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끝났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나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교육감 선거에 대해서는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날 <조선일보>가 1면에 ‘전교조의 승리’라는 제목을 뽑아 놓은 것 역시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반면, 야권의 성과에 대해서는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세월호 참사’ 등 야권의 입장에서는 정부 여당과 각을 세워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인천·경기에서의 패배로 중앙정치 이슈에 민감한 수도권을 사실상 ‘잃었다’는 점이 야권의 결정적 실책으로 지목된다.

결국 대다수 언론에서는 ‘무승부’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유리한 지형에 섰던 야권과 불리한 지형에 섰던 여당이 이룬 균형이므로 상대적으로 여당의 선전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개표 결과가 완전히 나오지 않았던 5일의 신문지면에서야 ‘무승부’였지만 그 표현이 ‘야권의 사실상 패배’로 변화되기 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 6·4 지방선거 투표일인 4일 오후 서울역을 찾은 시민이 TV를 통해 출구조사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이 선거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은 분명히 규명돼야 한다. 여야의 무승부가 된 광역지자체장 선거 결과는 뭐 어쨌건 간에 국민의 엄중한 회초리이며, 기초지자체 선거에서 여당이 더 성과를 낸 것을 보면 아직도 민심은 정부 여당을 바라보고 있고 할 수 있으며, 전국을 휩쓴 진보 교육감들의 당선은 보수가 힘을 합치지 못해 국민이 속은 결과라는 식의 선거 평가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무승부는 국민의 회초리고 진보 교육감은 전교조의 승리인가? 그런 게 어디 있나?

무승부라고 하던지 회초리라고 하던지, 광역지자체장 선거 결과가 국민의 준엄한 목소리라고 하려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탄생한 것 역시 변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선전이 전교조를 비롯한 좌파세력의 선거 공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려면 여야의 무승부 역시 야권의 무능·무기력과 새누리당의 비겁하면서도 철저히 계산적이었던 홍보 전략의 성공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평가해야 하는 점은 진보 교육감들의 당선이 단순한 선거 공학에서의 승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보수언론 등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후보들이 난립해 자기들끼리 물어뜯는 바람에 전교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되지 못했다는 데에서 문제를 찾는 모양이지만, 오히려 전교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됐던 지난 교육감 선거의 구도가 문제적인 것이었다는 게 사태의 진실이다.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진보진영 내에서 ‘전교조 후보로는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해 진보단일후보가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진보진영 내부에서까지 일종의 ‘자기검열’이 작동하고 있을 정도로 전교조는 코너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무슨 전교조의 승리를 말하는가?

오히려 지금까지 진보교육감들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가 겪었던 학교 현장의 부조리를 일소하기 위해 그간 시민사회단체들은 많은 제안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친환경무상급식 제도이다. 이외에도 혁신학교 등의 실험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의 파격적 조치 역시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과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기획되고 추진되어 왔다. 이러한 조치들은 학생들이 학교에 즐겁게 등교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더 이상 기성세대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비상식적인 학교의 모습은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을 대거 당선시킨 6·4 지방선거의 표심은 변화에 대한 절실한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소한 기성세대는 이런 수라와 같은 세상을 견뎌 내더라도 다음 세대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여야가 장군, 멍군을 주고받은 광역지자체 선거에서 드러난 표심은 이러한 변화의 욕구를 기성 정치권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냉소는 그간 여러 계기를 통해 드러나 왔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겠다며 정치의 전면에 나선 인사들도 해를 거듭해 나타났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이들에게 기회를 주더라도 기성 정치권은 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늘상 반복돼왔다. 그게 쌓이고 쌓인 결과가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 결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전교조의 승리라고 말할 수 없으며 여야 정치권에 대한 회초리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부당하다. 굳이 말하자면 이 결과는 국민들의 고통과 비명소리를 확인시켜주는 것에 가깝다. 국민들은 어떻게든 이 세상이 변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자칭 진보세력을 포함한 모든 정치세력이 이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고민하고 이를 차질없이 수행할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이 비참한 선거 결과를 어떻게 하면 자신에 유리하게 해석할 것인지에만 골몰하는 정치세력들은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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