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은 그야말로 숨 가쁜 하루였다. KBS 길환영 사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KBS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던 가운데, KBS 보도본부 부장단 18명이 일괄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저녁 열린 KBS기자협회 긴급 총회에서는 1년 5개월 동안 KBS 보도국을 책임져 온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을 구체적인 사례까지 적시하며 낱낱이 밝혔다. 이 소식은 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KBS <뉴스라인>에도 두 꼭지로 소화됐다.

이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와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 이하 KBS노조) 양대 노조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길환영 사장 퇴진을 건 투쟁을 시작했다. 앞서 일선 기자들의 모임인 KBS기자협회(협회장 조일수)는 KBS 내부에서 가장 먼저 길환영 사장 사퇴를 요구한 바 있다.

▲ 16일 저녁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KBS기자협회 긴급 총회가 열렸다. (사진=17일자 KBS 뉴스광장 1부 보도 캡처)

조일수 KBS기자협회장은 17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6일 총회 상황과 향후 기자협회의 대응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일수 협회장은 “김시곤 전 국장은 기자협회 회원 자격으로 온 것은 아니다. (본인) 퇴임 때 얘기한 ‘(사장의) 사사건건 지시’ 이 부분을 엄중하게 생각했고, 당연히 기자들에게 사정을 속 시원히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마련된 자리”라고 밝혔다.

기자들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을 당일(16일) <뉴스라인>에 반영하자고 강력히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에서, ‘기자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30년 가까이 뉴스 취재, 보도뿐 아니라 편집에 대한 고도의 감각을 길러 온 KBS 보도 간부가 한 이야기는 단순히 ‘주장’으로만 볼 수 없다, 그만큼 무게감이 있다는 판단에서 충분히 ‘보도가치가 있다’고 봤다. 그래서 <뉴스라인>이든 <뉴스광장>이든 방송에 내자는 뜻을 뉴스 책임자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이 나간 건 회사의 정상적인 시스템 하에서 반영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뉴스9>도 그렇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시곤 전 국장은 기자 총회 때 이달(5월)에 있었던 보도 침해 사례를 정리해 기자협회 측에 전달했다. 조일수 협회장은 “어제(16일)는 내용을 검토해 볼 시간이 없었다. 오늘 중으로 살펴보려 한다”며 “김시곤 전 국장이 매일 일기 형식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정확히 세 보진 않았지만 A4 2~3장 분량이다. 우리만 보고 놔둘 문제가 아니고, 공개하라고 준 것이므로 내부에서 공유한 뒤 당연히 공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일수 협회장은 특히 “지금과 같은 선임 구조에서는 정치권이 KBS 사장을 통해 보도에 간섭하는 문제가 재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서는 더 이상 KBS를 만신창이로 만들지 말라. 지금이 권위주의 국가 시대도 아닌데, 민주사회에 걸맞은 공영방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KBS를 또 한 번 정치권의 부속기관처럼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면 협회의 이름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며 “협회의 경고는 다름아닌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우리 스스로 했던 다짐과 약속”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일수 협회장과의 전화 인터뷰 전문.

[인터뷰] 조일수 KBS기자협회장

▲ 세월호 참사 한 달 째인 15일, 세월호 희생자들을 조문하기 위해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일수 KBS기자협회장 (사진=미디어스)
1.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기자협회 총회에 참석해 보다 세부적인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을 털어놨다. 김 전 국장의 참석 계기가 궁금하다.

(김 전 국장은) 회원 자격으로 온 것은 아니다. 보도국의 전 책임자로서 온 것이다. (본인의) 퇴임 때 얘기했던, (사장으로부터) ‘사사건건 지시가 있었다’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개입에 대해 JTBC나 다른 매체를 통해 일부 얘기를 하기도 했고. (기자협회는) 그래도 기자 출신 선배이니, 기자 후배들에게 속 시원하게 밝혀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 뜻을 전달하니 김 전 국장이 ‘그럼 후배들 앞에서 얘기하겠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다.

2. 김시곤 전 국장이 기자협회에 ‘이달의 보도 침해 사례’를 정리해 전달했다고 들었다.

네, 받았다. 하지만 어제(16일)는 그 내용을 검토해 볼 시간이 없었다. 직전에 받았기 때문에. 정확히 세 보진 않았는데 A4 두세 장 됐던 것 같다. 김 전 국장이 매일 일기 형식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꼼꼼히 기록해 놓은 거라서 이제 좀 살펴보려고 한다. 검토해보고, 우리(협회)만 보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공개하라고 준 거니까 내부 공유를 거쳐 당연히 공개할 것이다. 그건 시간의 문제인 것 같다. 아직 공개 시점은 확정하지 않았다.

