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블랙아웃은 없었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사업자에 월드컵 특별 재전송료를 받기 위해 지난달부터 방송협회 등을 동원해 압박했지만 넘어 온 건 IPTV사업자들뿐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는 지상파에 현재 가입자당 재전송료 280원씩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 비용은 절대 못준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정부가 나서서 지상파에 사익 추구를 말라고 경고했다. 결국 IPTV만 호구가 됐다.

▲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열린 ‘2014 SBS 브라질 월드컵 기자 간담회’ 모습. SBS 누리집에서 갈무리.

지난 12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업자, 그리고 관련 협회 등에 ‘브라질 월드컵 재송신 분쟁 관련 정부의 입장 송부’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미디어스>가 입수한 2쪽짜리 이 공문을 보면, 두 부처는 지상파 방송사에 채찍을 든 것으로 보인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월드컵 블랙아웃은 절대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전달하면서도 지상파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두 부처는 “지상파방송사업자는 공공재산인 전파를 이용하여 방송을 하고 있으며, 유료방송사업자 또한 가입자에게 일정한 수신료를 받고 있는 만큼 차질 없이 방송을 서비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실히 협상하고 조속히 합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되, 협상결과와 상관없이 방송 중단 등으로 인한 국민의 시청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 ”이라고 했다.

지상파에 대한 행정제재도 언급했다. 두 부처는 “방송사업자가 사익 추구에 집중하여 방송의 기본적인 책무인 공공성을 저버린다면 관계법령에 따른 법적인 행정제재를 포함한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각 방송사 입장보다는 시청자 입장을 고려해 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길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형식상 양측 모두에 하는 당부지만 지상파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정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데 월드컵이 블랙아웃 된다면 여론이 악화될 것이고, 이런 차원에서 공문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유료방송에 대한 압박은 아니다”며 “‘비용 협상 불가’라는 케이블 입장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재산인 전파, 국민의 시청권 침해, 공공성 등을 언급한 것은 지상파에 대한 압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월드컵이 시작됐다. 업계에서는 선 재전송-후 협상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월드컵 블랙아웃은 양측 모두에 해가 될 뿐더러 정부까지 개입한 상황에 월드컵 기간에 잡음을 내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다. 정부도 ‘무능력’ 비판을 피해야 하는 처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세에 몰린 것은 지상파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실제 지상파는 이 공문에 격분했다.

SBS홀딩스 플랫폼기획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합리적인 범위에서 협상을 하고, 결과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우리가 조정에 나서겠다가 아니라 무조건 싸우지 말라고 윽박을 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가 오히려 협상 중인 지상파를 압박해서 그 의견을 묵살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협회에서도 “정부 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반면 케이블SO는 정부 덕에 문제를 쉽게 풀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월드컵 블랙아웃은 지상파의 마지막 카드인데 정부 압박으로 이 무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케이블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보편적 시청권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해 온 지상파 실시간방송 재전송을 그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협상은 월드컵이 끝난 뒤에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지난 12일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상파, 유료방송사업자, 관련 협회 등에 보낸 공문 중 정부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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