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좋은정책포럼과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실 주최로 <세월호 참사와 한국 사회, 선 자리와 갈 길>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사회는 정해구 성공회대 정치학 교수가 맡았고 발표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백기철 <한겨레> 정치·사회 에디터, 홍종학 의원,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가 맡았다.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이기도 한 김호기 교수는 인사말에서 “3주가 어찌 지났는지 모르겠다”면서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무엇이었는지를 묻기 위해서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회자를 맡은 정해구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 부끄러웠고 이 자리에 대해서도 구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토론회를 연다는 게 적절할지 고민을 하였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해구 교수는 “실종자 가족이 진상조사, 청문회, 특검 등을 직접 요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문제에 있어 사회는 어디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건이 드러낸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지적되다
김호기 교수는 <위험사회, 위기의 공동체, 국가의 역할>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날 브로델이 역사적 시간을 구별한 것을 따라 사건사적 시간, 국면사적 시간, 구조사적 시간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사건사적 시간의 원인에선 청해진해운, 정부, 언론의 구체적인 문제가 지적되었고, 국면사적 시간의 원인에선 비정규직 문제와 규제완화의 문제 등 신자유주의의 그늘이 제시되었으며, 구조사적 시간의 원인에선 재난 대처 시스템의 부재와 이중적 위험사회로서의 한국 사회가 제시되었다.
김호기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자리를 생생히 증거하는, 1997년의 경제 위기에 비견될 수 있는 사회 위기라고 분석했다. 김호기 교수는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의 포괄적 개혁과 근본적 혁신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세월호 사고가 던지는 7개의 질문을 가치, 정치, 언론, 교육, 역사, 미래, 인간에 대한 것으로 축약했다. 마지막으로 김호기 교수는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과제로 ‘욕망의 사회’의 ‘살림의 사회’로의 이행을 제시했다.
▲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좋은정책포럼과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세월호 참사와 한국사회-선 자리와 갈 길' 긴급 토론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어서 백기철 <한겨레> 정치·사회 에디터는 <정치의 침몰, 책임윤리의 실종, 리더십의 붕괴>란 제목의 발표에서 “세월호 사건의 정치적 파장으로 국가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분노가 비등했다”고 분석했다. 백기철 에디터는 세월호 사건에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서 책임윤리의 부제라 드러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기철 에디터는 “자살한 강민규 교감 정도가 책임을 졌다”라고 설명했다. 백 에디터는 “애초 강민규 교감의 자살에 대해 베르테르 효과를 걱정하며 1보를 보도하면서는 상당히 뒤에 배치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재평가하는 차원에서 달리 접근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백기철 에디터는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로 신자유주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불신, 언론에 대한 분노를 제시하면서 이 사건에서 드러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참회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종학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한국경제 : 위기의 전조인가?>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재난사회와 경제위기가 보수주의 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홍종학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면서도 “평소에도 하던 주장이기에 이렇게 엮었다”라고 밝혔다. 홍종학 의원은 이야기의 실마리로 ‘하나의 큰 사고가 터지기 전에 29번의 꽤 위험한 사고와 300번의 사소한 실수가 일어난다는 1:29:300의 하인리히 법칙’을 제시하였다. 홍종학 의원은 “세월호 이전의 29번의 위험한 사고에 대해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혹시 세월호 참사가 1이 아니라 29 중의 하나는 아닐까?”라는 좀더 비관적인 질문도 던졌다.
이어서 홍종학 의원은 세월호 참사를 부시 정부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극과 김영삼 정부 시절의 재난사고들과 비교했다. 또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를 미국 역사 100년을 통해 고찰하면서, 보수정부의 정책의 결과 소득 상위 10%가 가진 소득 비율이 높아질 때 대공황이 닥쳤고 뉴딜 등을 통해 비율이 내려갈 때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했음을 밝혔다. 홍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금은 레이건 취임 이후 보수 정책에 의해 소득 불평등이 대공황 시대 못지 않게 악화된 대침체 시대에 해당한다.
또 홍종학 의원은 “부시 정부의 블랙워터나 이번 재난사고에 등장한 언딘처럼 국가의 공공적 역할을 민간회사에 이양하면서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은 “수익은 자본에게 귀속되고, 비용과 위험은 국가와 국민이 부담하는 잘못된 인센티브 시스템이 문제다”라면서 최근 몇 년간 진보진영이 ‘사람 먼저’를 내세웠음에도 주목받지 못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치의 역할이 없다면, 정치는 도대체 왜 필요할까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는 <왜 우리는 세월호에 강하게 감정이입을 했는가>란 제목의 발표에서 “세월호 사건이 세대론적 해석을 자극한 것이 감정이입의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윤형 기자는 “이 사건을 세대론으로 바라보는 것이 구조적 문제를 지운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어떻게 세대로 드러나는지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기자는 “배타고 제주도로 떠나던 수헉여행 행렬이 사고를 당할 때, 자녀와 함께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갈 수 있는 부모가 그 여행을 허락해야 할 이유는 줄어든다”라면서 “벌써 각급 학교에서 수학여행들이 취소되고 있는데 이렇게 하여 공공영역이 중산층에게 점점 더 싸구려로 인지되면 그것이 더욱 더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야권을 포함한 정치권을 가장 강하게 성토하는 발표를 했다. 유승찬 대표는 <세월호 참사와 SNS: 집단지성의 새로운 진화>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세월호 참사가 기록한 버즈량(언급량)은 한국 사회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한 이후 최대 수치였다”라고 설명했다. 유승찬 대표의 자료에 따르면 4월 16일에서 5월 4일까지 19일의 기간 동안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낸 버즈량은 450만여건으로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이 19일 동안 기록한 버즈량의 세 배에 해당한다.
