소 역시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과 김 비서실장을 책임자로 분명하게 지목한 대목이다.
▲ 25일자 한겨레 1면 기사
<한겨레>는 이어서 “박 대통령은 이제부터 새 총리 후보자 물색에 들어갈 것이다. 그 기간도 지루하게 이어지겠지만 문제는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오만과 아집이 변하지 않는 한 인사 실패는 다람쥐 쳇바퀴 돌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더욱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박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라고 사설을 마무리지었다.
<경향신문> 역시 <연이은 ‘총리 인사 참사’ 박 대통령의 책임이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맡는다. 두 차례나 총리 지명자가 낙마한 부실 검증의 총괄적 책임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져야 마땅하다. (...) ‘인사 참사’의 최종 책임은 당연히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있다. (...) 정부를 개조하기에 앞서 박 대통령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라면서 두 사람의 책임을 강조했다.
▲ 25일자 경향신문 2면 기사
한편 <한국일보>는 <서두르지 말고 총리 후보군 폭넓게 검토하길>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일련의 인사실패에 대해 책임 소재를 가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라고 말하며 책임추궁의 문제를 다소 두루뭉술하게 지나갔다. <한국일보> 사설은 “이번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널리 인재를 구해 경륜과 도덕성은 물론 소통과 통합 마인드를 갖춘 총리후보자를 국민 앞에 내놓기 바란다”라면서 향후 인사의 개선을 주문하는데 좀더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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