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9시 취임 후 첫 전국단위 선거인 6.4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한 박근혜 대통령이 투표소 참관인 중 한 명으로부터 악수를 거부당했다. 이는 청와대 인근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있었던 일이고, 거부한 이는 노동당 측 참관인으로 나와 있던 김한울 노동당 종로·중구 당원협의회 사무국장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은 의외로 크게 이슈화가 되어 수백개의 기사를 양산했다. 막상 김한울 국장 본인은 SNS에 “박근혜 대통령이 투표를 마친 후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자가 어울리지 않게 대통령이랍시고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닌가. 순간, 셔터가 연달아 터졌지만 춘추관의 보도통제로 그 사진이 보도되지는 않을 듯싶다. 생각보다 제가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밝힌 참이었다.
보수언론은 김한울 국장이 노동당의 사람으로, 지난 1월 7일에는 서울시가 임명하는 2년 임기의 ‘시민참여 옴부즈만’ 23명 가운데 1명으로 임명돼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악수 거부’를 야권의 한 정당의 입장으로 정리한 후, 이를 다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의 관련성으로 확장해 나갔다.
반면 진보언론의 경우 김한울 국장이 페이스북에 악수를 거부한 이유로 적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손을 먼저 잡으라고, 사라져가는 희생자들 장애인들 노동자들 해고자들 촌로들 그들의 손을 먼저 잡고 구하고 도운 후에나 손을 내밀라고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라는 게시물을 소개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를 마친 뒤 참관인들을 격려하며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으나 한 참관인이 자리에 앉아 악수를 거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초 이 사건이 이토록 화제가 된 것 자체가 ‘박근혜 시대’의 특수성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를 찾아 투표하다가 투표소 참관인이었던 최아무개씨로부터 악수를 거부당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반향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 말이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임기 초’와 ‘임기 말’이란 상황의 차이보다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차이가 커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통적인 보수지지층으로부터 애정에 가까운 지지를 이끌어낸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회운동세력의 기자회견 현장에서 대통령 비판이 나오거나 대통령 퇴진이 거론되면 지나가던 시민들이 항의를 하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렇기에 “춘추관의 보도통제”를 우려했던 당사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보수언론들은 ‘악수 거부’ 문제를 크게 키운다. 악수를 거부한 이가 일개 시민이 아니라 당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노동당에도 항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개중에는 욕설 섞인 전화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당 관계자는 “항의 전화가 많지만 간간히 입당 문의 전화나 당비를 한동안 안 내던 당원들이 입금 재개하겠다고 말하는 전화도 섞여 있다”라고 귀띔한다. 대통령에 대한 호오가 극단적인 박근혜 시대의 한 풍경이다.
인터넷상에서는 여권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야권 지지자들도 김한울 국장의 행위를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보수층의 결집’에 대한 우려다. 2012년 총선에서 ‘나꼼수’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 파문’이나 대선 TV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떨어뜨리려 나왔다”, “아시죠? 다카키 마사오”와 같은 발언들이 역효과를 낸 것에 대한 학습효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들을 비슷한 계열의 것으로 포개어 보는 시선에는 문제가 있다. 먼저, 이는 총선·대선 후보와 한 정당의 참관인 사이에 존재하는 책임성의 차이를 지우는 것이다.
다음으로, 행위를 평가할 때에도 이 사건들은 결이 다르다. 김용민의 ‘막말 파문’은 본인도 거듭 사과를 해야 할 만큼 스스로에게도 떳떳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선거에 미치는 파급을 고려하여 사퇴하느냐 완주하느냐의 판단이 남아 있었을 따름이다.
이정희 후보의 발언들은 본인에겐 매우 떳떳한 것이었을 것이나 일단 주장의 내용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은 그의 친일행위 여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당대 조선인들이 90% 이상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주는 충격요법일 뿐이요, 박정희와 박근혜를 원래 싫어하던 사람들에게만 통쾌한 일이었을 따름이다.
반면 참관인의 ‘대통령 악수 거부’는 그 자체로 환호하거나 비난할 일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선택 문제의 영역에 들어간다. 적절한 행위인지를 타인이 판단해 볼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 판단을 근거로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비판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국가주의적·전체주의적 속성을 벗어던지지 못했음을 알려줄 따름이다.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 정치적으로 우려된다면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에 관해 그보다 더 우려할 만한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러저러한 근거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고,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였고 대통령에겐 정당성이 없다고 믿고 발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던 층에선 이런 행위들도 ‘악수 거부’와 마찬가지로 금지되거나 심하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믿기도 한다. ‘악수 거부’를 비판하는 야권 지지자들도 이 믿음에 동참하는 것인가.
대통령이 내민 손을 거절한 것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우려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에 관해 그보다 더 우려할 만한 일들도 얼마든지 있다. 대통령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나 비판 여부를 넘어, 대통령을 윤리적으로 미심쩍은 방식으로 비하하는 수사는 인터넷 공간에 넘쳐난다. 물론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던 층에선 이런 행위들도 ‘악수 거부’와 마찬가지로 금지되거나 심하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믿기도 한다. ‘악수 거부’를 비판하는 야권 지지자들도 이 믿음에 동참하는 것인가.
국가적 참사와 이에 대한 총체적 부실대응을 ‘대통령의 눈물’로 돌파할 수 있는 행복한 정치세력이 있는 한 우리는 종종 이러한 난장을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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