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이 ‘망언’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보직사퇴와 길환영 사장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여의도를 찾았던 8일 이후, KBS는 그야말로 들끓고 있다.

길 사장이 세월호 참사 관련해 “해경 비판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던 사실이 밝혀졌고, 그 뒤에 청와대가 있었단 사실도 폭로됐다. 팽목항에서 ‘기레기’라는 말을 듣고 쫓겨난 KBS 기자들은 눈물로 ‘공정방송’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 후 KBS에서는 길환영 사장의 퇴진과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기자와 PD, 엔지니어들의 힘이 모아져 '사장 해임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28일) 시민들은 KBS 노동자들의 싸움에 촛불로 화답했다.

세월호 참사 촛불이 28일 오후 7시 KBS 본관 앞에 밝혀졌다. KBS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시간, 밖에서는 ‘청와대 하수인 KBS 길환영 사장 퇴출’을 위해 촛불들이 모여들었다.

세월호 유가족, “KBS에서 승리했다는 소식 듣고 싶다”

촛불 문화제 단상에 오른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KBS 노동자들의 싸움이 꼭 이기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이라고 입을 뗐다.

▲ 28일 KBS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촛불에서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승리했다는 소식 듣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말을 대신 전했다ⓒ권순택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제 국회에서 이불을 덮고 주무시고 국회 본청 계단에서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며 “시위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시던 분들이 이제는 직접 피켓을 만들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만지고 싶다’, ‘보고싶다’며 흐느끼고 있다”고 절규했다.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에게 ‘KBS앞에 열리는 촛불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대신 전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KBS노동자들의 이번 파업, 정말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국회에서 나올 수 없어 여기 있지만 꼭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KBS가 장악된 게 사실 이번만이 아니다”라며 “이명박 정권 이후 KBS는 청와대 하수인이었다. 그것이 이번에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강조하며 “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 걸 보면서 이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실체를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론이 죽은 세상이 살아야 한다는 절실함이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그런데 벌써 정부는 세월호를 잊으라고 한다. KBS가 이겨야 세월호 유가족도 이길 수 있다. 그러니 꼭 이겨달라”고 당부했다.

선배 언론인들, “길환영 사장은 왜 버틸까…주인 허락 없어서”

KBS사태를 바라보는 선배 언론인들의 심경도 복잡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단 한가지였다. KBS가 길환영 사장 퇴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정방송’으로 거듭나라는 명령이었다.

‘동아투위’ 김종철 위원장은 “KBS에는 지금 길환영 사장 혼자 남아있다”며 “보도국 간부들이 보직을 사퇴했고 KBS양대노조 또한 83%, 94%의 높은 찬성율로 파업을 결의했다”며 “왜 길환영 사장은 버틸까. 주인 허락 없이는 물러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지금 KBS이사회에서는 길환영 사장 해임에 대해 심의를 하고 있는데,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 중 양심적인 2명만 있다면 가결될 것”이라며 “하지만 언론계 현업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길환영 사장이 집에 가는 것으로는 언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이날 KBS 앞 촛불문화제에는 KBS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시민 2~300여명이 함께했다ⓒ미디어스

김종철 위원장은 이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던 KBS가 JTBC보다 밑으로 내려갔다”며 “그런데 JTBC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하는 채널 아니냐. 여기서 우리가 되새겨봐야 하는 것은 진실을 보도한다면 어떤 방송이라도 국민의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KBS가 파렴치하게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잘못하는 것 비판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27억 원을 모은 안대희라는 사람이 총리되는 걸 막고,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방송이 된다면 수신료를 7500원 인상해 1만원 내는 데 내가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광장> 김중배 대표는 ‘기레기’라는 단어를 거론하면서 “그 말 뜻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라면서 “언론인들이 KBS, 공정방송을 넘어 인간성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삼성서비스노동자들, “10개월 동안 3명이 죽었는데…언론에서는 한 자 나오지 않아”

이날 KBS 앞에는 삼성전자 서비스기사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던진 염호석 씨의 사망을 알려달라고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우리가 스스로 언론이 됐다”고 토로했다.

“삼성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사람들이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복을 입고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언론에 나올 길이 없으니 우리 스스로 언론이 되어 부당함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왜 이 사회에는 힘없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언론은 없나. 이건희 회장은 모 야구 선수 홈런소리에 눈을 떴다는 기사가 1면에 실리고, 그 당사자로 인해 10개월 동안 3명이나 죽었는데 그런 소식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왜 대한민국 언론은 이래야 하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이동석 대의원>

▲ 이날 KBS 앞 촛불문화제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10개월에 3명의 노동자가 죽었는데 언론이 다뤄주지 않고 있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미디어스
이동석 대의원은 촛불문화제에서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이 시신을 탈취당하고 유골이 어디 갔는지 알 수도 없는 이 세상, 그리고 그 같은 소식을 전하는 글자 하나 찾을 수 없는 언론”이라며 “KBS에서 투쟁하는 기자·PD들이 반드시 이겨 우리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KBS 앞 ‘국민촛불행동’은 송경동 시인의 대한민국을 세월호에 빗대어 “세월호의 항로를 바꿔야 한다”는 시낭송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이 시각(8시 40분), KBS이사회는 길환영 사장의 해임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만이 들려왔다.

▲ 이날 KBS 앞 촛불문화제에는 KBS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시민 2~300여명이 함께했다ⓒ미디어스
▲ KBS 앞 촛불문화제에 걸린 현수막의 모습ⓒ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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