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언론통제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에게는 이미 지난 3월 정치 쟁점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목한 사안을 보도하지 말라는 ‘보도지침’이 내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케이블SO와 협회는 “자율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지침을 만들어 내려 보낸 시기가 보수언론의 케이블 ‘보도’ 때리기와 정부의 케이블 관리감독 강화 발언이 있었던 직후란 점에서 궁색하다.

22일 <미디어스>가 입수한 ‘SO 보도 준칙’은 △보도프로그램 금지 사항 △보도 방송프로그램 제작시 금지 및 주의 사항 △선거방송 보도 준칙 등 크게 세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지역보도 이외’ 소식과 ‘쟁점’을 보도하지 말고, 해설·논평으로 오인되는 어구·어미를 쓰지 않고, 이슈에 대한 비평을 하지 말라는 게 핵심이다. 지난 3월 케이블TV방송협회는 케이블SO에 이 준칙을 전달했다.

보도프로그램 금지 사항은 ‘SO사업허가권역 및 SO사업허가권역이 속한 광역권역을 넘어선 소재의 보도’와 ‘정치 쟁점, 법정 판결, 종교 신념 등과 더불어 방송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특정사안이라고 지목된 사안 전반’이다. 기초·광역단체 선거를 보도하되 쟁점을 보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특히 보도 아이템을 ‘언론통제’의 몸통 방통심의위가 지목한 사안 외로 제한했다.

▲ <미디어스>가 입수한 SO 보도 준칙 관련 매뉴얼 중 일부.

특정 문구를 쓰지 말라는 주문까지 있다. 준칙은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조심스럽게 예측되고 있습니다”, “~할 전망입니다”, “~가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 아닌가 하는 점이 의문입니다”, “귀추가 주목됩니다”라는 표현이 해설로 오인된다며 사용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준칙에는 “~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등의 표현은 논평으로 오인되니 쓰지 말라는 내용도 있다.

진행자가 뉴스나 프로그램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보도 이슈와 관련한 개인 의견과 소신을 전달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밖에도 준칙에는 대담 또는 토론의 경우, 진행자는 발언내용을 요약하며 이를 해설하지 말고,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감탄사 등으로 발언을 긍정 또는 부정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진행자는 순수하게 질의자의 역할에만 관점을 두라”는 이야기다.

서울지역 케이블SO에서 10년 넘게 선거를 보도해 온 한 A기자는 <미디어스>와 인터뷰에서 “이런 구체적 지침이 내려온 건 처음”이라며 “선거에서 쟁점을 보도하지 말라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B기자는 “과거 같으면 무상급식 쟁점을 보도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이 지침에 따르면 ‘누가 어디서 유세를 했다’는 식의 동정만 보도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블SO는 그 동안 직접사용채널 지역뉴스에서 기초단체장와 기초의회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 분석해왔다. 광역단체 보도가 중심인 지상파,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과 다른 역할을 맡아 왔다. A기자는 “사실상 케이블만 할 수 있는 지역선거 보도를 ‘연설방송’으로 바꾸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B기자는 “케이블은 정권 우호적 보도를 해왔지만 이 정도로 망가진 적은 없다”고 말했다.

케이블업계에서는 이 같은 보도지침이 1월 케이블SO 점유율 규제 완화, 2월 박근혜 대통령의 케이블 독과점 비판 발언, 3월 중앙일보의 CJ헬로비전 ‘보도’ 비판이 있었던 직후 내려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지난해부터 케이블SO가 지역채널에 ‘불법보도’를 내보내고 있다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실태조사를 벌였고 미래창조과학부는 현재 ‘불법’ 여부를 판단해보겠단 입장이다.

케이블SO들은 “자율적으로 만든 준칙으로 보도통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준칙을 만드는 데 참여한 씨앤앰 보도관계자는 “방송법에 나와 있는 대로 중앙정치에 관한 것이 아닌 지역, 광역단체에 한해 보도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SO 보도책임자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지역 현안을 공정하게 보도하자는 차원”이라고만 말했다.

케이블협회 관계자는 “케이블 지역채널은 지역보도가 아닌 특정 사안에 대한 논평과 해설을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준칙을 만들 당시) 외부에서 케이블 지역보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졌고, 사전에 주의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법을 넘어선 보도를 하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다”며 “강제가 아니라 각사가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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