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은 사실상 지지자 규합과 중도파 설득을 위한 것이었다. 문제해결적 접근이 잘못 되어 있기에 정치적 적대자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쏟는 시간이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담화문은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기술적으로 세련된 연설’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포퓰리즘의 극한’이었다.

그럼에도 담화문의 절정에 해당했던 ‘눈물’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눈물’은 그 지지자들에겐 희생자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는 “용의 눈물”로 보일 것이고, 적대자들에겐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즙을 짜낸 듯한 “악어의 눈물”로 보일 것이다. SNS 상에서도 ‘눈물’은 함께 화제가 되었던 ‘해경 해체’ 이상의 파장을 가져왔다.
20일자 조간신문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눈물’을 정점으로 하여 담화문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감성몰이를 시도했다. 반면 진보언론에서도 ‘눈물’은 1면을 장식했지만 담화문의 내용에 대해선 냉정한 해석을 담았다.
20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는 <‘國民’ 못 지킨 정부 수술대 오르다>로 다소 냉정한 제목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로 촉촉해진 사진을 담았다. 2면 기사는 좀더 노골적으로 <대통령, 義死者 이름 부르다 끝내 눈물... “이젠 앞으로 나아가야”>라는 제목과 함께 국민을 함께 고개 숙인 대통령의 사진을 담았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1면에서 정부 구조 개편과 해경 해체 등의 대책 방안을 담으면서 대통령의 ‘눈물’에 주목하는 사진을 활용했다.
▲ 20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반면 20일자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세월호 대책도 졸속...‘기본’ 또 안 지켰다>는 제목으로 대통령 담화문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사진 역시 <대통령의 눈물... 실종자 가족의 눈물>이란 제목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과 대통령 담화 이후 오후에 기자회견을 가진 실종자 가족의 눈물을 함께 배치했다. <경향신문> 역시 1면 사진에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모습을 담았으나 1면 기사는 <국정기조에 대한 성찰은 빠졌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각 신문 사설들에서는 좀더 정치적인 지향이 드러났다. 20일 <조선일보> 사설 <충격적 사고에 충격적 대응,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어야>를 보면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내세운 대책의 기조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려사항도 공직 사회의 저항이나 실현가능성 문제 등에 국한되었다. “대통령이 눈물로 사과를 했고 종합적인 안전 대책도 내놓았다. 마지막 한 명의 희생자까지 찾는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일반 국민들의 일상 생활은 이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할 때가 됐다”라는 구절에선 보수언론이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 정국에 대한 출구대책의 고민이 엿보였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통치 능력 변화나 인사혁신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등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대통령 담화문에 대해 사설 세 개를 모두 할애하면서, <국민·국회와 함께해야 할 대통령 담화문>과 <새 국가재난기구, 운영 잘못하면 도루묵 된다>와 <관피아 척결, 현직 낙하산부터 잘라내고 시작하라>란 제목으로 담화문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 20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한겨레>의 경우 <‘탁상대책’만 쏟아낸 대통령 담화>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날 대국민 담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박 대통령의 눈물이었다. ‘눈물 없음’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 여론을 반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박 대통령이 담화 끝머리에 일부 희생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다 눈물을 흘린 대목은 일단 평가할 일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눈물샘이 마를 지경이 돼서야 나온 대통령의 ‘지각 눈물’이 화제가 되고 눈물의 ‘희소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현실은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대통령 담화문의 내용에 대해서도 논점별 비판이 있었다.
또한 <한겨레>는 <앞으론 눈물, 뒤로는 연행에 구속인가>란 제목의 다른 사설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를 위한 주말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연행된 시민 200여명 대부분을 형사처벌하기로 경찰이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과잉 대응이 아닐 수 없다. (...) 세월호 참사에선 그토록 오랜 시간 굼뜨게 굴면서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한 권력이 참사에 분노하는 시민들을 끌고 가는 일에는 그렇게나 기민하고 단호했다”라고 비판했다.
▲ 20일자 한겨레 1면 기사
<경향신문> 역시 <‘대통령의 변화’는 보기 힘든 대국민담화>와 <청와대는 ‘방송장악’ 실상 밝히고 책임져야>와 <대통령 사과 뒤편에서 ‘추모 민의’ 짓밟는 경찰>란 제목의 사설에서 대통령과 정부의 처신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용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의 통치행위가 정치적 적대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은 분명하더라도, 그 정치적 적대자들 역시 ‘악어의 눈물’이란 조소가 먹혀드는 영역을 넘어선 정치적 중도파에 대한 설득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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