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공기관을 부러워한다. 노조위원장 하면 고급승용차가 따라 나오는 곳도 있다. 민주노조를 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나 민영화 정책에 반대해 파업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닌 한 공공기관은 그야말로 ‘신의 직장’이다. 한국에 공기업은 30곳(시장형 14, 준시장형 16) 있다. 여기에 준정부기관 87곳(기금관리형 17, 위탁집행형 70)과 기타공공기관 187곳을 더하면 한국의 공공기관은 총 304곳이다. 지난해 295개일 때 인력만 보더라도 약 25만4천여 명(비정규직 제외)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공공기관은 신의 직장이다. 정부가 확보한 공공기관 낙하산 자리는 무려 3천개 이상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서 295개 공공기관의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공공기관에는 기관장 295명을 포함 감사 285명, 비상임이사 2119명, 상임이사 385명, 당연직 이사 430명 등 총 3084명의 낙하산 착륙지가 있다. 이들이 정부 총지출 349조 원의 1.6배에 달하는 공공기관의 예산(574.7조 원, 2013년 기준)을 집행한다.

안전 침몰한 나라가 공공서비스를 줄인다?

세월호 참사로 공공안전망 문제가 드러난 상황이지만 공공기관은 그래서 여전히 적폐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공공기관이 우리 사회의 도도새가 되지 않기 위해 혁신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노광표 소장은 16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기관 개혁과 공공부문 노동권’ 토론회에서 “현 정부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변화 없이 공공부문 개혁을 적폐 해소 차원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봤다.

▲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 공공기관장 워크숍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비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대위는 무분별한 공공기관 자산 매각 등 '부채 감축계획 재검토', '낙하산 인사 중단', '노조와의 대화'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의 만성적자를 문제삼고 있다. 사실관계부터 짚자. 적자 상당부분은 정부 정책 실패로 생겼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 결과, 주요 9개 공기업의 금융부채 증가액의 37.2%는 정부정책 사업수행에서 나왔다. 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과 경인 아라뱃길이 대표적이다. 노광표 소장 분석에 따르면, 2012년 말 공공기관 총 부채는 493.4조 원으로 2008년에 비해 203.4조 원 늘었다. 정부가 ‘낭비성’ 토건사업을 안 했다면 100조 원을 아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광표 소장은 “현 정부의 지나친 공공기관 부채 문제에 대한 부각은 2008년 금융위기 상황과 공공요금 통제 등 경제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공공기관들의 자산매각 및 아웃소싱, 경쟁체제 도입, 민간경영기법 도입 등으로 귀결될 위험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공공기관의 자산을 매각하고 영역을 양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 금싸라기 영역을 민간에 넘기려고 승부수를 던졌다. “공공기관 복리 후생비 통제”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8대 방만경영 유형 사례’로 발표한 내용을 보자. 대학생 자녀에게 반기 150만 원을 지급하는 인천공항공사, 자사고와 특목고에 다니는 자녀 수업료를 전액지원하는 석유공사, 조합원과 직계가족, 배우자와 부모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본인 및 배우자 부모의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사망시 3일의 휴가를 주는 통일연구원과 한국소비자원, 쟁의기간 중 임금을 전액 지급하는 한국연구재단은 대표적 방만경영 기관이자 정상화 대상이다.

노광표 소장은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방만 경영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 조치의 파트너로 만들 수 있는 대화와 협상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역주행하고 있다. “당장의 부채 경감 및 비용 절감을 위한 단체협약 개정을 위해서도 노조의 동참을 이끌어 내야”하지만 여론으로 압박하겠다는 게 정부 정책방향이다. 이 대책을 추진하는 답은 하나, 구조조정 카드를 내밀고 겁박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박근혜식 노조 잡기다.

복지 축소 받아들여도 구조조정 불가피하다

노조가 복지 축소를 수용한다 해도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노광표 소장은 “공공기관들은 부채 감소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자산 매각에 나서고 있으나 일시에 공공기관들의 부동산 매물 등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과 자산 규모가 줄어든 조직에는 구조조정의 명분이 생긴다. 민영화하기도 쉽다. 박준형 공공운수연맹 공공기관사업팀장은 “(정부 대책은) 민영화, 기능조정, 구조조정 정책을 전개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올해 경영평가부터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정부는 책임경영 평가를 방만경영 관련 평가로 바꾸고, ‘불합리한 단협내용 정비’ 세부평가내용에 포함시켰다. 박준형 팀장은 “방만경영 해소 지침은 상당부분은 재무적 필요와 아무 관계가 없는 노동조합 탄압을 위한 내용”이라며 “노조의 경영·인사 참여, 노조 활동보장 같은 조항을 척결해야 할 ‘방만경영’으로 규정”했다고 전했다. 공기업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부 대책을 홍보하고, 이 보도실적을 평가하는 항목도 신설됐다.

철밥통, 신의 직장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이 같은 구조조정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규제철폐와 만능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구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은 “프랑스는 공기업 이사회에 정부대표, 민간대표, 종업원대표가 1:1:1의 비율로 참여하고 있다”며 ‘참여형 공공이사회’를 제안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거버넌스를 바꿔 공공부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정부의 논리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내포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이 반대논리만 내세우면서 오히려 이 담론을 강화시켜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동안 실리주의 노선을 걸었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이제는 ‘무능한 정부의 공공서비스 축소 vs. 산별체제 전환-공공서비스 강화’로 의제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공기관이 무너진 만큼 민영화 영역은 넓어진다. 철밥통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밥그릇 싸움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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