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월드컵이 사흘 뒤 13일 시작한다. 많은 축구팬이 기다린 축제다. 그런데 정작 브라질에서는 월드컵을 환영하지 않는 시민들도 많다. 브라질 정부는 경기장 건설에 계획의 3배 이상 예산을 투입했고, 그만큼 복지·교육 예산은 줄었다. 경기장 주변에서는 쫓겨나는 빈민도 있다. 물가도 6%나 올랐다. 일부 시민들은 선수단 버스를 막아서고 입촌에 반대했다. 월드컵은 개발과 이익이 필요한 국가와 재벌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익숙한 풍경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가난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서울지역 달동네 200여 곳을 굴삭기로 밀었다.

▲ 브라질 현지에서는 월드컵을 반기지 않는 시민들도 많다. KBS는 9일 “서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브라질 월드컵은 개막부터 과제를 안고 시작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KBS 리포트에서 갈무리.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올라도 우리 월급은 10원도 오르지 않는다. 다만 함께 경기를 보면서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효용’이 있다. 하루 18시간 공부하는 고시생들도 월드컵 기간만큼은 한데 모여 중계를 본다. 축구팬 입장에서 32개 나라 축구와 스타플레이어를 구경할 기회는 흔치 않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한국에서 월드컵 효과는 하나 더 있다. “세월호 같은 국가를 응원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도 많은 시민들은 ‘애도’ 대신 ‘애국’할 게 분명하다. 정부와 언론은 이번에도 거리응원으로 분위기를 띄울 계획이다. 동아대 정희준 교수는 “증거인멸”이라고 했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는 9일 저녁 서울 연남동 도서출판 휴머니스트 강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와 월드컵, 그리고 한국사회> 집담회에서 “시작 16분 동안 응원을 않고 애도의 시간을 보내자는 얘기가 있는데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월드컵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애국주의, 국가주의 열풍으로) 바로 갈 것이고, 그러면 세월호 희생자들은 잊힐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드컵에도 애도하자면서 ‘슬픔의 알리바이’를 남길 게 아니라 이 참사를 버텨나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드컵 ‘애국’ 열풍과 세월호 ‘애도’ 상황이 부딪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용철 교수는 “월드컵은 세계의 축제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참사와 맞물린 축제라는 점에서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는 “환상으로서 국가는 월드컵 16강이지만 실제 국가는 세월호”라며 “이런 모순이 심할수록 메가 이벤트는 극성을 부리고, 미디어는 환상을 양산하고, 실제와 환상의 괴리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월드컵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명하게 응축된 대회”라고 말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한국 축구선수, 축구협회 등 체육계가 세월호 참사 애도 ‘주체’가 되기 어렵다면서도 “아픈 순간을 극복하는 잔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이대택 교수(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는 “한국에서 스포츠는 국가를 흔드는 ‘블랙홀’ 같은 것으로 한국은 스포츠를 수용하기 벅찬 사회”라면서 “이번 거리응원은 (국가와 스포츠의 관계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BS 강재훈 기자(스포츠국)는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집담회에서는 ‘붉은악마’와 다른 방식의 집단응원이 필요하고, 거리응원장에서 천만인 서명을 받자는 제안이 나왔다. 박지훈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노란 리본을 단 선수들이 세월호 퍼포먼스를 하고, 응원단이 침묵한다고 해서 세월호 사회의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2002년 한일월드컵 거리응원은 미디어와 자본이 예상하지 못한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 대중이 만들고 미디어가 따라오는 방식이었다”며 “이번에도 (월드컵으로 세월호 책임을 피하려는 정부, 언론이) 상상 못한 부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정환 교수는 “누가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할가 생각해보면 현재 국면에서 붉은악마 방식으로 응원하고, 미디어가 조명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애도의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애도의 당위성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력이 떨어지지 않게 월드컵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변호사는 “단순히 ‘잊지 말자’고 할 게 아니라 운동선수 등 오피니언 리더부터 ‘작위’(의식적으로 행한 적극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경우 평론가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새롭게 도시와 거리를 점유하고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월드컵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지훈 변호사는 “오히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월드컵의 본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세계적 이벤트는 인류애가 말살된 19~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 선의로 기획된 것”이라며 “그런데 오늘날엔 되레 인간성을 말살하는 도구가 됐다. 세계 최후의 독점기업을 FIFA와 IOC라고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월드컵에서 왜 삼성 이건희 회장과 내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모두 하나가 돼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이 같은 이벤트는 근본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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