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빠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전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민들이 정치의 기능과 필요성 자체를 불신하기 시작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도 빠진다는 여론조사 결과마저 발표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선거에서도 각 후보들은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둔 ‘안전’ 관련 공약들을 발표하는 중이지만,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정치세력의 대응으로 여겨지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전략공천 갈등 격화, '무공천' 주장하다 이젠 '신주류'?

그런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략공천을 둘러싼 갈등마저 격화되고 있다. 2일 광주광역시장 선거 후보로 윤장현 후보가 전략공천된 것에 대해 광주지역 시민사회는 아직까지도 반발하고 있다. 윤장현 후보로의 전략 공천은 안철수 공동대표의 ‘제 사람 심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윤장현 후보와의 경선을 기대하던 강운태·이용섭 두 후보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두 후보 간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는 지경이다.
3일 발표된 안산시장 후보 전략공천 역시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전략공천된 제종길 전 의원은 김한길 공동대표의 ‘신주류’에 가까운 인사로 알려져 있다. 이에 김철민 현 안산시장은 7일 오후 새정치민주연합 여의도 중앙당사 앞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항의 농성을 했고 12일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반발,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여객선 침몰사고 대책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 실종자 가족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철민 안산시장의 경우 자신이 진도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돌보는 동안 당 지도부가 전략공천을 감행했기 때문에 느끼는 배신감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상황을 아는 한 관계자는 “김철민 시장은 재선에 도전하려면 지금 시장직에서 사퇴해야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고려하여 사퇴를 미루고 있었다. 확실히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사퇴한 이후 수장이 없는 경기도교육청이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가운데, 안산시 측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나았다”라고 설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산 지역 국회의원들은 김철민 시장이 공천에서 배제되자 지도부에 개선을 건의했으나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일엔 새정치민주연합 전남도당이 8일 국민여론조사 공천을 예고했던 여수시장 후보를 주철현 후보로 전략공천하여 갈등을 야기했다. 주철현 후보와 경쟁하던 김영규 여수시장 후보 역시 12일 오전 여수시청 대회의실에서 지지자 100여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전략공천 철회를 거듭 요구하고 나섰다.
그 외에도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을 놓고 빚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은 깊어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국회'라고 이름붙인 5월 임시국회 관련 논의를 하기 위해 12일 의원총회를 소집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기초공천과 관련한 격론이 일었다. 수도권과 호남, 충청, 강원 등 거의 전국적으로 경선 불참 및 탈당, 무소속 출마 사례가 나오는 등 공천 내홍은 심각한 수준이다.
낯선 두 세력, 세월호 참사 본질 모른채 '내부 정치'만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내홍은 기존 민주당 계파들의 세력 다툼에 안철수 측과의 연합, 그리고 김한길 공동대표의 ‘신주류’ 조성에 대한 의중까지 중첩된 결과로 풀이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당 내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철수 공동대표가 역할을 못한다는 불만이 있었다. 기존의 문법으로 볼 때 안 대표와 같은 사람이 ‘공감의 정치’를 펼쳐가야 했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기성정치인은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 조심하는 상황에서 안 대표까지 움직이지 않으니 아무도 대응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관계자는 “안철수 공동대표가 거대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며느리가 시댁을 가리듯 낯을 가리며 조심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하면서 “그런데 그건 민주당 측 인사도 마찬가지 심정”이라 전했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위기가 서로가 낯선 두 정치세력이 어색한 적응을 하는 가운데 정국에 대한 과단성 있는 대응은 없이 ‘자기 사람’을 심는 내부 정치투쟁에만 골몰하게 되는 기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반응이다.
정치권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의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가 국민들에게 가져다 준 충격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한다. 그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가 가져다 준 충격은 ‘정치의 실패’이자 ‘정치의 실종’이라 야당도 자신들이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필사적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야당은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처럼 안이하게 처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특히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와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가 각기 가족들의 ‘국민 미개’ 발언과 전 안전행정부장관이란 입장 때문에 지지율이 하락한 탓이다. 경기도에선 남경필 후보가 승리한다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서울과 인천에서 패배한다면 지방선거 자체는 새누리당의 패배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충청도와 강원도에서도 안희정 충남지사와 최문순 강원지사 등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의 선전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방선거의 성과는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정치적 성과로 치부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 정치부 기자는 “야권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도 2012년 총·대선에서 패배한 과거를 벌써 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야권이 유권자들에게 수권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지방선거에서만 ‘정권심판’의 기능으로 선택되는 패착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새정치민주연합의 탄생이 수권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민주당의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처신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1야당이 ‘공천 잡음’으로 언론에 소개되는 것은 그들의 ‘치명적 무능’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공동대표단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한 박영선 원내대표 체제가 어떠한 ‘창조적 불화’로 이러한 매너리즘을 타개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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