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자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발언이 KBS <뉴스9>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보수언론에선 사뭇 소홀하게 다뤄졌다. 문창극 총리후보는 자신이 장로로 있던 교회에서 2011년에서 2012년에 걸쳐 '일본 식민지배, 남북분단, 6.25전쟁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었으며 '제주도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었다며 편향된 역사의식의 일단을 내비췄다. 이어지는 언론보도에선 문창극 총리후보가 대학 강연과 신문 칼럼 등에서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사과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는 발언마저 나오고 있다.

문창극 후보의 발언은 소위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인식에서도 가장 일본 극우파에 가까운 편에 해당한다. 시련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라보는 기독교계의 어법이 합쳐져서 부조리를 부조리로 바라보지도 못하게 하는 편향된 인식을 낳았지만, ‘기독교계의 방언’으로 이해해 주기에도 너무 나갔다. 대체로 야권 성향 지지자들은 뉴라이트를 곧바로 일본 극우파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문창극 후보야말로 뉴라이트보다는 일본 극우파에 가까운 견해를 늘어놓았다. 다만 ‘과거 일본의 기술로 경제개발을 했지만 일본은 지금 사그러 들고 있지 않느냐’란 발언 정도가 일본인들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말이겠다.
KBS의 작심한 보도가 널리 회자된 가운데 12일 조간신문에서 보수언론들은 그의 발언을 축소보도하기 급급했다. 주로 “책임총리란 말을 모른다”는 발언을 비판대상으로 삼았고 역사인식 발언은 ‘논란’ 정도로 소개했다.
▲ 1면만 봐서는 문창극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 관련 발언 보도 여부를 알 수 없게 편집된 12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클릭시 확대)
12일 <조선일보> 1면 탑기사는 <경제부총리 최경환·경제수석 안종범 유력>이라면서 개각에 대한 전망을 다뤘다. 1면 우측에 <“책임총리, 처음 듣는 얘기” / 문창극 후보자 발언 논란>이라면서 문창극 후보의 ‘논란’을 책임총리에 대한 부정을 중심으로 다뤘다. 3면 기사에서야 <문후보자 과거 발언 논란 / “일제 식민·분단은 우리 민족에게 시련 주려는 하나님의 뜻 / 조선민족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 우리 민족 DNA로 남아”>란 제목으로 논란된 발언을 간략히 소개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 역시 1면 탑기사는 <개각 폭 커진다>로 가져갔고 1면 하단에 <문창극, “책임총리, 처음 들어보는 얘기”>란 제목으로 발언 논란을 책임총리 중심으로 다뤘다. 전반적으로 <조선일보>와 비슷한 편집이었다. 2면과 3면에서도 문창극 총리후보에 대한 의문과 부정적 시선을 소개하면서 역사인식 관련 발언은 다른 기사에 끼워넣어 배치했다.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소략한 <조선일보> 보도가 그나마 사실의 핵심 정도는 전달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 1면과 2면에 문창극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 관련 발언을 보도했으나 다른 사안과 뒤섞는 방식으로 사실상 축소 편집한 동아일보 12일자 지면. (클릭시 확대)
한편 문창극 총리후보가 오랫동안 일했던 ‘친정’인 <중앙일보>의 1면 편집은 종잡을 수 없었다. 개각과 총리후보 발언 논란이라도 다룬 다른 두 보수언론에 비해 정치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편집을 보였다. ‘일산 토네이도 용오름’과 기업과 정신 실종, 요격용 장거리 미사일 개발 소식이 1면에 등장했다.
▲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 관련 발언을 상대적으로 작게 배치한 12일자 조선일보 3면, 중앙일보 3면. (클릭시 확대)
사설로만 살피면 <“책임총리 처음 들어본다”는 총리 후보자, 무슨 뜻인가>란 제목의 사설을 쓴 <동아일보>가 보수언론 중에서 문창극 총리후보에게 가장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동아일보> 사설은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책임총리제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 부담스러워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새 총리 후보를 주목하는 국민들에겐 의아스러운 발언으로 들릴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동아일보> 사설은 “헌법에는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87조 1, 3항)이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국무위원 제청권만 해도 지금까지 제대로 행사한 총리가 거의 없었다. 낙마한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총리 지명 직후 ‘국가가 바른길, 정상적인 길을 가도록 소신을 갖고 대통령께 진언하겠다’고 밝힌 것도 책임총리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됐다. 문 후보자의 발언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중심제에서 총리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점을 미리 인정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 하나님의 뜻"발언을 분명하게 1면 배치한 12일자 한겨레,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국일보. (클릭시 확대)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같은 진보언론, 그리고 중도지인 <한국일보> 등은 문창극 과거 발언을 1면 탑에서 대대적으로 다뤘다. <한겨레> 1면 기사의 제목은 <문창극 “일제 식민지배·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경향신문> 1면 기사 제목은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 우리 민족 DNA>였으며 <한국일보> 1면 기사 제목은 <“식민지배·분단 하나님 뜻” / 문창극 ‘과거 발언’ 파문>이었다.
특히 <한겨레>는 3면 <“총리후보야말로 전형적인 식민사관 DNA 가져”>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해당 발언에 대한 역사학계와 신학계, 그리고 정치권의 다양한 반응을 다뤘다. <한겨레>는 새누리당의 내부 반응에 대해서도 취재했다. <한겨레>의 해당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문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당혹해하면서 문 후보자의 발언이 새누리당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라고 한다.
▲ 한겨레 12일자 3면.
<한겨레>는 계속되는 보도로,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이것은 본인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충분히 해명해야 할 문제’라며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당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 재선 의원은 ‘국민 정서에도 안 맞고 사실관계에도 어긋나는 강연이다’라며 ‘어떤 의도에서 강연을 한 건지 모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 그런 강연을 한 것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핵심 관계자는 ‘참담하다.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연락해본 다른 의원들도 다들 말도 못하고 한숨만 짓더라’며 ‘안대희 때보다 훨씬 큰 문제다. 대통령도 용납하기 힘든 문제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라며 새누리당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 사회에서 극우파일 뿐 아니라 뉴라이트에서도 극우파에 해당하는 성향을 드러낸 문창극 총리후보의 발언은 청문회에서 뭇매들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가 되면 보수언론조차도 보도를 축소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이 축소보도에 급급하는 것은 문창극 총리후보에 대한 판단을 아직 명확하게 내리지 못했고, 이 사안이 정부 여당에 미치는 파급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그간 보수언론들이 뉴라이트 성향의 발언들이 불거질 때 이를 정당화하는 역사인식을 드러내기 보다 축소하기 급급했다는 근원적인 문제도 있다. 문창극 총리후보는 차라리 솔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겨레> 등 진보언론의 역사인식이 편향적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한겨레>의 역사인식은 구성할 수 있는 반면 보수언론의 역사인식이 무엇인지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보수언론이 다만 ‘솔직한 막가파’와 ‘간보는 보신주의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라면, 한국 사회의 공론형성이 어찌 가능할지 암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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