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자 <경향신문>에는 이례적으로 1면에 기자메모가 실렸다. <경향신문> 박래용 정치부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경향신문>에 대한 63일 청와대 춘추관(기자실) 출입정지 징계 조치를 비판했다. <한겨레> 역시 4면 기사에서 징계조치를 비판했다. 징계를 받은 언론사는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등으로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는 출입정지 63일(9주), <한겨레>는 출입정지 28일(4주), <한국일보>는 출입정지 18일(3주)이다.

징계 사유는 지난달 21일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지난달 21일 공식 브리핑이 끝난 뒤, 일부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 팔걸이의자 때문에, 또 그게 사진 찍히고 국민 정서상 문제가 돼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 부분을 기사화한 것이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응급 치료가 이뤄지던 탁자에서 의약품을 치우고 컵라면을 먹어 논란이 됐다.
▲ 9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해당 발언은 청와대에서 비보도 요청을 했지만 <오마이뉴스>에서 다음날 보도한 이후 인터넷과 SNS에서 널리 확산되자 몇몇 매체가 따라갔다. <경향신문>이 최초 보도한 <오마이뉴스>와 함께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를 받은 이유는 과거에도 비보도 약속을 한 번 파기한 적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온라인에서만 보도했기 때문에, <한국일보>는 며칠 뒤에 보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징계 수위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박래용 정치부장은 “간사단은 징계 수위를 놓고 입장이 갈리자 총괄간사에게 결정권을 위임해 이 같은 징계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변인의 ‘계란 발언’을 보도한 동료 기자들을 모두 찍어내 기자실 출입을 막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 기자 간사단의 결정을 비판했다. 박래용 부장은 “통상 청와대에선 국가안보나 외교, 경호상 필요한 대통령 일정에 관한 사안을 비보도나 엠바고(보도시점 유예)로 요청한다. 대변인의 ‘계란 발언’은 국가안보도 외교상의 기밀도 아니었다. 경호상의 문제도 인권에 관한 문제도 아니다”라고 해당 사안이 비보도가 될 사안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박래용 정치부장은 “언론사에선 청와대 출입기자를 농반진반으로 ‘1호 기자’라고 부른다. 편집국 수백명 기자 중에 ‘1호’로 그만큼 역할이 막중하다는 의미다. ‘1호 기자’들이 관행과 편의에 기대 ‘오프’의 남발을 묵인하고 최고 권력기관의 감시와 견제를 외면한 것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기자가 누군가와 한편이 되려 한다면 권력이 아닌, 시커멓게 탄 가슴을 문지르며 숨죽이고 사는 국민의 편에 서는 게 옳다”라면서 청와대 기자단이 권력에 순치되어 동료 기자들의 취재를 탄압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한겨레> 기사에 등장한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 교수는 “오프 더 레코드는 국익이라든지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데 언론 보도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할 때 요청하는 것이다. 민 대변인의 ‘계란 발언’은 충분히 공적 의미를 갖는 발언으로 오프를 걸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남재일 교수는 “청와대 기자단이 이 문제에 대해 징계를 한 것은 기자단 인식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자신들이 갖는 공적 지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지나친 처분”이라고 지적했다.
▲ 9일자 한겨레 4면 기사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의 언론 대응이 유별나다는 것은 이미 지적되어 왔다. 청와대가 언론에 정보를 거의 주지 않는 가운데, 청와대 기자단이 순치되어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2013년 11월 8일 <경향신문> 28면에 실린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의 칼럼이 이미 그러한 세태를 지적했다.
이봉수 원장은 당시 <청와대 기자들은 죽었다, 민주주의와 함께>라는 칼럼에서 “몇몇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취재했더니 오전 7시30분과 오후 5시30분에 이정현 홍보수석이 ‘브리핑’이라는 것을 하지만 보도되길 원하는 것만 얘기할 뿐 건질 게 별로 없다는 반응이었다. 조금만 ‘까칠한’ 질문을 하면 이 수석은 10초쯤 입을 꾹 다물어 버려 기자들이 알아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대통령은 아예 만날 수도 없고 홍보수석에게도 잘못 보일까 전전긍긍하니 대통령 미화와 성과 위주로 보도가 된다”라며 세태를 설명했다.
이어서 이봉수 원장은 “권력자에 대해 경외심이 생기면 기자는 끝장이다. 150명이 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각 언론사에서 파견한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려면, 아니, 최소한 ‘군주제’를 원하지 않는다면, 청와대 기자실의 ‘침묵하는 전통’을 깨야 한다. 영국과 미국 언론은 민주주의를 누리기만 하는 게 아니다”라며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비판했다.
당시 <미디어스>의 추가 취재에서도 한 일간지 기자가 “요즘은 <조선일보>조차도 청와대 취재가 전혀 안 된다. 잘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안 된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청와대 기자들의 기능은 위축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데엔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특성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때 박근혜 캠프를 담당한 한 일간지 기자는 "박근혜 후보는 워낙 말을 안했다. 그래서 오래 마크한 기자들을 중심으로, 최대한 비위를 맞춰서 한 마디라도 더하게 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아주 답답하다"라며 당시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기자들의 풍경을 전했다. 이와 같은 풍경이 청와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기자단이 스스로 취재를 통제할 정도로 순치된 세태에 관해 한 기자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보면 ‘청와대발’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 기자는 “가령 최근(4월 29일) 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이 만난 할머니가 논란이 되었을 때에도, 사실 동행 취재한 청와대 기자가 확인하고 제대로 사진 설명을 쓰는 것이 우선이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고 할머니가 ‘박사모’라는 논란이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언론들의 취재에서 박 대통령과 함께 사진에 찍힌 할머니는 합동분향소를 찾은 일반 시민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청와대가 동원한 사람은 아니나 현장에서 대통령을 만나달라고 연출한 정황은 있는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의 언론전략은 기자들로 하여금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실은 적극적인 정보제공이나 소통을 하려는 생각이 없고 정보통제에만 몰두하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세월호 사건이라는 참사에 맞닥트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청와대에 기자단이 적극 협력하고 있다는 것은, 순치된 언론이 언론탄압에 앞장서는 작금의 ‘웃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언론들은 과연 유가족들의 분노가 <KBS>로 집중된 것만을 보고 안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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