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를 진행하고 있는 삼성이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 국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삼성은 최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에 “전향적인 자세로 교섭에 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13일 저녁 8시 첫 교섭을 시작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이 직접 참여한 비공개 교섭이 지난 2일 결렬된 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자 정치권을 호출한 것이다.

▲ (사진=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결렬된 '비공개 교섭', 정치권 통해 교섭 속도 높이려나

삼성은 노숙농성 시작 직후 비공개를 조건으로 노조과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이 교섭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지난 2일 최종 결렬됐다. 그러나 최근 노조에 교섭을 재개하자고 요청하고 노조는 13일 이 요청을 수용했다.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은 11일 을지로위에 중재를 요청하며 “전향적으로 교섭에 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중재를 요청한 목적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정치권을 통해 교섭 속도를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의 자회사다. 이 회사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노동조합을 결성, 삼성서비스와 삼성전자에 직접 교섭을 요구해왔다. 지난달 17일에는 경남 양산센터 분회장을 맡고 있는 AS기사 염호석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노조는 19일 무기한 파업을 선언하고 삼성 본관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노조 요구는 △삼성의 직접 사과 및 명예회복 △노조탄압 중단 및 노조인정 △위장폐업 철회 및 고용보장 △생활임금 보장 및 임단협 체결 등이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정치연합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원내대표-노동조합 간담회에 참석한 복수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은 을지로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 측에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안을 수용’하고 ‘삼성전자서비스 명의의 사과가 가능하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삼성전자-서비스-을지로위-노조’의 공동교섭은 안 되고, 고 염호석씨 장례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가족 측을 설득하라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 왼쪽부터 은수미 의원, 우원식 의원(을지로위원회 위원장), 박영선 원내대표, 남문우 염호석열사대책위원장, 박성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 (사진=미디어스)

새정치연합과 노조가 삼성에 휘둘리는 것일수도

박영선 원내대표가 간담회에 참석한 만큼 삼성의 의지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은 간담회에서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13일) 8시 교섭 테이블에 앉을 것을 요청했다. 박영선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 하는 노동기본권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의제”라며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글로벌 기업인만큼 이 문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한다면 한국 노사문제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격려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삼성의 이 같은 행보는 삼성 본관 앞 노동문제를 해결해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얻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 정치권에 ‘해결사’ 명분을 주고, 노조에 ‘출구’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삼성이 핵심쟁점인 ‘사용자 책임’ 문제를 피할 목적으로 비공개 요청을 고집하고, 정치권과 노조가 이를 수용했다는 점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한 한 기자는 “새정치연합과 노조가 삼성에 휘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사진=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한편 우원식 의원은 경찰의 시신, 유골 탈취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할 수 있다고 경찰을 압박했다. 지난달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씨(당시 양산센터 분회장)는 유서에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라고 썼으나 경찰은 지난달 18일 시신과 유골을 탈취했다. 그리고 이를 막아선 노동자 셋은 구속됐다.

이를 두고 우원식 의원은 “사적인 장례절차에 국가권력이 개입해 시신과 유골을 탈취한 일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는데 경찰이 지금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삼성을 지키기 위해서 한 것은 모르겠다”며 “국정감사를 통해서라도 명확하게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진상규명과 노조활동, 그리고 노동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쌓아올린 자본이 결국 무너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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