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부 서울청사에서 10시에 시작된 기자회견은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발언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13분의 기자회견 중 ‘사퇴’라는 발언은 이 마지막 문장에서야 나왔다. 그전 13분 동안 문창극 총리지명자는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문창극 지명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부족한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줘 감사드린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총리실의 동료와 지원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도 표했다. 그러나 이어서 “40년 언론인 생활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한 일은 없는지 마음 아프게 반성해 보았다”라고 말했다. 언론보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창극 지명자의 지적은 구체적이었다. 그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히 몇 말씀을 드리겠다”면서 정치권과 언론을 비판했다. 문 지명자는 “저는 민주주의, 그것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라면서 “자유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자유나 인권은 천부적인 권리로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와 법치가 두 개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법치가 튼튼하지 않으면 여론정치로 전락한다”라고 비판했다. 문 지명자는 “법치의 모범을 보여아 할 곳은 국회”라면서 “국회가 신성한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신이 총리로 지명이 되었으면 법적 절차에 따라 청문회로 가는 것이 ‘법치’라는 독특한 해석이다. 청문회는 검증의 절차일 뿐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자신의 사퇴를 요구한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이 ‘법치’를 허물었다면서 인사청문회 요청서를 제출하지도 못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또 문창극 지명자는 “언론의 생명은 사실보도가 아닌 진실보도”라면서 “전후좌우 맥락을 훼손한 잣구 보도는 문자적 사실보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를 향한 역사관과 친일논란은 KBS의 왜곡보도의 산물이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어서 그는 “신앙의 자유는 기본권이다”라면서 “존경해마지 않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에 나온 깊은 신앙을 보고 청년시절 감동을 받았다. 내 신앙의 언어가 왜 공격받아야 하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면 되고 내가 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고 비판자들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 그는 언론보도에 나온 조부와 부친의 이름까지 공개하며 조부가 독립운동가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못 믿겠으면 검색해보시라”라고 까지 말했고, “보훈처가 다른 이들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 처우해주셨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보훈처에서 인정한 조부의 독립운동 이력을 토대로 친일파 논란에 대한 해명과 반박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국엔 박근혜 대통령을 배려한 ‘사퇴’의 수순이었다. 기자회견 초반 “저는 박근혜 대통령의 나라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에 동의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하고 화합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받은 후 이 나라는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께서 국정운영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던 문창극 지명자는 정치권과 언론을 강하게 성토하고 자신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강조한 후 다시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문창극 지명자는 “저를 이 자리에 부른 이도 그분이고,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도 그분이다”라면서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문 지명자는 모두가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만 본인만은 피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처럼 ‘사퇴’란 단어를 짧지 않은 기자회견의 최후의 한 문장에서야 발화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문 지명자는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생략한 채 회견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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