유승찬 대표는 세월호 참사 인물연관어에서 ‘박근혜’가 63만여건의 압도적인 수치로 1위였고 단체연관어에서도 정부가 63만여건의 압도적인 수치로 1위였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 참사의 책임을 정부 당국으로 인지했음이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새누리당의 경우 부적절한 처신으로 10만여건의 버즈량을 기록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6천여건에 불과했다”면서 야당의 존재감이 전혀 없었음을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정치의 역할이 없다면, 정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라고 비판했다. 또 유 대표가 제시한 자료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미디어 연관어에선 <JTBC>가 12만여건으로 압도적 1위였고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언론, <CNN> 같은 외신의 선전도 두드러졌다.
이어서 유승찬 대표는 “이런 사건에 있어 정치인의 역할은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온전히 뛰어드는 것이라고 본다”라면서 “여야 막론하고 정치인의 공감능력이 매우 저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대표는 “책임의 문제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라면서 “안전행정부 장관이었던 유정복이나 경기도교육감이었던 김상곤은 사퇴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아무도 책임지려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성토했다. 마지막으로 유승찬 대표는 “정치인이 공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경우 향후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당 정치인들의 쉽지 않은 고민들
2부 토론 시간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의 몇몇 의원이 고민을 토로하였다. 은수미 의원은 “왜 나는 사람이 비용이나 상품이나 인적 자본이 아닌 사람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설득하지 못하는가라는 자괴감이 있다”고 토로했다. 은수미 의원은 “항공사 비정규직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것을 막기 위한 기자회견도 했는데 기자회견 때문이 아니라 아시아나에서 사고가 나고 정규직 기장이 사고 수습을 잘 하면서 막을 수 있었다”라면서 노동이나 복지, 경제민주화 등 정책적 의제가 정치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밝혔다.
이인영 의원은 “국가 안보가 모든 걸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회 안전이 중시되는 사회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천안함 사고에서도 국가 안보 뿐만이 아니라 안전의 문제를 좀 더 지적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인영 의원은 “자본이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더라도, 책임성은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영선 의원은 “세월호는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한두달 할 수준의 문제는 아닌 거 같다”라고 지적했다. 박영선 의원은 “미국의 9.11 이후 대처를 벤처 마킹해서 1~2년 정도 시간 동안 조사위원회가 충분히 조사해서 보고서를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라고 제안했다.
홍종학 의원은 “책임윤리 실종 문제가 컸다. 당국자가 첫날 나와서 잘못된 브리핑을 하다 망신당하니 다음날부턴 아예 나오지 않았다. 그 자리를 총리도 대통령도 안 메꿨다”라면서 정부 대응을 비판했다. 홍종학 의원은 “오바마가 재난 구조 현장을 갔을 때 현장 책임자가 지휘하고 대통령은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이런 체계가 없다”면서 “서울 지하철 사고에서 현장에 가서 수습될 때까지 지켜본 박원순 서울 시장의 모습이 보여준 것이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영국 노동당이 3년 전부터 당을 플랫폼 정당으로 바꾸는 중인데 반응성이 좋다”라면서 정당의 변혁을 촉구했다. 유 대표는 “영국 노동당의 실험은 지난 대선 오바마 캠프의 기획과 흡사하다”라면서 “지금 한국의 정당들은 반응성이 너무 떨어져 있다. 이제는 SNS를 염두에 둔 정당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망각에 대항한 싸움과 다음 세대를 껴안기
백기철 <한겨레> 정치·사회 에디터는 “언론 보도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정말 긴 호흡으로 사건 보도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백기철 에디터는 “9.11 이후 뉴욕타임즈가 두달 동안 보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해 훼리호나 삼풍 백화점 붕괴 때 언론 보도를 보면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나면 1면 머릿기사에서 사건이 사라진다”라면서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가 사건의 망각을 부추기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백 에디터는 “세월호 국면에서 허핑턴포스트 조회수가 <한겨레> 전체 조회수에 맞먹는 걸 보면서 당혹스러웠다”라면서 “내부에선 ‘야당과 <한겨레>가 함께 침몰하고 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라고 전했다.
정해구 교수는 “망각에 대항해서 어떻게 싸우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많은 문제가 진상규명이 안 되었다. 가령 1등항해사가 청해진해운과 7번 통화했다고 하는데, 통화록도 안 나왔다”라고 지적했다. 정해구 교수는 “민간 차원에서 추모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스스로 90년대 학번이라고 밝힌 한 시민의 발언도 인상적이었다. 그 시민은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집회에 가보니 구호가 ‘가만히 있으라’여서 울컥했다”라면서 “우리 세대도 90년대의 재난 사고를 보고 개인주의 성향이 심화되었던 것 같다. 이 세대가 자라나면 국가와 사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우려된다. 그들을 어떻게 껴안을 수 있을지가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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