3. 기자 총회 당일인 16일 <뉴스라인>에 김시곤 국장의 폭로가 보도돼야 한다는 협회 내부의 요구가 높았고, 실제로 보도에 반영됐다. 혹시 오늘(17일) 9시 뉴스에도 보도될 가능성이 있나.

그건 알 수 없다. 사실 기자들도 전 보도국장이 이렇게까지 충격적인 이야기를 내 놓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도 황당했다. 여튼 (김 전 국장의 발언은) 일종의 발생(기사)였다. 우리가 직접 보도할 수 있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청와대, 문화부 방송 담당 등 관할 기자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총회에서 나온 발언을 정리한 것을 기자, 부장 가리지 않고 전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가 자체 판단해서 커버(촬영)한 ENG 카메라가 있었다. (총회 내용을 담은) 테입이 있다는 것이다.

협회 차원에서, 기자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30년 가까이 뉴스 취재, 보도뿐 아니라 편집에 대한 고도의 감각을 길러 온 고위 KBS 보도 간부가 한 얘기를, 보통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봤다. 그만큼 무게감이 있고, 보도가치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뉴스라인>이든 <뉴스광장>이든 방송에 냈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뜻을 각각의 뉴스 책임자에게 전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던 부분이다. 방송이 나간 건 회사의 정상적인 시스템 하에서 반영이 된 거고, 마찬가지로 <뉴스9>도 그렇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4.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청와대에서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해경에 대한 비난 자제를 주문하고, 길 사장이 대통령 해외 순방 당시 전전긍긍하며 순방 내용을 앞부분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든지… 이러한 내외부의 ‘보도 간섭’을 방지하기 위해 평기자 대표로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편집회의는 아침과 오후에 한다. 아침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있다는 소개 위주다 보니까 발제되는 내용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모른다. 오히려 발제된 뉴스가 어떻게 편집되는지가 중요하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보도국 간부들이 따로 하는 ‘축조회의’가 있는데, 거기서 뉴스 라인업을 정하고 어떤 걸 주요하게 다룰지를 정했다. 여기에 기자협회장을 못 들어오게 막은 것이다. 협회는 오히려 그 회의가 더 중요하니 들어가게 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다음에 2시에 오후 회의가 또 있다. 거긴 아예 못 들어오게 했다. 5시 즈음 열리는 본부장 주재 회의도 당연히 못 들어오게 했다. 그건 (들어가게 해 달라는)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상황도 못 됐다. 하지만 (못 들어가는) 그런 회의체에서 주요 결정이 나오니, 편성규약을 근거로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회사 측에서는 편집권 침해를 이유로 막았다.

아, 최근에는… 김시곤 국장 후반부에는 잠시 오후 회의가 없어졌다. (왜 없어졌나?) 그건 잘 모르겠다. 오전 회의는 열되, 오후 회의는 (하지 않고) 알아서 처리한다는 기조였던 것 같다. 신임 보도국장(백운기) 와서는 축조 회의를 없앤다고 했는데 그건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5. 총회에 기자들은 어느 정도 참여했는가.

정확히 몇 명이 참석했는지 수를 헤아려 보진 않았다. 놓인 좌석 수 등을 봤을 때 130명 내외로 보면 될 것 같다. 총회 개최를 성립시키는 성회 조건은 만족시켰다.

6. 앞으로의 일정이 궁금하다. 새 노조는 오늘(17일) 2시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길환영 사장은 19일 ‘사원과의 대화’를 연다고 하던데.

새 노조 기자회견이나 사원과의 대화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은 모른다. 협회와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므로. 협회는 일단 어젯밤까지 해서 성명을 냈다. 워낙 참담하고 먹먹하고 하니까 다들 지치고 허탈해 했다. 일단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오후 다시 모이기로 했다. (김 전 국장의 발언이 이렇게 나온 마당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실질적인 제작거부’ 외에는 남은 게 없는 것 같다.

7.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부분을 꼭 강조하고 싶다. 지금 같은 사장 선임 구조에서는 이런 사태, 정치권이 KBS의 사장을 통해 보도에 간섭하는 문제는 재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현재 KBS의 사장은 방송법 제50조에 따라 KBS의 최고의결기관인 KBS이사회가 제청한 후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이번 사장이 물러나면 다음 사장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정치권, 정부에서는 더 이상 KBS를 만신창이 만들지 말라는 것. 지금이 권위주의 국가 시대도 아닌데 민주사회에 걸맞은 공영방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 달라.

KBS를 또 한 번 정치권의 부속기관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면 협회의 이름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주시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거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협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직접 한 약속이다. 이번에도 해경 비난은 나중에 해 달라 이런 부분이 있지 않았나. 우리가 그걸(청와대의 보도 간섭을) 본 이상, 묵과할 수 없다.세월호 유가족에게 스스로 했던 우리의 다짐과 약속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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